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돈 번다더니 속았다…"월급 받으며 일할 때가 그리워요" [신현보의 딥데이터]

신현보 2024. 3. 1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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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미용업 폐업 1만2621곳…역대 최다
낮은 진입 장벽·유튜브 등에 홀려 '공급과잉'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직장 다니면서 네일 꾸미는 게 재밌어서 배우다가 좋은 기회가 생겨 가게를 오픈했어요. 근데 정말 쉽지 않네요. 단골은 다 끊기고 신규만 와요. 결국 따로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어요."

1인 네일샵을 운영하는 30대 A씨는 "월급 받으며 일했을 때가 그립다"고 토로했다.

네일·피부·메이크업 등 미용업이 위태로운 분위기다. 미용업 폐업 점포 수가 역대 최다 수준을 기록한 것이다. 수년간 누적된 공급 과잉에 더해 고물가로 MZ(밀레니얼+Z)세대 구매력이 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미용업 폐업 역대 최고

9일 한경닷컴이 행정안전부 지방인허가에서 미용업 데이터를 가공해 분석한 결과, 지난해 전국 폐업한 전국 미용업 점포 수는 1만2621곳으로 집계됐다. 미용업은 메이크업, 네일아트와 같이 얼굴·머리·피부 등을 손질해 외모를 꾸미는 업소들을 말한다. 네일아트업, 피부미용업, 메이크업업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래프=신현보 기자


시계열로 놓고 보면 수치상 역대 가장 개업과 폐업이 많았을 때는 2003년(개업 1만9651곳·폐업 1만6253곳)이지만, 이는 2002년 개정된 공중위생관리법에 따라 미용업이 신고제로 전환되면서 행정적인 변화가 일어난 탓이다. 사실상 지난해 폐업이 최고인 것이다. 2017년까지 폐업 점포 수가 1만 곳을 넘지 않았으나 2017년을 기점으로 매해 1만 곳을 웃돌고 있다.

이러한 업계 악화는 그간 누적된 '공급 과잉'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2015년까지만 해도 개업 점포 수가 1만5000곳을 안 넘었는데, 코로나19 사태 당시인 일시적으로 개업이 주춤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내내 매해 2만 곳에 가까이 새로운 미용업 점포가 들어서고 있다.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경쟁이 과해도 너무 과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한 네일샵 사장 B씨는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오픈한 이래로 작년이 최악이었다. 네일샵을 20년 가까이 운영했다는 지인도 작년이 최악이었다더라"며 "주변에 폐업한 분들이 너무 많다. 나는 문 안 닫는 것만으로 감사하며 살고 있다"고 전했다.

 낮은 진입 장벽…공급 과잉에 줄폐업

진입 장벽이 낮은 것도 경쟁을 과열시키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이들 업종에 종사하기 위해서는 국가기술자격법에 따라 각 분야(피부·네일·메이크업·일반)를 택해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는데, 합격률이 매해 40~60% 사이를 오갈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수험생 절반은 국가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셈이다.

아울러 최근 유튜브 등 플랫폼에서 "혼자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성공 사례가 예비 창업자들을 자극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피부과를 운영한다는 C씨는 "예전에는 큰 평수의 '토탈 샵'(다양한 서비스를 취급하는 곳)이 대세였다면 이제는 소형 평수로 1인 샵이 많아져 경쟁이 과열된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유튜브에서 일부 운영자들이 1인 피부 샵으로 월매출 1억원을 달성했다느니, 30대 여자 혼자 빚을 다 청산했다느니 다소 과장되거나 일부 성공 사례를 보고 쉽게 진입하는 경향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큰돈 번다…사표 내고
2019년까지 미용 관련 서비스업 생산성이 전체 서비스업 생산성을 상회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전체 서비스업 생산지수는 오히려 급등하는 분위기인 반면, 미용 관련 서비스업 생산지수는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2020년을 기점으로 전체 서비스업 생산지수는 급상승해 미용 관련 서비스업 지수를 역전했다. /그래프=신현보 기자


통계청에 따르면 미용 관련 서비스업 및 마사지업 생산지수(2020년=100)는 지난해 94.5를 기록해 2년째 감소했다. 이 지수는 2013년~2015년 정점을 이후 하락 곡선을 그리고 있다. 오상엽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연구원은 2020년 보고서를 통해 "연간 매출액이 5000만원 미만인 미용실이 약 67%다"라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후 건강, 음식에 대한 소비가 늘어나는 한편 미용업에 대한 관심은 많이 사그라들었다. 그런 트렌드에 반하게 공급 과잉 현상으로 폐업이 늘고 있는 것"이라며 "최근 유가, 식음료 물가 부담이 늘어난 마당에 업황 개선을 당장 기대하기는 무리"라고 내다봤다.

한편 일각에서는 미용업 공급 과잉을 두고 그만큼 최근 20~30대 여성 일자리 창출이 부족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주로 미용업에 진출하는 게 젊은 여성들인데, 다른 양질의 일자리가 있었다면 이러한 서비스업에 젊은 여성들이 과하게 몰릴 이유가 없었다는 진단이다.

피부샵을 운영한다는 30대 D씨는 "최근 1인 샵을 운영하는 사장님들은 젊은 여성들이 많고, 아르바이트생들도 대부분 20~30대 여성"이라면서 "직장을 다니다가 하는 경우도 있고, 유사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넘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실제 지난 10년 간 20~30대 여성 고용률은 개선세를 보이고는 있으나 남성 고용률을 하회하고 있다. 특히 30대 남성 고용률이 90%에 달하는 반면, 여성 고용률은 60%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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