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로고 새겨진 태블릿PC...지구 반대편에서 버젓이 팔고 있다는데 [법조인싸]
문제의 발단은 현대전자가 유동성 위기로 워크아웃(기업구조 개선작업)을 신청한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사가 이리저리 찢어지는 과정에서 현대전자는 당시 디스플레이 자회사인 현대이미지퀘스트를 ‘범현대가’가 아닌 제 3자에게 매각했다. 현대전자의 컴퓨터 주변기기 사업을 넘겨받은 이 회사는 2019년 전자제품 관련 사업을 접고 사업권을 또 다른 법인에 양도했는데, 이 기업이 바로 문제의 현대테크놀로지다.
현대테크놀로지는 이름만 ‘현대’이지 우리가 아는 현대와 무관한 기업이다. 소재지를 푸에르토리코에 두고 중남미에서 영업을 한다는 정도의 사실이 알려져 있다. 문제는 이 회사가 현대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기업인데도 ‘HYUNDAI’가 새겨진 제품을 버젓이 판매하며 ‘현대 행세’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온라인 사이트의 회사 소개란은 회사의 창업자를 고(故) 정주영 회장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현대테크놀로지는 적어도 전자기기와 관련해선 ‘HYUNDAI’ 로고를 쓸 권리가 자신들도 있다는 입장이다. 그들이 보유한 건 이른바 ‘물방울 현대’의 상표권이다. 일반적인 ‘HYUNDAI’ 서체가 아니라 알파벳 ‘H’에 물방울이 그려져 있어 ‘물방울 현대’로 불리는 상표다. 유사 상표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현대 브랜드에 대한 권리를 침범하고 있는 셈이다.
현대테크놀로지가 보유한 ‘물방울 현대’ 상표권의 등록을 무효화하기 위해 HD현대는 2020년 6월 특허심판원에 등록취소심판을 청구했다. 등록취소심판 청구일 이전 3년 이상 사용된 적이 없는 상표는 등록이 취소된다는 상표법 조항을 근거로 삼았다. 현대테크놀로지의 ‘물방울 현대’는 3년 넘게 사용된 적이 없는 상표이기 때문에 마땅히 취소돼야 한다는 취지다.
심판원은 그러나 2022년 8월 ‘물방울 현대’ 상표가 유효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등록상표(물방울 현대)와 거래통념상 동일하다고 볼 수 있는 실사용상표(HYUNDAI)가 정당하게 사용됐다”는 현대테크놀로지 측의 주장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물방울 현대’ 상표가 실사용상표인 ‘HYUNDAI’와 사실상 같다고 보고 ‘상표가 3년 내 사용된 적이 없다’는 HD현대의 주장을 배척한 것이다.
이에 불복한 HD현대는 “현대테크놀로지가 실제 사용한 상표들은 등록상표와 거래통념상 동일하게 볼 수 없는 형태의 상표다”며 “특허심판권의 심결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심판원의 판단은 법원에서 뒤집혔다. 특허법원 제5-1부(재판장 임영우)는 HD현대가 현대테크놀로지를 상대로 낸 등록취소 소송에서 지난 1월 25일 원고 승소 판결했다. 법정에선 알파벳 ‘H’를 놓고 공방이 펼쳐졌다. 쟁점은 ‘H’에 그려진 물방울에 식별력이 있는지였다. 물방울이 일반적인 ‘HYUNDAI’와 ‘물방울 현대’ 상표를 구별할 만한 특징으로 인정된다면 “둘은 거래통념상 같은 상표다”는 현대테크놀로지 측의 논리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법원은 HD현대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알파벳에 물방울을 그려넣은 H는 평이한 H와 엄연히 다르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쟁점 구성(물방울)은 다양한 이미지를 상기시키도록 하는 등 평이한 문자 형상에 역동감을 불러일으키도록 구성된 것으로서, 그 도안화 정도는 독특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요자의 이목을 충분히 끌 수 있다고 판단된다. 상표의 사용 실적과 사회의 인식 등을 종합해 보면 이 사건 쟁점 구성은 식별력이 있는 부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현대테크놀로지가 현대의 역사를 모르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현대의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HD현대 관계자는 “‘범현대가’의 해체로 흩어진 상표권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생긴 일”이라며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상표권을 되찾아 오자는 의미에서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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