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弓의 나라’… 한반도 자부심 잇는다 [밀착취재]
이제원 2024. 3. 1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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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인조 14년 청나라의 제2차 침입으로 조선인 50만명이 끌려간 병자호란.
남이는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신묘한 활 솜씨로 청나라 정예 장졸을 하나하나 처치하고 누이를 구한 뒤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국궁(國弓) 동호인 수가 늘면서 요즘엔 전국에서 주문이 들어오는 국궁용 유엽전을 많이 제작한다.
당시 전남 구례에서 궁시 제작자로 유명했던 이모부의 "두 팔은 멀쩡하니 활과 화살 만드는 기술을 배우라"라는 말에 따라 구례행을 택하고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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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방식 화살 제작 ‘청주죽시’ 양태현 궁시장
1636년 인조 14년 청나라의 제2차 침입으로 조선인 50만명이 끌려간 병자호란. 부친이 역적으로 몰려 양반 신분을 속이고 살던 남이의 유일한 피붙이인 여동생 자인도 청군 습격에 포로가 된다. 남이는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신묘한 활 솜씨로 청나라 정예 장졸을 하나하나 처치하고 누이를 구한 뒤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김한민 감독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신궁(神弓) 남이가 사용한 짧은 화살이 애기살로 불리는 편전(片箭)이다.
양태현 궁시장(弓矢匠· 74세)은 충북 청주 주택가에 자리 잡은 공방 ‘청주죽시(竹矢)’ 에서 아들 양창언(44세)씨와 영화에 등장한 것과 같은 조선 화살을 전통 방식으로 만들고 있다.
궁시장은 활(弓)과 화살(矢)을 만드는 장인이다. 활 장인을 궁장(弓匠), 화살 장인을 시장(矢匠)으로 나누는데 양태현 궁시장은 엄밀히 말하면 시장이다. 그는 충북도 무형문화재 16호, 아들은 기능이수자다.
화살대는 대나무를 채취해 화살을 곧게 펴는 졸잡기를 시작으로 불통 속에 넣고 빼기를 반복하면서 화살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는 사포질로 마무리해 만든다. 황동을 사용해 제작한 화살촉을 화살대에 맞게 넣고, 화살이 목표물을 향해 날아갈 때 방향타 역할을 하는 장끼(수꿩) 털로 깃을 달면 비로소 화살 한 대가 완성된다. 크게 분류해도 84단계나 거치는 모든 공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복잡한 과정이다
우리 겨레는 예로부터 활과 화살의 민족이다. 고구려 벽화에도 활 쏘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조선시대 과거시험 무과에선 궁술을 따로 봤다. 전쟁에 나서는 무장(武將)이나 병졸뿐 아니라 글 읽는 선비도 정신을 수양하고 호연지기를 키우는 방법으로 활을 쏘곤 했다.
화살은 쓰임새와 모양에 따라 크기가 작은 편전, 굵기가 가는 세전(細箭), 나무로 만든 목전(木箭), 버드나무잎 모양의 촉을 가진 유엽전(柳葉箭)으로 나뉜다. 국궁(國弓) 동호인 수가 늘면서 요즘엔 전국에서 주문이 들어오는 국궁용 유엽전을 많이 제작한다. 유엽전은 가볍고 화살깃이 작은 전투용으로, 조선시대 내내 편전과 함께 전장의 주된 무기이었다. 주문자가 원하는 화살의 길이, 두께, 무게가 다 다르기 때문에 신경을 더 써야 한다. 화살 하나하나 일일이 수작업으로 해야 가능한 일이다.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10월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양태현 궁시장은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왼쪽 다리가 불편하다. 당시 전남 구례에서 궁시 제작자로 유명했던 이모부의 “두 팔은 멀쩡하니 활과 화살 만드는 기술을 배우라”라는 말에 따라 구례행을 택하고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11년간 온갖 궂은일을 마다치 않고 악착같이 노력하여 기초부터 기술을 배웠다.
“먹고살려고 16살 때 시작해 58년째 매일 일 하고 있지만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어요. 우리 화살을 지킨다는 자긍심도 크고요.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어려운 일인데 아들이 이수자로 열심히 배우고 있으니 늘 고맙고 대견해요.”
거친 손으로 대나무를 능숙하게 쓱쓱 깎으면서도 두 눈으론 아들을 바라보는 양태현 궁시장의 얼굴엔 부드러운 미소가 퍼진다. 수많은 외세 침략을 물리쳤던 자랑스러운 우리 화살이 부자(父子)의 땀과 열정으로 대(代)를 거쳐 명맥을 잇는다.
청주=글·사진 이제원 선임기자 jw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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