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격전지] 노동 대모 김영주 ‘빨간점퍼’ 영등포서 통할까
서울 영등포갑은 더불어민주당의 강세 지역이다. 수도권 격전지인 ‘한강 벨트’(한강을 낀 지역구)로 묶이지만, 진보 진영 내분이 극심했던 17대와 18대를 제외하곤 갑·을 모두 민주당계 정당이 이겼다. 4년 전 21대 총선 때는 지역구 내 모든 동(洞)에서 국민의힘을 앞섰다. 민주당 소속이자 ‘노동계 대모’로 불린 김영주 국회부의장이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문병호 후보를 무려 18%p(포인트) 차이로 제치고 3차례 내리 당선됐었다.
그랬던 영등포갑이 진보진영 내분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주류 친명(親이재명)계와 결을 달리해온 김 부의장이 ‘평가 하위 20%’ 통보를 받고 탈당해서다. 홍영표·박용진·송갑석 의원 등 대표적인 비명계 인사들도 줄줄이 하위 명단에 올랐다. 민주당은 김 부의장이 탈당계를 내기도 전에 영등포갑을 전략지구로 정하고, 채현일 전 영등포구청장을 전략공천했다. 김 부의장은 국민의힘에 입당해 이 지역 공천을 받았다. 진보 텃밭 내 표 분산이 불가피하다.
10일 기준, 영등포갑 총선은 3자 구도로 치러진다. 이준석 대표가 이끄는 개혁신당은 지난 7일 국민의힘 출신 허은아 전 의원을 전략공천했다. 김종인 공천관리위원장은 “민주당, 국민의힘 후보가 똑같은 민주당 뿌리인 경쟁 구도”라며 “영등포갑 유권자들이 구 정치 세력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했다. 허 전 의원은 ‘참보수’를 자칭하며 “양당 기득권을 깰 진정한 보수 정치인을 선택해달라”고 했다.
핵심은 민주당 지지층의 표심이다. 이재명 지도부의 공천 파동과 사천(私薦) 논란에 실망한 진보 유권자의 향방이 승패를 가른다. 다만 이들의 표가 ‘빨간 점퍼’로 갈아입은 김 부의장에게 향할지는 미지수다. 김 부의장도 이를 의식해 ‘국민의힘 선거사무소’는 차리되 개소식은 생략했다. 4선 중진의 개인 역량을 앞세워 밑바닥 유세에 전념하고 있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도 공식 석상에서 ▲김 부의장의 노동계 경력과 ▲민주당 공천 파동을 거듭 언급했다. 모두 진보층 ‘이탈표’를 노리는 지점이다.
민주당이 김 부의장의 ‘채용비리’ 의혹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김 부의장 컷오프에 대한 정당성을 얻어야 지지층 이탈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5일 영등포를 방문해 “채현일 후보를 김 부의장과 경선에 부쳤어도 너끈하게 이겼을 것”이라며 “김 부의장이 이상한 핑계를 대고 나가 (승부가) 조금 싱거워졌다”고 했다. 또 “김 부의장이 채용비리를 소명하지 못해 공직자 윤리 항목에서 0점을 받았다”고도 했다.
‘배신’ 프레임도 변수다. 사천 논란에 대한 지지층의 실망감을 압도하려면, 당적을 바꾼 김 부의장의 ‘배신자’ 이미지를 키워야 한다. 채 후보의 유세 발언도 이 부분에 집중돼 있다. 그는 “선당후사를 약속하고 민주당의 단합을 위해 앞장서야 할 분이 당이 가장 어려운 시기에 배신했다”며 “정권심판의 열망을 내팽개친 ‘배신의 정치’를 국민과 당원이 똑똑히 기억해달라”고 했다.
◇“영등포갑 결과가 곧 ‘이재명 공천’ 평가”
정치권은 김 부의장의 ‘득표율 변화’를 주목하고 있다. 21대 총선 때 압승했던 김 부의장의 득표율 추이에 ‘이재명식 공천’ 심판 여론이 나타날 것으로 본다. 다만 공천 파동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지지층이 ‘국민의힘 김영주’를 지지할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선 여부도 중요하지만, 김 부의장의 득표율을 봐야 한다”며 “지난 총선 대비 득표율이 늘면 민주당 공천에 대한 불만이 이탈표로 작용한 것이고, 줄면 현역 물갈이가 정당했다는 지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도 “채현일 후보의 역량과는 별개로 ‘김영주 동정론’이 작용할 수도 있다”며 “이곳 선거판 추이가 수도권 다른 격전지 여론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했다.
이와 달리 보수표가 분산할 거란 해석도 있다. 국민의힘 지지층 일부는 ‘민주당 출신 김영주’를 외면하고, 허은아 전 의원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야당 텃밭인 영등포갑에 허은아가 등판해 보수표가 분산될 가능성이 있다”며 “오히려 민주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봤다. 또 “한 달 남은 총선 국면에서 김 부의장에게 가야 할 국민의힘 표가 얼마나 이탈할지도 변수”라고 말했다.
반면 엄경영 소장은 “허은아 후보가 ‘보수 적자론’을 꺼냈지만, 2030 남성표를 온전히 가져가긴 어렵다”며 “집권여당 국민의힘 간판은 무시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그동안 동대문에 공을 들였던 허 후보가 돌연 전략공천을 받았기 때문에 유의미한 변수가 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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