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장애를 극복하지 않는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츠지이 노부유키, "이겨냈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

김수현 문화전문기자 2024. 3. 1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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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행복한 피아니스트, 그를 다시 보고 싶다


츠지이 노부유키.

지난 주말 한국을 다녀간 일본인 피아니스트의 이름입니다. 노부유키는 그 유명한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우승자입니다. 이 콩쿠르는 가장 최근의 우승자 임윤찬, 그리고 그 이전 대회 우승자 선우예권으로 한국인들에게도 많이 친숙하죠. 2009년 스무 살이 된 노부유키는 이 대회에 참가해 중국인 피아니스트 장 하오천과 공동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당시 준우승은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차지했습니다.

츠지이 노부유키는 이보다 앞서 고교 재학 중이었던 2005년 쇼팽 콩쿠르에도 참가했습니다. 2005년 쇼팽 콩쿠르에선 임동혁 임동민 형제 피아니스트가 공동 3위를 차지하며 한국인 첫 수상 기록을 세웠는데, 노부유키도 비록 최종 결선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최연소로 비평가상을 받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노부유키의 이런 화려한 '수상 경력'은 그가 소안구증으로 선천적 시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한 츠지이 노부유키 피아니스트 현장 영상
[ https://youtu.be/DYjxz6QXflE ]
 

그의 음악 자체에 빠져들었다

지난 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노부유키의 솔로 리사이틀. 매니저가 그를 인도해 함께 무대로 나왔습니다. 그는 피아노 의자에 앉아 건반의 위치를 잠시 가늠하고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노부유키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자꾸 의식했지만, 점점 음악 그 자체에 빠져들게 되었어요.

그는 유학 경험 없이 일본 내에서만 공부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음감이 뛰어났던 그는 오른손 왼손 따로 녹음된 테이프를 듣고 악보를 통째로 외워 새 곡을 연습했다고 합니다. 그를 가르친 일본인 피아니스트 가와가미 마사히로는 '내가 그에게 알려준 것은 악보에 적힌 음이 전부'라고 했죠. '악보에 적힌 것들만 알려주면 노부유키가 그걸 마음속에서 진정한 음악으로 빚어낸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빚어낸 노부유키의 음악은 굉장히 개성적이었습니다. 연주자마다 해석이 다른 건 당연한데, 노부유키의 연주는 특히 다르게 들리더라고요. 대범하다고 해야 할까요, 빠른 곡들에서는 힘차고 자신감 넘치는 타건과 속도감이 인상적이었고, 종종 감상적인 느낌으로 연주되는 곡들도 루바토 별로 없이 담백하게 연주했는데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노부유키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합창석까지 꽉 채운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과 박수에 굉장히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는데요, 커튼콜 때도 매니저의 인도로 무대 등퇴장을 반복하면서, 앙코르 세 곡을 들려줬습니다. 앙코르 첫 곡으로는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를 들려줬고, 이어 카푸스틴의 에튀드 11번, 그리고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까지였습니다.
 

그는 그의 방식으로 본다

마지막 앙코르 곡이었던 '라 캄파넬라'는 첫 부분을 시작하자마자 객석에서 '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습니다. 놀라움과 기대감이 서린 탄성이었겠지요. 템포가 빠를 뿐 아니라 수많은 도약과 트릴이 나오는 이 난곡을, 그는 전혀 힘겨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깔끔하고 멋지게 연주했습니다. 마치 "아직도 내가 건반을 못 본다고 생각해?" 하고 묻는 듯한 연주였어요.

미국과 일본에서 방영된, 노부유키의 이야기를 다룬 'Touching the Sound'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노부유키가 종종 '본다' '봤다'라고 말한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주변 사람들은 처음에는 시각 장애가 있는 노부유키가 이렇게 말하는 걸 어색하게 여기지만, 점차 그는 설명할 수 없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물을 보고 감각한다는 사실을 믿게 됩니다. '소리를 만진다'는 이 다큐멘터리 제목처럼, 그는 온몸의 감각으로 사물을 느끼고 받아들입니다.
[ https://www.pbs.org/video/touching-the-sound-z6kaz2/ ]

이 다큐멘터리에서 노부유키의 어머니가 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정상적(Normal)'이라는 게 뭘 의미하는지 종종 생각해 보곤 합니다. 저는 4월이면 꽃구경을 가곤 했는데, 처음에는 꽃을 볼 수 없는 아이를 그런 곳에 데려가다니,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제 잣대로 아이가 꽃을 볼 수 없다고 단정했지만, 아이는 나름의 방식으로 꽃을 볼 수 있었던 거예요. 아이가 최대한 이 세상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만 하면 그 경험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런 어머니가 있어서 노부유키가 피아니스트로 대성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노부유키는 다큐멘터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모님은 한 번도 피아노를 억지로 시킨 적이 없어요. 늘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게 해 주셨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해요.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제가 눈이 안 보인다는 이유로 뭔가를 할 수 없을 거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여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수영, 스키, 등산 같은 활동을 경험할 수 있었죠."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수현 문화전문기자 sh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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