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1의 목소리] 일본 사람이죠?…그래서요?
니카미 유리에ㅣ협동조합 쩜오책방 조합원
‘여기서 나는 외국인이 아니구나, 마을 사람이구나.’
한국에 온 지 8년. 마을살이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이주민이라고 하면 ‘외국인’이나 ‘불편함’ 같은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가. 하지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그런 단어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파주시 교하에서 ‘나다움’을 찾으며 성장하고 있다.
그동안 일본 사람이라서 받은 상처들도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던진 말 때문이었다. 아이를 안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 내가 일본 사람인 것을 안 행인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일본 사람이죠? 나 같으면 결혼 반대할 것 같아요.”
하지만 한국에 살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상처의 말보다 마을 사람의 따듯한 말이다.
2016년, 남편 직장 때문에 교하로 이사하게 됐다. 아는 사람도 없고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채 도서관에 갔다. 책을 좋아했고 첫째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터라 그림책을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었다. 도서관은 내게 쉼터가 되어줬고 아이에게는 놀이터가 되어줬다. 사서 선생님들은 나를 외국인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아이 엄마로 따듯하게 대해줬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과 만났다. 일본 소설을 원서로 읽는 모임 사람들, 육아하는 엄마들, 도서관에서 봉사하는 분들…. 그 인연으로 일본 그림책 읽기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도서관이라는 공간,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사람들을 만났고 활동 범위가 넓어졌다. 마을에 있는 책방에서 일본어 수업도 하게 됐다. 주말이면 서울에 가 일본어 강사로 일했던 나는 생활 공간인 마을에서 일하며 아이를 키우게 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기뻤다.
마을 사람들과의 인연 덕분에 마을 책방을 운영하는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되었고 ‘디어 교하’라는 마을 잡지의 기자단으로 활동하게 됐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한 사람 한 사람 각자 좋아하는 것과 몰두하는 무언가가 있다. 육아를 하거나 일에 매진하다 보면 ‘나’를 잊을 때가 많다. 이 마을에서는 내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여기서 나는 한 ‘사람’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나는 누군가의 친구이고 옆집 사람이자 이웃이다. ‘외국인’이라는 개념은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면 함께 고민해주며 적당한 거리에서 신경 써주는 분들이 많다. 어른이 되어도 다른 사람의 단점을 받아들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은 좋은 방향으로 공동체를 이끌기 위해 서로 노력한다.
가끔 다른 지역에 여행 가면 “일본 사람이세요?” 하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일본 사람이었지’ 하고 자각하게 된다. 사실 이제는 낯선 질문이라서 그 질문을 들으면 묘한 기분이 든다. 그 물음이 싫을 때도 있다. 마음속으로 ‘그래서?’ 하고 대답해 본다. 한국 사람과 외국 사람을 구별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든다. 질문하는 사람은 별생각이 없었겠지만 내겐 차별의 말로 들린다. 그만큼 나는 이곳에서 한 사람으로 살고 싶은 것 같다.
지난해, 마을 사람들과 ‘교하 시청각 클럽’을 결성했다. 공동체 실험 사업에 선정된 것이다. 이 사업을 통해 나는 이주민이 아니라 마을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공동체 생활은 소통과 이해를 통해 풍성해진다는 것을 경험했다. ‘아시타청’(我視他聴)이라는 프로그램은 나를 잘 바라보고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는 뜻이다. 여섯명의 팀원이 각자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기반으로 여러 활동을 기획했다. 나는 ‘마음 스트레칭’이라는 이름으로 그림책을 통해 나와 대화하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여러번 가졌다.
‘외국인’이라는 낙인 때문에 주저한 일이 많다. 몇년 동안 공부한 그림책 심리학 또한 단순히 나를 위해 공부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이주민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응원과 참여자들의 반응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이주민으로 살며 때때로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조용히 상처받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지만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어서 용기를 얻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이주민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통하는 이야기이다. 그 사실을 한 사회의 소수자가 되어서야 알게 됐다. 모르는 사람의 차가운 말보다 이웃의 따듯한 말이 몇 배의 힘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를 알아주는 사람들을 만나려면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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