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Leave No Trace'에 담긴 골프 철학
[골프한국]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안 오신 듯 다녀가소서'
공중화장실에서 자주 마주하는 표어다. 화장실을 깨끗하게 사용하라는 완곡한 어법이 와닿는다.
사용한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 할 곳은 공중화장실만이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선 '흔적 남기지 않기(Leave No Trace)'가 야외활동은 물론 일상생활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흔적 남기지 않기'는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야외활동에 대한 사려 깊고 지속 가능한 접근방식을 장려하는 철학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 산림청은 1991년 아웃도어 리더쉽 스쿨과 함께 '흔적 남기지 않기'를 실천하기 위한 7가지 환경보호 윤리규정을 정했다.
미국 산림청이 정한 7가지 원칙은 아래와 같다.
1.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리 목적지 조사, 기상조건 확인, 허가, 적절한 장비 등 지식을 확보한다.
2. 자연 훼손을 최소화해 생태계 파괴를 막고 자연경관을 그대로 보존한다.
3. 쓰레기, 음식물 찌꺼기, 배설물 등을 올바르게 처리하고 현장 처리가 안 되는 것은 되가져 온다.
4. 자연의 매력은 손길이 닿지 않은 아름다움에 있으므로 꽃을 꺾거나 야생동물 방해하거니 바위와 유물에 흔적 남기는 훼손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그대로 야생을 경험한다.
5. 캠프파이어를 자제하고 하더라도 생태계에 영향을 끼치지 않아야 한다.
6. 야생동물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 먹이도 주지 않아야 한다. 그들의 집에 온 손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7. 자연은 다른 방문객과 함께 교감하는 공유공간임을 명심해 소음을 최소화하고 다른 사람의 고독과 평온 존중함은 물론 트레일을 양보하고 배려하고 보호하며 교감한다.
'자유로운 야외생활'을 보장하는 스칸디나비아반도 국가에서는 '흔적 남기지 않기'가 생활화되어 있다. 노르웨이어로 자유(fri), 공기(lufts), 삶(liv)이라는 단어를 이어 만든 '프리루프트슬리브(Friluftsliv)'는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랜드 등 노르딕(Nordic) 문화권에서 두루 통용된다.
단어의 조합에서 알 수 있듯 프리루프트슬리브란 '자유로운 야외 생활'이다. 야생과 가까이하면서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함께 호흡하며 위대한 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자연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갖는 야외활동을 일컫는다.
스웨덴은 프리루프트슬리브를 생활화해 오다 헌법에 '알레만스라텐(ALLEMANSRÄTTEN)'이란 방랑할 권리를 명문화하기까지 했다. 스웨덴어 알레만스라텐은 영어로 'Right of Public Access' 곧 공공의 접근 권리라는 뜻으로 쉽게 풀면 누구나 대자연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구체적으로 자연 속을 돌아다닐 권리, 자연에 머물 권리, 길을 잃고 헤맬 권리, 일정을 중단할 권리, 아무 행동도 안 하고 멍하게 있을 권리 등을 보장한다. 개인 소유지를 제외하곤 내외국인 구분 없이 누구나 주택에서 70m만 떨어지면 어느 곳에서나 캠핑을 즐기도록 보장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방랑할 권리는 이 권리를 행사하는 모든 국민들에게 'Leave No Trace'의 생활화가 정착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골프야말로 '흔적 남기지 않기'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스포츠다. 스코틀랜드에서 골프가 시작된 이래 가장 기본적인 골프 규칙은 '공이 놓은 상태 그대로' 경기한다는 것이지만 바로 뒤따르는 것이 코스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목사가 골프장 근처를 지나다 한 골퍼가 퍼트를 실패한 뒤 화난 나머지 퍼터로 그린을 찍는 모습을 보고 이 사실을 클럽에 알리자 바로 다음 날 마을 광장 게시판에 그 사람을 이 마을에서 추방한다는 공고문이 나붙을 정도다.
초보자일수록 골프 코스에서 흔적을 많이 남긴다. 샷을 하면서 잔디를 파내고도 떨어진 잔디를 제 위치에 갖다 놓지 않고 벙커샷을 하고도 모래를 고르지 않는다. 특히 그린 훼손에 둔감하다. 볼이 떨어진 자국을 손질하지 않고 골프화 바닥으로 생긴 그린 손상을 그대로 두고 떠나기도 한다.
떨어진 잔디를 제자리에 갖다 놓아 다시 자라게 하고 그린에 생긴 볼 자국을 없애고 모래를 고르는 행위들은 바로 다른 이용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배려다. 이런 기본적 배려를 할 줄 모른다면 골프를 칠 자격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진짜 골프 고수는 코스의 보호는 물론이고 라운드에서 경험한 정신적 흔적마저 말끔히 지우고 떠날 줄 안다, 실패한 라운드였던 성공적인 라운드였던 그 코스가 안긴 모든 것을 코스에 남기지 않고 마음에 담아 떠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 그 코스를 찾았을 때 옛날 기억에 사로잡혀 자만이나 공포에 빠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옛 기억을 잊고 새로운 마음으로 라운드를 할 수 있다.
'Leave No Trace' 새겨볼 만하지 않은가.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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