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숙 회장 "OCI 통합, 한미 지키는 길이자 임성기 회장 뜻"
두 아들과 경영권 분쟁…"돌아오길 엄마 마음으로 기다려"
(서울=뉴스1) 황진중 기자 = “이 세상에 저보다 임성기 선대 회장을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번 결정이 결국은 임 회장의 뜻이고, 한미의 방향입니다. 임 회장이 부탁하고 가신 일을 제가 이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은 8일 서울 송파구 한미타워에서 진행한 한미·OCI 통합 발표 이후 첫 언론 인터뷰를 통해 “OCI그룹과의 통합은 ‘R&D 집중 신약 개발 명가’라는 한미의 정체성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송영숙 회장은 한미그룹 창업주 고(故) 임성기 선대 회장의 배우자다. 2020년 임성기 회장 타계 후 한미그룹 경영진 추대로 현재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 겸 한미그룹 회장 직책을 맡고 있다.
송 회장은 최근 경영 개선을 위해 한미그룹과 OCI그룹의 통합을 발표했으나 아들 임종윤·임종훈 사장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때아닌 경영권 분쟁에 휩싸였다.
송 회장은 통합에 제동을 건 두 아들을 향해서 “어느 집이든 이런 비슷한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본다”면서 “어머니를 좋아했고 존경했던 두 아들이 다시 본연의 자리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국에는 저의 결심을 이해할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세상이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헬스케어 분야는 더 그렇다”면서 “(이번 통합 모델은) 서로를 지키면서 더 큰 발전을 위해 나아갈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오픈이노베이션이고, 이종 산업 기업 간의 결합이어서 오히려 리스크가 훨씬 적다”고 말했다.
다음은 송영숙 회장과의 일문일답.
-OCI그룹과의 통합 발표 이후 여러 상황이 겹쳤다. 심경은 어떤지. ▶이럴 때일수록 가족이 합심해야 하는데, 주주들에게 면목이 없다. 우리 가족은 아주 화목했는데 한미를 사랑하는 방식에 대해선 이견이 있는 것 같다. 어미로서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공과 사는 분리해야 한다. (두 아들 주장처럼) 한미를 지금 이대로 그냥 내버려두자는 태도로는 회사를 지킬 수 없는 상황이다.
-한미가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는 없었나. 꼭 통합이 필요했나. ▶임 회장님 돌아가신 후 가족에게 부과된 상속세가 이번 통합의 단초가 됐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통합 결정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한미가 그저 우리나라에서만 최고인 로컬 회사로 남아도 된다고 생각했다면, 또는 해외 사모펀드나 일부 기업들의 인수합병(M&A) 사냥감이 돼도 상관없다고 봤다면, 또는 내 개인적 이익만을 생각했다면 OCI와의 통합 결정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지금 주가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을 제시한 곳도 있었지만 난 단호하게 거절했다. 한미는 임성기 회장과 제가 젊은 시절을 다 바쳐서 일군 회사다. 임성기 회장의 집념과 리더십으로 한미를 한국 최고의 신약 개발 회사로 만들었고, 그 과정에 제가 있었다. 그런 제가 한미를 해외 자본에 팔아넘기는 결정을 할 수 있겠나. ‘R&D 집중 신약 개발 명가’라는 한미의 DNA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여러 방안 중 OCI그룹과 같은 이종 산업의 탄탄한 기업과 대등한 통합을 하는 게 최선의 방안이라고 판단했다.
-왜 이종 산업 기업과의 통합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는지. ▶임성기 회장이 계실 때 한미가 동아제약 지분을 취득했는데, 시장에서는 ‘한미가 동아제약을 상대로 적대적 M&A를 하려고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당시 임성기 회장은 (지금의 통합 모델처럼) 서로의 경영권을 존중하면서, 부족한 것은 채워주고 때론 자금도 지원하면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동아제약과 협력하는 오픈이노베이션을 추진하려고 했다.
임 회장은 당시 저에게 “서로가 잘해보자는 취지인데 이렇게 비판을 하니 같은 업계에서 힘을 합친다는 게 참 어렵다. 동종 기업 간의 윈윈(Win-Win)은 한국에선 불가능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동아제약과의 협력을 포기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종 기업 간의 통합이나 인수합병은 극심한 혼란과 상처를 줄 수 있겠다는 경험적 판단이 있었다. 그래서 이종 기업인 OCI그룹과의 통합 모델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역시 이종 기업 간 통합이 서로의 전문성을 오히려 더 존중받을 수 있고, 결과적으로 파이를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뜻을 같이했다. 이것이 OCI를 선택한 이유다.
-일각에서는 통합 이후의 한미 리더십이 ‘장남’이 아닌 ‘장녀’가 된다는 사실 때문에 이번 한미 상황에 더 주목하는 것 같다. ▶세 자녀 모두 30대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같은 조건에서 경영 수업을 받아왔다. 장남은 주로 중국에서, 장녀는 아버지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차남은 한미의 관리나 영업 쪽 실무를 익히는 것에서 시작했다. 나는 세 자녀 모두 각자 영역에서 잘 해왔다고 생각한다.
장남과 차남은 아주 창의적이고 열정적이지만 개성이 강하고 다소 즉흥적이어서 언제든 사업의 방향성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 장녀 임주현 사장은 20여년간 임성기 회장 지근거리에서 그의 ‘눈과 귀’ 역할을 해왔다. 우리가 신약으로 최대의 성공과 좌절을 동시에 겪었던 시기 임 회장 옆을 지키면서 한미의 미래를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 세 자녀 중 임 회장과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눴고, 임 회장의 생각을 꿰뚫고 있었고, 임 회장의 경영자적 성격을 가장 많이 닮았다. 아버지와 생각이 다를 때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차분히 주변을 배려하며 자기주장을 관철하는 능력도 임주현 사장이 탁월했다.
-두 아들을 설득하고 있나. ▶저는 지금도 제 방식대로 계속 설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이번 상황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는 이유도 두 아들은 아마 잘 알 것이라 생각한다. 두 아들이 밖에서는 엄마와 동생(또는 누나)을 비판하고 있지만, 정작 제 앞에서는 착하고 사랑스러운 자식들일 뿐이다. 가족 간의 다툼에서 승자가 어디에 있겠나. 그리고 승자가 됐다고 좋아할 일이겠나. 두 아들이 가족이 화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선택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엄마의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송 회장의 뜻과는 달리 장남은 한미를 위해 ‘나쁜 아들, 나쁜 오빠’가 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아주 강경한 태도로 나오고 있다. ▶오죽 속상하면 그런 표현을 썼겠나. 지금, 이 순간에도 임종윤, 종훈 사장이 한미를 위한 결단에 동참해 주길 바란다. 행여나 아버지가 물려준 회사의 소중한 지분을, 값을 많이 쳐 주겠다고 유혹하는 해외 펀드에 팔아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두 아들의 요구를 해결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통합 결정에 두 아들이 참여하지 못해 더 서운함과 오해를 갖는 것 같다. 미리 언질을 줄 생각은 없었나. ▶전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한미사이언스는 상장회사다. 아들이라 하더라도 이사회 멤버가 아닌 이상 미리 알릴 수는 없었다. 발표 후 차남에게는 설명했지만, 상황이 급박하게 진행되면서 장남에게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소송 중이라 어떤 말을 전하기도 조심스럽다.
-업계는 한미그룹과 OCI그룹 간 경영 시너지 효과를 궁금해하고 있다. ▶저는 ‘R&D 명가, 신약 개발 명가라는 한미의 정체성을 지키고 발전시켜야 한다’라는 대원칙을 모든 경영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한미가 신약 개발 회사이기 때문에 이런 기조는 더욱 필요하다. 조직 구성원들이 ‘실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혁신을 위해 계속 도전해 보자’는 마음가짐을 갖도록 하려면 회사의 지속 가능한 경영 모델이 반드시 구축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선대 회장님의 철학이다.
OCI와의 통합은 신약 개발을 위한 많은 도전을 더욱 가속할 수 있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한미사이언스가 중심이 돼 유망한 신약 개발 회사나 벤처, 기술들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도 있고, 때로는 M&A에도 적극 나설 수 있다. 해외의 빅 파마들을 한번 보라. 그들은 수십번, 아니 수백번에 이르는 M&A를 통해 회사의 규모를 키워냈고, 그 체급을 기반으로 혁신을 창출해 왔다. 그들이 하면 혁신이고, 한국의 한미가 하면 사익을 위한 결정인가?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시각에서 탈피해야 한미도 살고,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도 산다.
-임성기 선대 회장이 손자·손녀에게 남긴 마지막 말을 공개해 큰 공감을 얻기도 했다. 병상의 임 회장과는 마지막으로 어떤 대화를 나눴나. ▶언론을 통해, 또 세 자녀에게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병상에서 임 회장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임 회장의 간곡한 당부들도 있었다. 이렇게 나눈 얘기를 바탕으로 임 회장은 “모든 것을 맡긴다”며 떠나가셨다. 우리 둘만의 약속이 있었고, 임 회장이 부탁하고 가신 일을 내가 이행하는 것이다. 그게 이번 통합으로까지 이어졌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한미를 지켜달라”는 그의 마지막 뜻을 지킨 것이다.
j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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