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골 몰골로 변한 가자 10살 소년 결국…“이스라엘 육로 열어줘야”
해골처럼 변한 아이의 얼굴은 살아있는 사람의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팔레스타인 가자 최남단 라파흐의 한 병원 침대에 누운 야잔 카파르네는 말라붙은 듯 움푹 패인 눈, 살을 뚫고 나올 듯 날카롭게 드러난 턱, 창백한 피부 위로 얼굴 뼈 골격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온몸에 여러 개의 정맥주사를 꽂은 채 겨우 숨만 쉬는 채였다. 고작 열 살에 불과한 나이로 영양실조와 호흡기 감염을 앓던 아이를 살리기 위해 야잔의 부모는 전쟁 통에 목숨을 걸고 백방을 뛰어다녔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9일(현지시각) “음식 부족으로 야잔의 면역 체계가 약해졌고, 그의 부모들은 아들이 삼킬만한 고영양식을 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짚었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음식조차 구하기 어려운 가자지구에서 아픈 아이가 먹을만한 부드럽고 영양 많은 음식을 구할 곳은 없었다. 야잔은 결국 지난 4일 숨졌다.
가자지구 보건 당국에 따르면, 가자전쟁 뒤 이미 20여명의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영양실조와 탈수증 등으로 숨졌다.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행동(AAH)의 영양실조 전문가 헤더 스토보는 뉴욕타임스에 “어린이가 극심한 영양실조에 걸렸다가 병에 걸리면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대부분이 구호물품 지원 뜻을 밝히는데도, 먹을 게 없어서 아이들이 굶어죽는 일이 잇따르는 것이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은 “이 비극적이고 끔찍한 죽음은 인위적이고 예측 가능하며 완전히 예방할 수 있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특히 이런 상황은 치열한 전쟁이 치러지는 남부 쪽보다 북부 쪽이 더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쪽에서 치열한 지상전이 벌어지면서 얼마되지 않는 구호물품의 이동 통로가 막혔고, 북부 국경 출입구는 이스라엘군이 열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지난달 가자지구 5살 미만 어린이 약 0.8%가 심각한 영양실조에 놓였다고 보고했다. 가자 북부의 2살 미만 어린이 약 15%와 남부 약 5%가 급성 영양실조 상태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제 구호단체들은 “가자 남부 주민들의 (구호물품) 약탈, 이스라엘의 호송 제한, 전쟁으로 손상된 도로의 열악한 상태 탓에 몇주동안 가자 북부에는 거의 아무런 구호품이 전달되지 않았다”며 “(어린이 뿐 아니라) 수십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아사 직전에 놓여 있다”고 했다.
미국 등 주요국과 요르단 같은 주변국들이 여러 방식의 인도주의적 긴급 구호물품 전달 계획을 내놓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국제구호단체 오픈암스는 스페인 선박 ‘오픈암스호’에 쌀과 밀가루, 참치 캔 같은 생필품 200톤을 싣고 인근 키프로스 항구에서 가자지구로 10일 출발한다는 계획이다. 키프로스는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가자지구와 가장 가까운 지역으로, 이 계획이 성사되면 가자전쟁 뒤 해상통로를 통해 구호품이 전달되는 첫 사례다. 이스라엘 당국이 선적 물품 점검을 끝내고 출항을 허락하면 2∼3일 뒤 선박이 가자지구에 도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다른 구호단체 월드센트럴키친은 가자지구에 이 오픈암스호가 정박할 부두를 만들고 있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지난 7일 가자지구에 인도주의적 구호물품을 전달하기 위한 임시 항구 건설을 미군에 지시했다. 미군은 요르단과 함께 군 수송기로 식량 등을 투하하는 지원 작전도 계속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스웨덴은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직원의 하마스 연계 의혹 이후 중단했던 자금 지원을 재개한다고 9일 밝혔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캐나다 등도 이달 들어 자금 지원을 재개한 바 있다.
다만 가자지구에 구호물품 지원 정상화를 위해서는 결국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남북 양쪽에 육로를 개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자지구 쪽에 제대로 된 항구가 없고, 연안 수심이 얕아 대규모 물품을 실어나를 대형 바지선이 드나들기 어려워 해상 수송은 임시 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미군이 설치하려는 가설 부두도 설치에 막대한 비용이 들 뿐더러 2개월 이상 소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가자 주민들에게 필요한 분량의 식량과 물, 의약품을 배로 수송하려는 계획은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드는 데다, 결국 엄청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구호 관계자들은 트럭으로 구호품을 전달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며, 이스라엘이 가자 북부 국경에 새 검문소를 개설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고 짚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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