셀린 송 감독 "'인연'이라는 단어 알았기에 제 인생이 더 깊어져"[인터뷰](종합)

모신정 기자 2024. 3. 10.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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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로 아카데미 작품상, 각본상 후보 올라
셀린 송 감독/사진제공=CJ ENM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이자 전 세계 주요 영화 시상식 77관왕이자 21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돼 화제에 오른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며 서로를 이상형으로 생각했던 두 명의 남녀가 한 사람의 해외 이민으로 이별을 하게 된 후 12년마다 한 번씩 짧은 만남을 거듭하며 인연을 이어가는 작품이다. 

미국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10여년간 극작가로 활동해온 셀린 송 감독의 첫 영화연출작인 '패스트 라이브즈'는 미국 영화사인 A24와 국내 투자배급사인 CJ ENM이 공동투자배급을 맡아 전 세계 유수의 영화 시상식에서 독보적인 수상 성적을 거뒀는가 하면, 국내에서도 지난 6일 개봉해 관객들에게 기존 상업영화들과는 다른 사색과 관람의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셀린 송 감독은 영화 '넘버3'(1997)'와 '세기말'(1999)을 연출한 송능한 감독의 딸이기도 하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초등학생 시절인 12세 때 부모님과 함께 캐나다 이민을 떠나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던 셀린 송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린 작품. 영화는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첫사랑 '나영'(그레타 리)과 '해성'(유태오)이 24년 만에 뉴욕에서 다시 만나 끊어질 듯 이어져온 그들의 인연을 돌아보는 이틀간의 운명적인 이야기를 그렸다.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셀린 송 감독과 스포츠한국이 만났다. 송 감독은 '패스트 라이브즈'의 아카데미 시상식 노미네이트 소감부터 유태오와 그레타 리 두 주연배우 캐스팅과 관련된 에피소드, 영화 제작과 관련된 다양한 후일담 등을 소개했다. 

"이번 영화는 제가 실제 경험한 일이 바탕이 됐어요. 어느 날 미국 뉴욕의 한 바에서 한국에서 놀라온 제 한국인 친구와 미국인 남편 세 명이 대화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이 두 남자 사이에서 해석을 하고 있더라고요. 제 친구는 영어를 못하고 남편은 한국어를 잘 못하니 이 둘 사이에서 대화를 이어주고 있는 저를 보며 우리는 보통 사람이지만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는 생각이 들었죠. 내가 다리가 되고 있더라고요. 이런 생각에서 두 가지 언어를 오가는 사이 제 안의 역사나 아이덴티티가 넘나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내 안의 과거와 미래가 함께 술을 마시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죠. 이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쓰게 됐고 이야기를 로맨스로 풀어 나갔죠."

셀린 송 감독/사진제공=CJ ENM

'패스트 라이브즈'는 해외 유명 감독들의 극찬 멘트로도 이미 유명하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정교하고 섬세하며 강렬한 영화다. 지난 20년 간 본 최고의 장편 데뷔작"이라고 말하며 압도적 찬사를 보냈고, 미국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도 "'패스트 라이브즈'를 짧게 요약하면 우리가 수없이 봐왔던 로맨틱 코미디처럼 들리겠지만, 지금 내 머릿속엔 이 영화의 수많은 독특한 이미지와 아이디어가 생생하게 맴돌고 있다"고 칭찬한바 있다. 앞서 창작의 수많은 고뇌와 어려움을 겪은 선배 감독들의 극찬 메시지를 들으며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오스카에 노미네이트 된 것과 여러 시상식이나 이벤트 행사장에 다니면서 제가 수상을 하거나 노미네이트된 자리들에서 선배 감독님들과 같은 방에 대기할 일이 많이 있었어요. 그런 자리에서 서로를 소개하고 대화를 나눴죠. 감독님들이 제 영화를 보셨고 어떤 부분이 좋았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셨어요. 너무 감사하죠. 그런데 그 분들은 한결 같은 이야기를 하세요. '결국 중요한 것은 영화 그 자체다'라고요. 레드카펫에도 서고 옷도 차려 입어보고 하지만 결국 '요한 것은 관객을 위해 어떤 영화를 만들었는가'라고요."

셀린 송 감독은 연출 의도에 대해 자신이 서울에서 온 친구와 미국인 남편 사이의 대화를 통역하면서 느낀 '인연'이라는 주제에 대해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었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인연'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국가의 관객들도 충분히 그 의미를 알 것 같다고 답해준다는 것. 수많은 시상식에서 수상한 것을 넘어서 관객과 영화의 주제로 소통할 수 있었다는 것이 송 감독이 꼽는 영화의 가장 큰 성과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고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연애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인생 자체에 담긴 로맨스를 그리고 있기는 하지만 장르로서 로맨스물은 아니죠. 또 극중 해성과 나영이 12년마다 만나게 되는데 동양적 정서의 12지간을 담은 건 아니에요. 제가 한국에서 태어나 12년을 살았기에 인연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었고 제 일상에도 인연과 관련된 일들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 단어를 알기 때문에 제 인생이 더 깊어졌죠. 미국에서는 대부분 그 단어를 모르시죠. 미스테리한 초반 장면에서 이 세 사람의 관계는 무엇인가 질문이 나오는데 대답 자체가 더 미스테리하죠. 저는 인연이라는 단어 밖에 생각나지 않았어요. 사랑도 아니고 연인 관계도 아닌 어린 소년과 소녀가 서로 마주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두 사람이 12년마다 만나게 되죠. 이 영화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이기에 인연이라는 단어를 모른 사람에게 알려드리는 영화이기도 해요. 이탈리아에서 살았던, 뉴욕에 산 사람이든 인연의 감정이나 느낌은 다 알고 있는 것이죠. 아주 보편적으로 아는 감정이고요. 그 단어가 없을 뿐이죠."

셀린 송 감독은 한국어와 영어가 동등한 비중으로 사용된 '패스트 라이브즈'가 아카데미 시상식의 2개 부문에 후보에 오를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기생충'의 수상이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언급했다. 그는 "사실 이 시나리오를 '기생충'이 나오기 전 썼다. 이 시나리오는 두 가지 언어로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생충'이 나오기 전과 그 이후에 내 영화에 대한 반응이 너무 달랐다. 봉준호 감독이 자막에 대해 말했던 내용이 큰 임팩트가 있었다. 할리우드 사람들에게 글로벌하게 마음을 열었다. '기생충' 이전 '패스트 라이브즈'가 자막 때문에 괜찮을까라는 말들이 나왔지만 '기생충' 이후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민자에 대한 이야기는 점점 늘어나면서 보편적으로 되어가고 있다. 이사를 많이 다니고 언어를 바꾸지 않아도 다른 도시로 옮기고 인생을 바꾸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더이상 이민자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특별한 것이 되어가고 있지는 않다"라며 "산업적으로는 잘 될 것 같은 작품을 만들어갈 뿐이다. 업계에서는 특별한 애티튜드가 있다기 보다 잘 될 것 같다고 생각되는 작품을 선택할 뿐"이라고 전했다.

송 감독은 오스카 노미네이트와 관련된 부친의 반응에 대해서도 간단히 언급했다. 그는 "아빠는 너무 자랑스러워 하시고 기뻐하신다. '자랑스럽고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다"며 "저 또한 수상한다면 당연히 좋을 것 같다. 데뷔작으로 노미네이트된 것 만으로도 영광이다. 충분히 행복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극중 어린 나이에 우정 이상의 감정을 느꼈던 나영이 해외로 이민을 떠나자 20대 청년이 되어 그녀의 행방을 수소문해 SNS로 소통을 하다가 결국 12년 뒤인 30대 중반에 그녀를 만나러 뉴욕으로 향하는 해성 역을 연기한 유태오의 캐스팅 스토리도 재미있게 소개했다. 

"해성 역을 위해 여러 배우들에게 오디션 테이프를 받았어요. 보통 테이프만 보고 누군가를 캐스팅하지는 않아요. 콜백이라고 해서 배우를 불러서 대화를 나누고 연기를 보고 알아가는 과정을 가집니다. 30명 정도 해성 역을 위해 불렀는데 유태오가 마지막 사람이었어요. 유태오 배우가 가지고 있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가 들어서자마자 '아, 이사람이다'라고 생각했죠. 유태오의 안에 어린아이와 어른이 함께 있었어요. 모든 영화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해성의 캐릭터를 위해서 중요했죠. 어떻게 보면 어린아이 같고 어떻게 보면 어른 같고 그런 모순점이 중요했어요. 우리 영화는 모순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니까요. 유태오가 '안녕하세요'라며 웃는데 어린아이가 있더라고요. 그의 나이가 마흔이었는데 말이죠. 유태오는 마치 타임스퀘어의 전광판처럼 모든 마음이 얼굴에 드러나는 사람이에요. 그 부분이 좋았죠. 이 사람이 나와 벼랑 끝까지 갈 배우인지 궁금해 3시간 30분이나 오디션을 거쳤어요."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msj@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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