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가짜뉴스 뚫고 재생에너지 확대로 뚜벅뚜벅
올해 초 〈슈피겔〉은 ‘독일 전력에 관한 네 가지 괴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독일의 에너지 전환을 평가 절하하는 주장을 검증했다. 2023년은 독일의 전력 공급에 관한 우려가 큰 해였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은 독일은 에너지 가격 상승과 공급의 불안정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2023년 4월15일 마지막 남은 원자력발전소 3기의 가동을 중단하면서 독일은 이미 계획되어 있던 탈원전을 완료했다. 그러자 현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 및 탈원전에 부정적인 정치인과 황색 보수언론은 독일의 에너지 수급 사정에 대해 부정적 내용을 과장하기 시작했다.
독일 전력 수요의 82%를 이웃 국가가 책임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연방의회 원내대표인 엘리스 바이델이 대표적이다. AfD뿐만 아니라 기민당·기사당 같은 거대 보수정당과 보수언론도 독일의 에너지 의존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력시장에서 인접 국가 사이에 거래가 활발하며 독일의 전력공급 수준을 고려했을 때 ‘블랙아웃’ 같은 극단적 상황이 발생할 위험성이 희박함에도 이들은 최악의 가능성을 강조했다. 에너지 전환과 탈원전에 관한 부정적 내용은 한국에도 소개되어 원자력발전을 지지하고 재생에너지의 한계를 부각하는 논리로 사용되고 있다.
〈슈피겔〉이 비판한, 세간에 유통되는 잘못된 괴담 첫 번째는 독일의 에너지 전환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2023년 독일은 재생에너지 전력 생산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기록했다. 2023년 독일의 재생에너지 전력은 전체 전력 사용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 2022년보다 5% 높아진 52%를 기록했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 태양수소에너지연구센터(ZSW)와 연방 에너지·수자원관리협회(BDEW)가 지난해 12월 함께 발표한 추정치에 따르면, 2023년 전체 전력 소비량 5173억㎾h(킬로와트시) 중 풍력·태양광·수력·바이오매스 등 재생에너지는 2670억㎾h에 달했다.
경기침체로 2022년에 비해 2023년 전력 사용량이 5%가량 줄었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비율의 증가가 의미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생산량 자체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며 재생에너지 발전은 체감할 만큼의 성장을 보였다. 풍력발전은 적절한 날씨와 발전시설 증가로 인해 역대 최고의 전력 생산량을 기록했다. 태양광은 2023년 독일의 일조량이 다른 해에 비해 유달리 적었음에도 신규 태양광발전 시설과 설비가 기록적으로 증가해 전년도와 동일한 수준으로 안정적인 발전량을 유지했다. 강수량이 증가해서 수력발전을 통한 전기 생산량은 늘어났다.
탈원전 뒤 독일 전기요금 비싸졌다?
두 번째 괴담은 원자력발전소가 운행을 중단하면서 기후위기를 촉발하는 화력발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독일의 에너지·통신·운송망을 규제하는 기관인 독일 연방네트워크청에 따르면, 석탄발전소는 2022년보다 2023년에 약 37% 적은 전력을 생산했다. 갈탄발전소의 발전량 또한 25%가량 줄었다. 갈탄발전소는 1965년 이후 가장 적은 전력을 생산했다. 이처럼 석탄과 갈탄 발전소의 전력 생산량이 적었던 이유는 유럽의 높은 탄소배출 가격 때문에 재생에너지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전쟁의 여파로 2022년에 높아졌던 천연가스 가격이 2023년 들어 어느 정도 안정되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괴담은 독일이 인접 국가로부터 더 많은 화력발전과 원자력발전 전기를 수입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2023년 실제로 독일은 수출 전력보다는 수입 전력량이 많았다. 독일은 54.1TWh(테라와트시)를 인접국에서 수입했으며 42.4TWh를 수출했다. 결과적으로 독일은 전체 사용 전력의 약 2.5%를 해외에서 생산된 것으로 충당했다. 하지만 독일의 전력 수입량이 많은 이유는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가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수입 전력 중 화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중도 미미했다.
유럽연합 내 국가 간 전력 거래는 가격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인접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의 전력 생산 가격이 더 저렴하고 이를 저장할 수 있는 전력망의 용량이 충분하다면 자국 석탄발전소의 생산량을 줄이게 되어 있다. 따라서 탄소배출 가격 때문에 높은 생산 단가를 형성하고 있는 석탄과 갈탄 발전은 원자력발전소의 폐쇄에도 불구하고 증가하지 않았다.
2023년 수출 대비 수입 전력량이 가장 많은 곳은 덴마크,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국가들이었다. 이들 국가는 전력 생산 중 재생에너지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이다. 단순히 무역의 측면이 아닌 유럽연합 내 재생에너지 비율 증대 및 탄소배출 감소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런 거래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독일은 원전 비율이 높은 프랑스와 스위스에서도 많은 양의 전력을 수입했지만 수출량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독일의 재생에너지 전력 생산량이 증가해 가격이 낮아지면 프랑스와 스위스도 독일의 전력을 수입했기 때문이다.
반면 석탄과 갈탄 발전 비중이 높은 체코나 폴란드로부터 수입한 전력량은 높지 않았다. 독일의 2023년 수입 전력 비중을 살펴보면 재생에너지가 47%, 원전이 35%, 석탄·갈탄이 9%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의 전력 수입량이 가장 많았던 5~6월 독일 내 석탄발전소는 역사상 가장 낮은 가동률을 보였다. 2023년 유럽연합 내 전력 생산량 중 재생에너지 비율은 44%로 역시 역사상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마지막으로 정정되어야 할 괴담은 독일의 전기요금이 계속 비싸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2023년 독일의 전기요금은 원전 가동을 완전히 중단했는데도 다시 2021년 수준으로 내려갔으며, 지속적으로 내려가는 추세다. 예를 들어 지역의 에너지 공사가 일반 가정에 판매하는 전기 가격은 2022년 중반 메가와트시(㎿h)당 235유로에 달해 2021년의 두 배가 넘는 유례없는 수준에 도달했다. 하지만 2023년에는 ㎿h당 판매 가격이 평균 90유로로 2021년과 동일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전까지 독일의 에너지 전환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인구가 많은 산업국가 중 독일처럼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여가면서도 탈원전의 길을 차근차근 밟아가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에너지 전환에는 오랜 역사가 있으며 탈원전과 에너지 전환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2000년 사민당·녹색당의 적녹 정부가 당시 ‘전력매입법’을 대대적으로 확대 개혁해 제정한 ‘재생에너지법’이 에너지 전환의 기초가 되었다.
1990년 만들어진 전력매입법은 이미 소규모 재생에너지 생산자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과거 대형 송배전 사업자들은 재생에너지 생산자가 전력망에 접근하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독일 정부는 전력매입법을 통해 송배전 사업자에게 소규모 재생에너지 생산자의 전력을 매입하는 의무를 지웠다. 또한 시장가격이 아닌 고정가격으로 재생에너지 전력을 매입하게 하는 ‘발전차액지원제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전력매입법은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지 못했다. 재생에너지 전력 생산자의 수익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는 경제적으로도 이득이다”
적녹 정부는 재생에너지법과 함께 탈원전을 통과시켰다. 핵발전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화석연료의 대안으로 여겨졌지만,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판명되었다. 원전을 대체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가 또 다른 대안이 되었다. 창당 시기부터 탈원전을 가장 중요한 정치 의제로 내세운 녹색당은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촉진을 연결했다. 재생에너지법은 대형 송배전 사업자들로 하여금 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된 전기를 우선 구매하고 공급하도록 했다. 또 발전차액지원제도를 확대해 송배전 사업자가 재생에너지 전력을 20년간 고정가격에 매입하도록 했다. 여기에 재생에너지 매입 가격과 전기 시장가격의 차액을 모든 전력 소비자가 공동으로 부담하는 ‘재생에너지 부담금(EEG-Umlage)’ 제도를 도입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재생에너지법은 2000년 당시 6%에 불과하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10년까지 12.5%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2007년 독일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이미 14%에 도달했다.
2001년 연방 환경장관이던 녹색당의 위르겐 트리틴은 “재생에너지 사용은 생태적으로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이득이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환경부 보고에 따르면, 재생에너지법 통과 이후 이 분야에서 1년 동안 새로운 일자리 약 7만 개가 만들어졌다. 트리틴 장관은 재생에너지법이 목표 시점으로 삼았던 2010년 이후에도 재생에너지 확대가 지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2005년 탄생한 메르켈 정권 또한 재생에너지법을 유지했고 재생에너지 전력 비중은 계속해서 증가했다. 재생에너지법은 그사이 여러 차례 개정되었지만, 에너지 전환을 뜻하는 ‘에네르기벤데(Energiewende)’는 에너지 전환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룩한 독일의 성공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정책 방향의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민당·기사당 연합과 자민당으로 구성된 메르켈 2기 정부는 2010년 탈원전을 철회했다. 당시 정부가 발표한 ‘에너지 구상’에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원전 사용 기한 연장이 강조되어 있었다.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를 줄이는 대신 원전의 사용을 연장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011년 3월11일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면서 상황은 다시 뒤집혔다. 기민당의 지지율은 떨어지고 탈핵을 지지해온 녹색당의 지지율이 전례 없이 높아졌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인 2011년 3월27일 치러진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선거에서 녹색당은 과거보다 두 배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녹색당은 다수당이 되었고 당 역사상 최초로 주지사를 배출했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는 오랫동안 기민당의 텃밭이었다. 결국 메르켈 정부는 같은 해 5월 다시 단계적으로 원자력발전소의 가동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메르켈의 임기 동안에도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독일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2005년 10.3%에서 2020년에는 45.3%까지 증가했다. 하지만 메르켈의 임기 동안 독일 정부는 기후보호와 에너지 전환에 소극적인 모습으로 변했고 기대보다 낮은 성과를 거뒀다. 집권 초기 메르켈 총리는 대외적으로 기후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국제회의와 협약을 통해 기후보호를 국제정치의 주요 과제로 만드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점차 산업계를 보호하려는 목소리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독일의 환경 NGO ‘저먼워치(Germanwatch)’가 60여 개국을 대상으로 발표하는 ‘기후변화 대응지수(Climate Change Performance Index)’에서 독일은 2007년 2위를 차지했지만 계속해서 순위가 하락해 2020년에는 23위를 기록했다. 해당 지수의 순위는 탄소 배출량 변화, 재생에너지 비율, 기후보호 정책 등을 평가해 매겨진다.
2021년 12월 출범한 사민당·녹색당·자민당 연립정부는 기후보호를 정책의 핵심 과제로 표명했다. 기후문제를 당의 중심에 둔 녹색당이 연정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다른 정당 또한 기후보호가 독일이 당면한 최우선 과제 중 하나임을 인정했다. 새로운 정부는 메르켈 총리의 16년 임기 동안 속도가 느려진 에너지 전환과 기후보호 정책에 가속도를 붙여야 했다.
2022년 4월6일 녹색당 소속 로베르트 하베크 경제기후장관은 재생에너지 정책 패키지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재생에너지법, 해상풍력에너지법 등의 개정을 포함한 총 56개 법안의 변경과 조치가 담겨 있었다. 새로운 정책 패키지를 통해 독일 정부는 2030년까지 전체 전력 사용량의 80%, 2035년까지는 사용량의 대부분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던 목표를 공식화했으며 재생에너지 설비의 대규모 확장을 약속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는 독일의 기후보호 목표 실행에 방해가 되었다. 독일 정부는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 확보에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아야 했을 뿐 아니라, 높아지는 에너지 가격에 따른 시민의 부담을 덜어줄 정책을 먼저 만들어야 했다. 게다가 보수정당을 비롯해 기후보호 정책에 반대하던 세력들이 에너지 가격을 포함한 물가상승에 따른 어려움의 원인을 에너지 전환 정책에 돌리려 했다. 하지만 그런 압박 속에서도 독일 정부는 기후보호를 위한 정책 방향을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2024년 기후변화 대응지수’에서 독일은 14위를 차지했다. 저먼워치는 연말에 다음 해의 지수를 발표한다. 2023년 지수보다 2계단 상승한 것이다. 관련 보고서는 독일 정부가 기후보호에 과거보다 더 적극 나서는 점을 긍정적으로 보았지만, 독일의 기후보호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실제 조처들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 보고서는 특히 독일 정부를 구성하는 세 정당의 입장이 충돌해 독일의 기후정책에 방해가 된다고 보았다. 특히 고속도로 속도제한처럼 대부분의 나라에서 실행하고 있는 정책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지수는 2009년부터 1~3위 자리를 비워두고 있다. 기후보호를 위해 충분히 잘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는 의미다. 2024년 지수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한 나라는 2023년과 동일하게 덴마크였다. 유럽연합은 전년도 대비 세 계단 상승한 16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64위를 기록하며 거의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지난해보다 네 계단 하락한 순위다. 그 밖에도 미국과 일본이 각각 57위, 58위였으며 러시아는 63위를 기록했다. 최하위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67위)였다.
프랑크푸르트∙김인건 통신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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