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무 중 심리적 고통으로 생긴 다리마비…보훈대상 될까? [법원 앞 카페]

우종환 2024. 3. 1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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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이 끝난 뒤 법원 앞 카페에 앉아 쓰는 법원 출입기자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군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다치는 장병들이 많이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겪는 일일 수도 있고 혹은 같은 부대의 누군가 다치는 걸 보기도, 타 부대 소식을 전해 듣기도 합니다. 다친 병사는 보훈청 심사를 통해 재해부상군경 보훈대상자로 선정된 뒤 여러 지원과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군생활 중 신체가 마비되는 일을 겪고도 보훈대상으로 인정되지 않은 한 병사가 있었습니다. 부상을 입은 뒤 심리적인 이유로 인한 2차질환으로 장애가 생겼는데 이 2차질환은 보훈대상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결국 이 병사는 법원을 찾았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화상 입은 뒤 찾아온 다리마비

사진=Chatgpt

지난 2018년 7월 당시 육군에서 복무하던 A 씨는 불의의 화상을 입었습니다. 병영식당에서 아침식사 배식을 하려고 뜨거운 물이 담긴 솥을 옮기다가 미끄러진 겁니다. 뜨거운 물이 양쪽 다리에 쏟아지면서 A 씨는 양쪽 엉덩이와 다리, 발등, 발목에 2~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A 씨는 3달 정도 입원치료를 받고 10월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부대에서 생활하던 중 갑자기 오른쪽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다시 병원에 입원한 A 씨는 ‘상세불명의 신체화 장애, 하지 단일 마비, 기타 해리성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후 남은 군생활은 사실상 입원과 외래 진료를 받으며 끝이 났습니다.

2019년 전역한 A 씨는 화상과 다리마비 증상에 대해 서울지방보훈청에 보훈보상대상자 신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보훈청은 화상만 보훈대상으로 인정하고, 다리마비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화상은 군복무 중 생긴 재해가 맞지만 다리마비는 복무중 생긴 재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이듬해인 2020년 A 씨는 불복해 이의신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1년이 걸려 2021년 보훈청 보훈심사위원회는 재심의 결과 여전히 다리마비는 재해부상군경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A 씨는 보훈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화상 때문이다 vs 정신질환 때문이다

재판의 쟁점은 다리마비의 원인이 화상인지였습니다. 화상의 원인은 배식 과정에서 넘어지면서 쏟은 뜨거운 물이라는 점이 명확한 만큼 다리마비도 같은 이유로 생겼다는 게 입증돼야 복무중 재해를 입은 걸로 인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A 씨 측은 입대 전에는 다리마비를 일으킬 만한 상해를 입거나 병에 걸린 적이 없고 신체검사에서도 1급을 받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화상으로 인한 전환장애, 쉽게 말해 심리적 이유로 장애가 생겼다고 봐야 하므로 군복무 중 생긴 재해가 맞다는 겁니다.

반면, 보훈청 측은 A 씨에게 이전부터 정신적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화상을 입기 전에 이미 군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우울 증상이나 수면장애를 호소했고, 진료도 받은 기록이 있다는 겁니다. 또 같은 해 ‘힐링캠프’라고 불리는 복무부적응 개선 프로그램에도 A 씨가 참여한 적 있고, 캠프에서 복귀한 뒤에도 불안감을 호소하며 진료를 받았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이에 보훈청 측은 A 씨의 다리마비가 화상이 아닌 원래부터 겪고 있던 정신적 문제 때문에 생겼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리마비, 군복무 때문에 생긴 것”

서울가정법원·서울행정법원 (사진=연합뉴스)

1심 재판 결론이 나오기까지는 약 3년이 걸렸습니다.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6단독 윤성진 판사는 지난 1월 24일 A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윤 판사는 오른쪽 다리 마비에 대한 보훈청의 보훈보상대상자 비해당 결정을 취소하라고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전환장애, 즉 심리적 이유로 장애가 생기는 건 주로 심적 갈등이나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점, 특히 전환장애는 남성의 경우 군대나 교도소 같은 환경에서 발병률이 높다는 연구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A 씨가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심리적 스트레스로 인한 다리마비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법원 감정의의 판단도 이를 뒷받침했습니다. 감정의는 “A 씨의 경우 재해로 화상을 입은 뒤 이를 치료하고 부대에 복귀하는 과정에서 현저한 신체적, 심리적 스트레스 상황에 처했을 것으로 보여, 시기상 화상을 일으킨 재해가 다리마비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군생활에서 많이 보이는 ‘병원에 입원해 자리를 비우는 병사에 대한 차가운 시선’도 스트레스를 키우는 데 영향을 줬다고 봤습니다.

감정의는 A 씨의 경우 장기간 열탕화상에 대한 치료를 받은 뒤 부대에 복귀하게 되자 그동안 선임이 자신의 일을 대신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거나 동료들로부터 편하게 쉬다가 돌아왔다는 시선을 받는 등 심리적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받음으로써 심리적 고통이 고조되어 ‘신체적 증상’으로 표출된 결과 ‘우측 하지마비’ 증상에 이르게 됐을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제시하였다.

- 1심 선고

화상을 입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정신적 문제가 원인이라는 보훈청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A 씨의 주장대로 입대 전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입대 후 생긴 질환도 가벼운 수준이었다는 이유입니다.
감정의는 A 씨가 입대 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이력이나 우울, 무기력, 불면 등을 경험하지 않았다고 했고, 입대 뒤 3주 간 지속된 불면증상은 군의관이 처방한 수면제로 호전된 바 있으며, 화상을 입을 무렵에는 동료들과 관계가 양호하고 수면이나 식사에 이상이 없어 적응에 문제가 없었다가, 화상을 입고 치료를 받은 이후에서야 비로소 다리마비가 발생하게 된 시간적 선후관계를 고려하면 A 씨의 증상은 화상을 일으킨 재해와 연관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는 판단을 밝혔다.

- 1심 선고

여전히 남은 장애…끝나지 않은 재판

국가보훈부 앞 '영웅을 기억하는 나라' 조형물 (사진=국가보훈부)

결국 재판부가 판단한 다리마비 이유는 화상과 이에 더해진 군복무 스트레스라는 것입니다. 스트레스에는 동료들의 차가운 시선을 비롯한 분위기도 한 몫 했을 겁니다. 그런데도 보훈청은 A 씨가 입대 후 생긴 정신질환을 거론하며 ‘재해로 인한 다리마비’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엄밀히 살펴보면 입대 전에는 문제 없었던 A 씨에게 입대 뒤 정신질환이 생긴 것도 ‘재해’라고 볼 수 있을텐데도 말입니다.

전역한 지 5년 가까이 흐린 지금도 A 씨는 다리마비 증세가 나아지지 않은 상태라고 A 씨 측 관계자는 밝혔습니다. 1심에서 승소했지만 아직 다리마비에 대한 보훈대상으로 인정되지도 않고 있습니다. 보훈청이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했기 때문입니다. 1심만 3년이 걸렸는데 이제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2심 재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우종환 기자 woo.jonghwan@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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