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짜리 ‘핑계고’ 8백만뷰…유튜브가 길~~~~~어졌다
“20분으로 줄이면 어때요?”
유재석이 유튜브를 시작했을 때 주변에서 이런 얘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짧아야 뜬다는 유튜브 세계에 뜬금없이 ‘롱폼’(긴 영상)을 들고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2022년 11월17일 그가 진행하기 시작한 ‘핑계고’는 1회 때 31분58초짜리였는데 지난해 50분 남짓을 기본으로 1시간을 넘어섰다. 지난해 12월17일 방영한 ‘핑계고’ 시상식은 2시간5분58초나 됐다. 이 시상식 조회수는 873만회(7일 기준)를 기록했다. 핑계고 46개 영상(39개 에피소드) 중 20개가 500만회 이상을 찍었다. 1000만회 이상도 19회(51분56초)와 6회(57분53초)로 두편이나 된다. ‘핑계고’ 제작진은 “맥락없이 떠들어 재끼는 게 주 콘텐츠이기 때문에 클립을 쪼개거나 빠른 호흡으로 편집하면 흐름이 끊어져 집중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리얼한 호흡으로 한번에 쭉 보는 것이 적합한 콘텐츠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쇼트폼’(짧은 영상)이 건재한 온라인 콘텐츠 시장에 롱폼 바람이 불고 있다. 롱폼 콘텐츠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주로 라이브 방송 중심이었다. ‘침착맨 원본 박물관’에서 길게는 11시간 이상 생방송을 송출하고 ‘슈카월드’는 매주 일요일 밤 2~3시간씩 라이브를 진행해왔다. 최근에는 연예인 토크쇼가 중심에 섰다. ‘짠한형 신동엽’ ‘조현아의 목요일밤’ ‘요정식탁’(요정재형) ‘성시경의 먹을텐데’(성시경) 등 최근 2~3년 사이 쏟아진 유튜브 콘텐츠는 대개 30~50분이고, 1시간짜리도 적지 않다. 유튜브 홍보팀은 “실시간 라이브 위주로 인기있는 롱폼 콘텐츠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핑계고’ 등 토크쇼 인기로 롱폼이 더 도드라지는 것 같다”고 했다. 2023년 국내 유튜브 인기 동영상 순위를 보면 1위와 3위가 롱폼 토크쇼다.
특히 지난해부터 뜨겁게 사랑받는 ‘핑계고’는 유튜브 생태계를 뒤흔들고 있다. 유튜브 콘텐츠는 퇴근하면서 보기 좋게 주로 오후 6시 이후에 업로드하고 특별한 콘셉트를 갖고 특정 타깃을 끌어들이는데, ‘핑계고’는 이런 흐름을 무시하고 그냥 ‘마이웨이’다. 10분 미만의 쇼트폼 채널을 운영하는 한 유튜버는 “‘핑계고’는 오전 9시 업로드하고 편집도 거의 하지 않고 배경음악(BGM)도 넣지 않는다. 어떻게든 튀어서 주목받으려는 느낌이 없는데 반응이 폭발했다. 유튜브 세계가 ‘핑계고’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 같다”고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오히려 긴 시간 꾸밈없이 보여주며 편안함과 사실감을 준 것이 ‘핑계고’ 인기 비결”이라며 “유재석과 출연자가 진짜 즐겁게 대화하는 게 느껴질 정도로 수다에 가까운 이야기를 풀어낸다.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들의 실제 만남을 옆에서 지켜보는 기분이 들게 해서 1.5배속이나 스킵(건너뛰기) 하지 않고 보게 한다”고 했다. 한 애청자는 ‘핑계고’ 댓글에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 틀어놓고 보다가 듣다가 한다”고 적었다.
1시간 남짓의 롱폼이 인기를 얻은 것은 정보 홍수에 피로감이 쌓이면서 가볍게 접근할 만한 콘텐츠를 선호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20분 미만 쇼트폼은 정보를 꽉꽉 채워 넣어 1초도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빵송국’에서 4~5분짜리 쇼트폼을 선보인 코미디언 곽범은 “유튜브 콘텐츠는 몰래카메라, 부캐쇼, 스케치 코미디 등으로 이어지며 집중이 필요한 ‘보는 콘텐츠’였는데, 이제는 힘을 빼고 편하게 볼 수 있는 ‘듣는 콘텐츠’로 나아간 것 같다”고 했다. ‘침착맨’은 지난해 5월19일 유튜브에서 “편집을 너무 열심히 해서 매 순간 재미있으면 (시청자들이) 안 본다. 부담 없게 오래 보게 하려면 보다가 놓쳐도 아깝지 않은 콘텐츠여야 한다”고 나영석 피디(PD)에게 조언했다.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 제작 시스템이 유튜브로 옮겨와 또 하나의 방송국이 된 흐름도 롱폼을 활성화시켰다. 과거 유튜브는 코미디언들이 아이디어를 앞세워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곳이었는데, 대형 기획사에서 웹콘텐츠팀을 두고 예능을 제작하면서 시장이 커졌다. ‘핑계고’ 등이 담긴 유튜브 채널 ‘뚠뚠’도 유재석 소속사인 안테나에서 제작한다. 김태호∙나영석 등 지상파 예능을 주름잡던 피디들도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나영석의 나불나불’(채널십오야) ‘장도연의 살롱드립’(TEO 테오) 등이다. ‘조현아의 목요일밤’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 등은 ‘해피투게더’를 만들던 김광수 전 한국방송(KBS) 피디가 제작했다.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하는 한 지상파 출신 피디는 “티브이 예능 노하우와 유튜브 속성이 더해진 새로운 예능이 나오고 있다”며 “방송국 예능프로그램의 역할이 이제 유튜브로 넘어온 것 같다”고 했다
유튜브 쪽은 “크리에이터들이 내용에 따라 형식을 다르게 선택해 업로드하는 등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고 있다”고 짚었다. 유튜브는 롱폼과 몇 시간 영상인 라이브 스트림 외에도 2021년 쇼트폼 영상 서비스인 ‘쇼츠’를 도입했다. 쇼트폼으로 인기를 끈 틱톡은 긴 영상 업로드를 시험 중이라고 한다. ‘핑계고’도 롱폼 외에 20분 남짓의 ‘미니 핑계고’를 별도로 내보낸다. 쇼트폼 콘텐츠로 인기를 끈 곽범도 동료들과 함께 여행하는 편안한 분위기의 롱폼 콘텐츠를 준비 중이다. 곽범은 “시간이 별로 없을 때는 10분 미만 영상을 보고, 혼자 밥 먹을 때는 1시간 남짓 긴 영상을 보는 등 상황에 맞는 다양한 콘텐츠를 찾게 될 것 같다”고 했다. ‘핑계고’ 제작진은 “어떤 콘텐츠냐에 따라 적절한 길이나 호흡이 있다”며 “이제는 짧고 길고가 콘텐츠를 보는데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소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의-정 갈등 3주째 평행…교수·전임의도 꿈틀, 정부는 ‘2천명’ 반복
- 미래권력 뜨고 의료대란 장기화…민주당 총선 겹악재
- 김신영 “많이 배웠습니다”…마지막날 객석에선 “이제 정들었는데”
- 저소득층만 음식값 줄였다…과일·채소 급등의 서글픔
- “윤 대통령께 힘 돼주길”…유튜버 버릇 못 고치는 인재개발원장
- 전국 의사 5천여명 시국선언문 서명…“진짜 의료개혁 간절히 바라”
- 바이든 “독재자”·트럼프 “넌 해고야”…조지아서 첫 유세 대결
- [단독] 쿠팡, 오픈마켓 물건도 ‘로켓배송’…택배업 지각변동 예고
- 해골 몰골로 변한 가자 10살 소년 결국…“이스라엘 육로 열어줘야”
- “아이유 콘서트에 아이 혼자 왔는데…” 뜻밖의 편지에 감동한 팬 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