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스티브 잡스'의 12조 원 사기극, 덜미 잡은 단서는?

CBS 오뜨밀 2024. 3. 10.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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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오뜨밀 라이브> FM 98.1 (20:05~21:00)
■ 진행 : 채선아 아나운서
■ 대담 : 서정암 아나운서

◇ 채선아> 의료계 스티브 잡스라고 불리며 스타덤에 오른 스타트업 CEO 엘리자베스 홈즈. 그런데 어느 날 그녀를 둘러싼 의문이 하나씩 제기되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2015년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사건, 서정암 아나운서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서정암> 네. 안녕하세요. 오늘 소개해드릴 사건은 구글, 아마존, 메타 이렇게 어마어마한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모여 있는 실리콘 밸리를 뒤흔든 사건입니다. 2015년 기회의 땅 실리콘밸리에는 유독 주목을 받던 인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엘리자베스 홈즈라는 여성인데요. 미국의 바이오 스타트업 테라노스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였습니다.


◆ 서정암> 테라노스는 혈액으로 질병을 검사하는 키트를 개발한 곳인데요. 특히 검사 방식이 굉장히 주목을 받았습니다. 손가락 끝에서 피를 조금 채취를 합니다. 그리고 테라노스에서 개발한 키트인 에디슨에 피를 한 방울만 똑 떨어뜨리면요. 250여 개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합니다.

◇ 채선아> 우리 체하면 손을 따서 피 한 방울 내잖아요. 그런 것처럼 한 방울을 키트에 딱 놓으면 질병 250여 개 중에 내가 해당되는 게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해 준다는 거잖아요. 우리는 건강 검진 가서 몇 시간을 쓰는데

◆ 서정암> 엄청 편리하죠. 보통 병원에서 혈액 검사 같은 거 하면 일반적으로 혈관에 주사 바늘을 콱 찔러 넣어서  피를 뽑잖아요. 그런데 테라노스에서 만든 키트는 딱 피 몇 방울이면 된다니까 기존의 의학 상식을 뒤집는 획기적인 발명이었던 겁니다.

특히나 미국은 또 의료비가 굉장히 비싸잖아요. 그래서 질병 검사에도 수백 달러가 들어간대요. 그리고 종합 검진 한번 받으면 수 천 달러까지 각오해야 하는데 테라노스에서 만든 키트는 50달러면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 돈으로 하면 6만 원 정도인데 이 가격에 250여 개의 질병 검사를 할 수 있던 거죠.


◇ 채선아> 우리 나라에 들어와도 인기 있을 것 같거든요.

◆ 서정암> 이런 혁명적인 기술 개발에 실리콘밸리가 굉장히 들썩였다고 합니다. 엘리자베스가 30세가 되기도 전인 2010년에 테라노스가 10억 달러, 그러니까 우리나라 돈으로 1조 원이 넘는 가치의 기업이 됐고요. 2015년에는 무려 기업 가치가 100억 달러까지 치솟아서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돈이 많은 여성 부호로 꼽히기도 했다고 합니다.

◇ 채선아> 당시 기준으로 우리 돈 12조 원 정도 되는 거니까 어린 나이에 이 큰일을 이룬 거잖아요.

◆ 서정암> 엘리자베스가 테라노스를 설립한 계기도 드라마 같아요. 엘리자베스는 19살인 2003년에 회사를 세웠다고 하는데요. 당시 엘리자베스는 스탠퍼드대학 화학공학과를 다니고 있었고요. 1학년을 마치자마자 중퇴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엘리자베스가 중요한 경험을 하나 하게 되는데요. 게놈 연구소에 가서 인턴 생활을 했대요. 그런데 그때가 2003년이었거든요. 혹시 2003년에 아시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시나요?


◇ 채선아> 2003년이라고 하면 사스가 한 번 쫙 돌았는데 우리는 잘 막아냈다는 뉴스가 떴었어요.

◆ 서정암> 맞습니다. 엘리자베스도 이 당시에 주사기로 혈액 샘플을 채취해서 사스의 원인을 밝혀내는 바이러스를 채취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요. 사스로 인해서 병원에 아픈 환자들이 밀려들어온다는 얘기를 들으니까 엘리자베스가 갑자기 아이디어가 딱 떠오른 거예요. 많은 환자들을 하나하나 혈액 검사하지 말고 간단하고 쉽게 검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테라노스를 설립하게 됐다고 합니다.

◇ 채선아> 말 그대로 위기에서 기회를 본 경우인데 설립 스토리부터가 언론이 참 좋아하는 스토리가 있네요.

◆ 서정암> 맞습니다. 그래서 월스트리트 저널 같은 큰 언론사에서 이런 스토리를 인터뷰해서 싣기 시작했고요. 포춘지, 포브스지 같은 저명한 잡지에서 앞다투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그때 나왔던 별명이 '넥스트 스티브 잡스'였어요. 우리나라 말로 하면 차세대 잡스죠. 홈즈는 스티브 잡스처럼 발표를 하거나 언론에 나올 때면 검은색 터틀넥을 입었다고 합니다.


◇ 채선아> 일부러 스티브 잡스 같은 이미지를 내려고 스타일링을 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 서정암> 인터뷰도 거절하지 않고 다 했다고 하고요. 수많은 인터뷰 뉴요커라는 매체와 한 인터뷰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어요. 이 매체의 기자가 엘리자베스의 성공담을 들으면서 인터뷰를 끝내면서 한 가지 질문을 했대요.

혈액 검사 키트의 원리가 뭔지 궁금해서 "어떻게 혈액 단 몇 방울로 질병을 검사할 수가 있나요?"라고 질문을 했는데 엘리자베스 홈즈가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화학 반응을 수행하는 거죠. 그러니까 화학 반응이 발생하고 혈액과 검사 키트 간의 상호 작용으로부터 신호를 생성한 뒤 결과가 나오면요. 이를 인증된 실험실 직원이 검토를 해서 결과를 알려드리는 겁니다."이렇게 답변을 했다고 해요.

◇ 채선아> 신호 들어오면 변환해서 결과를 직원이 분석해서 알려준다? 뻔한 얘기 같은데요.

◆ 서정암> 이 에디슨이라는 검사 키트가 뭔가 좀 특별한 게 있다는 얘기가 아니라 너무 추상적이고 일반적이지 않나 싶거든요. 샘플에서 화학 반응을 보이는 걸 실험실 직원이 검토한다. 이렇게 얘기를 한 게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아니야? 이게 CEO로서 할 말이야?"라고 이 기자가 생각한 거죠.

◇ 채선아> 그런데 사실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뷰이기 때문에 전문 용어를 섞어가면서 하면 어렵다고 비판 받잖아요. 쉽게 말하려고 그런 게 아닐까요?

◆ 서정암> 당시 인터뷰를 진행했던 뉴요커의 기자는 이게 의심스럽다면서 글을 쓰게 되는데요. 이 기사를 월스트리트 저널에 근무하던 한 기자가 보게 됩니다. 이 기자의 이름은 존 캐리루. 퓰리처상을 수상한 적이있는 탐사 전문 기자고 전설적인 언론인으로 꼽히는 사람이었어요.


◆ 서정암> 캐리루 기자가 이 기사를 읽자마자 '진짜 냄새가 좀 나는데?' 엘리자베스를 의심하기 시작해서 심층 취재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테라노스를 퇴직한 직원들에게 놀라운 사실을 하나 듣게 되는데요. 바로 엘리자베스와 테라노스가 주장하는 이 에디슨이라는 메디컬 키트가 거대한 사기극이라는 겁니다.

◇ 채선아> 그런데 미국이 음모론의 나라라고 하잖아요. 똑똑한 사람들이 다 모여 있는 실리콘 밸리에서, 설립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아까 기업 가치가 100억 달러까지 올랐다 했잖는데 그게 다 거짓이라면 말이 안 되는 거죠.

◆ 서정암> 퇴사자 타일러 숄츠라는 사람은 스탠퍼드 대학에서 엘리자베스가 강연을 하는 걸 보고 감명을 받아서 테라노스에 입사를 했대요. 그리고 에리카 총이라는 사람도 UC버클리를 다니고 있었는데 엘리자베스한테 영감을 받아서 테라노스에 입사를 하게 됐다고 하는데 이 두 사람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회사 좀 이상한데?'라는 생각을 했대요.

◇ 채선아> 어떤 점이 이상했나요?


◆ 서정암> 테라노스에 입사를 보안 유지 각서를 쓴대요. 물론 다른 회사들도 쓰지만, 여기는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는 거죠. 옆 부서랑도 얘기하지 마라, 이런 식으로 옆부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경우도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직원들 중에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거 좀 문제가 있는 거 아니에요?"라고 이의를 제기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협박이었다고 합니다.

◇ 채선아> 보통 다른 회사로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기 위해서 그런 차원의 보안을 하잖아요. 그런데 이거는 내부의 소통을 그냥 차단해버린 거네요.

◆ 서정암> 키트를 이용하면 250가지 질병을 알 수 있다고 했잖아요. 근데 퇴사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실제로는 10%도 못 알아낸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해요. 이렇게 캐리루가 엄청난 비밀을 하나둘씩 캐고 있는데 엘리자베스도 눈치를 챈 겁니다. 바로 변호사를 시켜서 "언론사에 허위사실 공표하면 고소한다"고 협박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캐리루는 이런 협박에 굴하지 않고 6개월간 추가 취재를 더 했대요. 그 뒤에 "엘리자베스 홈즈와 테라노스의 모든 것은 거짓" 이라는 기사를 2015년 10월에 월스트리트 저널에 싣게 됩니다.

◇ 채선아> 처음에는 다들 안 믿으려고 했을 것 같아요.

◆ 서정암> 다 안 믿었는데 피해갈 수 없는 결정적인 증거가 하나 나옵니다. 엘리자베스와 키트 검사 관련 일을 하는 직원 둘이서 나눈 대화 내용이 유출된 거예요. 직원이 "에디슨으로 검사할 수 있는 질병은 얼마 되지 않는데 이렇게 수많은 질병을 검사할 수 있다는 식으로 홍보하는 건 곤란하지 않나요?"라고 했더니 엘리자베스 홈즈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언젠가 우리는 많은 질병을 검사할 수 있는 기술을 곧 갖게 될 테니까요."라고 했다는 거죠.


◇ 채선아> 대체 뭐가 문제가 없다는 건지 전 이해가 안 되는데요. 없는 기술을 있다고 한 거잖아요.

◆ 서정암> 아직은 기술이 없다는 걸 실토한 겁니다. 이런 보도가 나가니까 에디슨을 통해서 질병 검사를 받았던 사람이 나도 이상했다며 폭로가 이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테라노스에서 질병을 진단받고 병원에 갔는데 정밀 검사를 해보니까 멀쩡하다는 거예요. 연구에 따르면, 테라노스의 일치도는 32%, 오차가 68%라고 하고요. 과거 엘리자베스 홈즈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던 언론들이 사과 보도하느라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 채선아> 언론도 검증 없이 경쟁하듯 보도한 잘못이 있는 거고요. 정작 본인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가장 궁금하거든요.

◆ 서정암> 주변 사람들은 난리가 났는데 엘리자베스 본인은 당당했습니다. '지금은 진단 못하지만 조만간 기술을 확보할 거니까 문제가 안 된다'고 반응했다고 해요. 그렇지만 2016년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와 식품의약국이 테라노스를 상대로 조사에 들어가고 '테라노스는 기술을 과대 포장했고 성능 테스트를 조작했다'는 결과를 발표합니다. 거짓으로 만들어진 기업이라는 게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 거죠.

◇ 채선아> 이미 투자도 여기저기서 많이 받았을 거 아니에요? 그러면 후폭풍이 엄청났을 것 같은데요.

◆ 서정암> 많은 투자사들이 투자를 철회했고요. 또 엘리자베스 홈즈와 테라노스가 사기를 저질렀다면서 소송을 걸게 됩니다. 그래서 테라노스의 기업 가치가 100억 달러였는데 0 달러가 돼서 신기루처럼 사라졌어요. 그 뒤로 회사가 대규모 사기죄로 고소도 당하고 2018년 9월에는 결국 청산 절차도 밟게 됩니다.

◇ 채선아> 창업 15년 만에 실리콘 밸리를 흔들었던 테라노스라는 기업이 흔들리면서 사라지게 된 거잖아요.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한 거짓말에 책임을 져야 되겠어요.

◆ 서정암> 그런데 참 괘씸한 게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엘리자베스 홈즈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그리고 1,600억 원이 넘는 호화로운 집에서 생활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그 뒤로 2022년, 엘리자베스 홈즈는 사기와 사기 공모 혐의로 1심에서 11년 4개월의 징역형을 받게 됐고 현재 브라이언 연방 교도소에 수감됐다고 합니다.


◇ 채선아> 재판 받으러 들어가는 사진을 보니 죄를 지었다, 죄송하다는 느낌보다는 당당하게 들어가는 느낌이에요.

◆ 서정암> 참 뻔뻔해요. 재판 결과를 잘 뜯어보면요. 투자자를 속여서 사기를 쳤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모두 유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부정확한 검사 결과로 환자를 속인 혐의는 무죄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피해를 봤던 환자들은 전혀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결과였던 거죠. 이 재판에서 판사가 이런 말을 했대요. "누구나 실패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기로 인한 실패는 옳지 않습니다."

◇ 채선아> 네. 여기까지 서정암 아나운서와 함께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서정암>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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