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오히려 울어야 행복해진다?[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 |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에서 ‘기쁨이’는 ‘슬픔이’가 서 있는 바닥에 원을 그리며 이렇게 말한다.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말고 원 안에 가만히 있으란 소리다. 기쁨이는 툭하면 울 것 같은 슬픔이가 자꾸 돌아다니면, 이 감정들의 주인인 꼬마 라일리가 불행해질까 봐 걱정한다. 애니메이션에는 기쁨과 슬픔 외에도 ‘버럭이(화)’, ‘까칠이(짜증)’, ‘소심이(두려움)’ 등 우리의 감정을 의인화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대장 역할의 기쁨이는 이들 중 유독 슬픔이를 견제한다.
우리 삶에서도 슬픔이란 감정은 환영받지 못한다. 기쁨만 가득해야 행복한 것이고, 슬픔은 느껴서 좋을 게 없는 감정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러나 이미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기쁨이가 틀렸다. 인간은 다채로운 감정을 함께 느껴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
우리에게 쓸모없는 감정이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슬픔이나 눈물을 외면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울고 싶어도 꾹꾹 억누르거나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위치 때문에, 바보같아 보일까 봐, 남자라는 이유로 체면 차리려 감정을 억압하는 사회 분위기에선 더욱 그렇다. 고작 “힘들다”라는 말 한마디로 모든 감정을 퉁치기도 한다.
그러나 있는 감정을 없는 것처럼 무시하고 살면 어떤 식으로든 부작용이 나타난다. 기쁠 때 웃는 것이 자연스럽듯, 슬프거나 힘들 때 눈물 표현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단지 일시적 후련함을 느끼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슬픔이 행복에 기여하는 것처럼, 눈물도 생각보다 많은 힘을 가지고 있다.
눈물은 진짜 내 감정과 만나는 통로
정신분석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울어야 부정적인 감정이 방출된다고 했다. 눈물이 복잡하고 괴로운 감정을 밖으로 내보내는 통로라고 본 것이다. 울고 나면 후련해지는 눈물의 카타르시스 효과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이때 우는 행위의 전제는 눈물 나게 하는 다양한 감정을 피하지 않고 직면한다는 데 있다. 슬픔이나 서러움, 절망, 우울, 죄책감 같은 부정적 감정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감동이나 고마움, 성취감, 안도감 등 다양한 감정을 포함한다.
그래서 심리치료에서 상담자는 내담자가 눈물을 억지로 참지 않고 자유롭게 울 수 있도록 권장한다. 실제로 내담자가 눈물을 흘리는 등 감정표현을 더 많이 하면 할수록 치료 효과가 좋았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있다.
울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
이와 반대로 마음이 괴로워도 울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해질 수 있다. “나는 안 울고, 안 생생하게 살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슬픔에 둔감한 사람은 기쁨에도 둔감하다. 감정의 희로애락을 나타내는 곡선이 지나치게 들쑥날쑥해도 괴롭겠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일정하다면 이 또한 문제다.
“언제 울어 봤는지 기억도 안 난다”며 눈물을 억압하는 남성들이 특히 위험하다. 눈물을 보이는 것은 남자답지 못하고, 나약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힘든 감정을 솔직히 말하지 못하고, 꾹꾹 눌러 담아 없는 척 외면하면 한꺼번에 크게 터질지 모른다. 한국 남성 자살률이 여성 자살률의 2배를 웃도는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도 평소에 힘든 내색을 못 한다는 데 있다. 힘들 때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비율은 여성의 5분의 1 수준으로 현저히 낮다. (최고야의 심심토크 ‘가을은 남자의 계절? 고독한 남자가 위험하다’ 기사 참고)
울어도 되는 안전한 장소·대상 찾아야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이 다른 사람들의 눈을 신경 쓰느라 울고 싶어도 참는다. 혼자 있는 차 안이나 화장실에서 울거나, 자기 전 홀로 조용히 울음을 삼키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우는 것보다 위로해 줄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가 함께 있을 때 눈물은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네덜란드 연구진은 국가나 문화권 별로 우는 행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연구하기 위해 37개국 성인 5715명을 대상으로 ‘성인 울음에 관한 국제 연구(International Study on Adult Crying·ISAC)’를 진행했다. 연구진은 각국의 실험참가자들에게 눈물 일기를 쓰도록 요청했다. 가장 최근에 운 것은 언제인지, 어디서, 누구와 함께 있을 때 울었는지, 기분은 어땠는지 등을 일정 기간 기록하게 했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스웨덴같이 겨울에 극도로 추운 나라에서 유독 더 자주 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울었다고 가장 많이 보고한 시간은 오후 7~10시 사이였다.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특히 이들은 어머니나 배우자, 연인과 함께 있을 때 자주 울었다고 보고했다. 학계에서는 이를 애착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자신을 돌보고 수용해 줄 만한 애착 대상이 있을 때 마음이 무장해제 되기 쉽다는 것이다. 반면, 혼자 살거나 자주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사는 사람들보단 덜 울었다. 연구진은 “사회적 유대감이 낮은 사람은 함께 울어줄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고, 결과적으로 우울하고 덜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눈물은 “돕고 싶다”는 공감 일으켜
그렇다고 반드시 친한 사람 앞에서만 울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우는 당사자는 다른 사람 앞에서 울면 바보 같거나, 나약해 보일 것을 걱정하지만 이런 영향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상대방이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일지라도 우는 사람을 보면 돕고 싶다는 따뜻한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20년 넘게 눈물에 관해 연구를 해온 애드 빙거호츠 네덜란드 틸뷔르흐대 심리학과 교수에 따르면, 눈물은 다른 사람과 더 연결돼 있다고 느끼게 만들어 친근함을 유발하는 힘이 있다. 연구팀은 성인 남녀 196명을 대상으로 눈물 흘리는 여성 사진과 디지털 기술로 눈물을 지운 여성의 사진 약 200장을 무작위로 보여줬다. 그리고 이 여성들을 실제로 만났다고 가정했을 때 이들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조사했다.
연구진은 우는 사람을 보면 힘이 없고, 난감해 보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갔을 때 덜 밀쳐낼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눈물은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기에 보는 사람이 그 사람과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가까이 가서 돕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눈물은 사회적 연결감을 높이고 공감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며 “다른 사람들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고, 강해 보이고 싶은 사람은 눈물로 인한 도움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다음 주 기사에서는 △한국은 전 세계에서 얼마나 많이 우는 나라일까 △부유할수록 더 많이 운다 △남자는 다른 남자의 눈물을 어떻게 생각할까 등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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