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세라핌 허윤진이 페미? 논란 자체가 터무니없다!
● 르세라핌 허윤진 가방 속 책이 일으킨 페미 논란
● 문화 지체 상태 빠진 大韓民國 청년들
● 페미니즘, 새 지적‧도덕적 기준으로 자리 잡아
● 허윤진 책, 모든 10‧20대가 읽어야
2월 24일 방영된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 등장한 걸그룹 르세라핌의 리더 김채원이 메인 보컬 허윤진의 독서 취미에 대해 한 말이다. 메이크업을 받으면서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 허윤진의 가방엔 여러 권의 책이 빼곡하게 들어 있었다. 화면에 등장한 책의 목록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올 어바웃 러브'(벨 훅스, 책읽는수요일), 'Ways of Seeing'(John Berger, Penguin, 원서. 한국 번역서 '다른 방식으로 보기'), '세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프리드리히 니체, 해누리기획), 'Breasts and Eggs'(가와카미 미에코, Picador, 영역본. 한국 번역서 '여름의 문').
‘전지적 참견 시점'이 방영되자 인터넷에선 작은 소란이 발생했다. 이른바 '페미 논란'이 시작된 것이다. 특히 허윤진이 읽고 밑줄 치는 모습까지 등장한 일본 소설 '여름의 문'이 논란의 대상이 됐다. '82년생 김지영'처럼 상징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페미니즘 책은 아니기에 단번에 '피아식별'을 하지 못한 이들이, 인터넷 서점이나 검색 결과로 나오는 내용을 놓고 "이게 페미냐 아니냐"라며 설왕설래를 벌였다. 결국 이번 페미 논란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페미니즘, 이미 교양인 '상식'
사태의 전개를 보며 필자의 마음은 착잡했다. 페미 논란이 또 생겼다는 사실이 첫 번째 이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허윤진의 독서 목록은 영어권의 평범한 대학생 혹은 대졸자가 읽었거나 읽을법한 책, 영어권의 교양인들이 상식선에서 받아들일법한 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니체를 제외하면 그 각각에 명백히 페미니즘적 논의가 담겨 있다. 다시 말해 영미권 교양 대중에게 페미니즘은 이미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만 '어떤 페미니즘'이냐, '어느 정도의 페미니즘이냐'와 같은 차원에서 논쟁이 오갈 뿐이다.한국의 대중은 아이돌이 읽는 책으로 페미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이른바 '사상 검증'을 하려 든다. 하지만 아이돌이 읽고 있는 책이 무엇인지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고 마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대한민국, 특히 대중문화의 활발한 소비층인 청년들이 일종의 문화 지체 상태에 빠져 있다는 의미다.
허윤진이 방송에서 읽고 밑줄 치는 모습까지 보여준 책의 표지에는 'Breasts and Eggs'라는 제목이 쓰여 있었다. 사실상 모든 인터넷 언론에서 그 제목을 그대로 '젖과 알'이라고 옮겼다. 작가 가와카미 미에코가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단편소설 '젖과 알'의 한국어판 번역본이 있으니 그것이리라고 쉽사리 추측한 결과다.
단편 '젖과 알'에 기반하고 있기에 '여름의 문'은 그것과 같은 이야기로 시작한다. 단편에선 '나'로만 언급되는 소설가 나츠코. 도쿄에 사는 그에게 언니 미에코와 조카 미도리코가 놀러 온다. 시들어가는 젊음을 아쉬워하는 언니는 가슴 수술을 해야겠다며 외모에 집착한다. 한편 초경을 시작할 나이가 된 미도리코는 입을 꾹 다문 채 그저 필담으로만 주변과 소통한다. 나츠코는 언니와 목욕탕을 가고, 미도리코와 속 깊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월경, 출산, 성애, 관능, 고독, 소외 등 여성성과 관련된 고민을 시작한다.
이 간략한 내용만 놓고 보더라도 페미 논란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 분명해진다. '여름의 문'은 (영어판의) 제목부터 등장인물 구성과 전개까지 모든 면에서 여성을 중심으로 여성성을 탐구하는 책이다. 마치 물 속 물고기가 물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름의 문'을 읽는 사람은 페미니즘을 따로 의식할 필요가 없다. 말하자면 이 책의 존재 자체가 페미니즘인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페미니즘 이전의 문학이 여성과 여성성을 취급하는 방식은 비슷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어머니에 대한 숭배로 향하거나, 남자의 마음을 빼앗고 농락하는 '요망한' 여성을 욕망하면서도 미워하는 굴절된 심리를 드러냈다. 페미니즘 이전 문학이 여성과 여성성을 그런 식으로 다룬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글을 남자들이 쓰고 있었고, 여성이 직접 펜을 잡는다 해도 남자들이 여자를 바라보던 시선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너무 얄팍한 우리 사회 페미니즘 이해도
물론 이 책에서 언니 미에코와 나츠코가 스스로와 다른 여성의 신체를 바라보고 내놓는 묘사 등을 "남성적 시선"이라고 비판하는 일이 불가능하진 않다. 하지만 그런다 해도 '여름의 문'이 가슴과 자궁을 지닌 여성의 몸에 대해서, 여자가 여자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책이라는 사실 자체가 달라지진 않는다.이제 문학적 수행이 얼마나 '최신 페미니즘' 내지는 '젠더 이론'에 부합하느냐는 또 다른 논의거리가 될 순 있다. 하지만, 문학의 역사와 맥락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여름의 문'이 페미니즘 소설인지 아닌지를 두고 논란을 벌일 수는 없을 것이다.
허윤진의 책가방에서 눈에 띈 또 다른 책 '올 어바웃 러브'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뿐 아니라 원서를 발행한 미국 출판사 역시 페미니즘에서 벗어나 최대한 보편적 책으로 포지셔닝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역시 페미니즘 도서다.
일단 저자의 이력부터 확인해 보자. 벨 훅스(Bell Hooks)는 1952년 태어나 2021년 세상을 떠난 글로리아 진 왓킨스의 필명이다. 벨 훅스는 평생 30권 이상의 책을 썼고 칼럼 등 수많은 공적 글쓰기를 했는데, 그 대부분이 페미니즘을 전제로 했다. 진보적 사회 운동가이며 흑인 여성으로서 정치, 인종, 문화 등에 대해 여러 의견을 표출했지만 그 기저에는 언제나 페미니즘이 깔려 있었다는 뜻이다.
벨 훅스의 책 가운데 가장 대중적이고 읽기 쉬운 작품으로 평가받는 '올 어바웃 러브'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이라는 감정과 그로 인한 개인적, 사회적 현상의 모든 측면을 살피는 에세이인데, 저자의 사유는 페미니즘의 기본 틀 위에서 움직인다. 가령 젊은이들의 냉소주의에 대해 개탄하며 사랑의 힘을 설파하는 와중에도 그는 페미니즘을 잊지 않는다.
"나는 미국 곳곳을 돌며 인종주의와 남녀 차별주의를 없애자는 강연을 자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사회정의를 위한 운동을 펼치는 데도 사랑이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면 청중 가운데 젊은이들이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많이 보인다. 여태까지의 위대한 사회운동들은 항상 사랑의 윤리를 운동의 중심에 놓았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은 사랑에 사회를 바꾸는 힘이 있다는 말을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는다."(17쪽)
‘올 어바웃 러브'는 페미니즘의 대표격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우리가 서점에서 접할 수 있는 페미니즘 관련 도서 가운데 가장 '부드러운' 축에 속한다. 훅스는 사랑이라는 문제 앞에 선 여성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가령 남자를 내 것으로 사로잡기 위해 상대와의 합의 없이 아이를 갖고 낳아버리는, 이른바 '임신공격'에 대해 준엄한 질타를 하는 대목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성애자 여성 가운데엔 남자를 이용하기 위해 경험 많은 다른 여성에게 거짓말하는 기술을 배우는 경우도 많다. 대개 어떤 남자와 결혼하려 하거나, 아기를 가지려고 할 때 그런 조언을 많이 구한다. 이런 행동은 당연히 옳지 않다. 상대방을 속이는 일일 뿐 아니라, 태어날 아기의 권리, 즉 부모 모두가 원하는 자식으로 태어날 아이의 권리 따위는 깡그리 무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78~79쪽)
자기 이익을 위해 남자를 속이는 여자들도 있고, 그런 거짓말을 다른 여자에게서 배운다니.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퐁퐁남'이니 '설거지론'이니 하는 남성 피해 서사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이들이 반색하고 환영할 법한 인용문이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훅스는 페미니즘이 미국 사회를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후 남성들이 마초이즘에서 벗어났지만 소년으로 남아버리는 현상이 벌어졌다고 지적한다.
"이 새로운 미국 남성들은 페미니즘이 초래한 문화혁명을 겪은 세대다. 그들 가운데 다수가 어릴 때 아버지가 없는 집에서 자랐다. 또한 그들은 '더는 마초 같은 남자는 필요없다'는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전통적 마초가 되지 않기 위해 그들이 선택한 길은 아예 남자가 되지 않는 것, 즉 소년으로 그대로 남는 것이다."(194쪽)
이와 유사한 논의는 '올 어바웃 러브'의 곳곳에서 확인 가능하다. 훅스는 여성의 미덕뿐 아니라 악덕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주목하며 페미니즘이 새로운 지적‧도덕적 기준으로 자리 잡은 후 발생하고 있는 남성성의 실종에 대해서도 진지한 관심을 보인 것이다.
필자는 벨 훅스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가, 특히 페미 논란을 일으키는 네티즌들이 가지고 있는 여성주의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얄팍한지, 그 이해의 수준이 얼마나 피상적인지 지적하기 위해 미국을 대표하는 페미니스트 작가 벨 훅스의 주요 저서에 등장하는 논의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페미니즘 제외 관점 불가능해진 시대
그 방법들로 제시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페미니즘이다. 우리가 오늘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보는 수많은 고전 명화 가운데 상당수는 그런 그림을 주문, 의뢰할 수 있던 권력층의 눈요깃감으로 제작됐다. 여성의 나신을 그려놓고 성적인 시선으로 감상하기 위함이다.
버거는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1583년작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에두아르 마네의 1863년작 '올랭피아'를 비교한다. 두 여성 모두 알몸을 내놓고 있지만 비너스는 얼굴에 홍조를 띈 채 고개를 살짝 꺾고 있다. 유혹적 태도와 표정이다. 반면 올랭피아는 얼굴을 꼿꼿이 들고 정면을 응시한다. 남자를 유혹한다기보다 제압할 듯한 눈빛이다. 르네상스 시대만 해도 노골적이던,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근대화 과정에서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존 버거는 독자들에게 '미러링'을 권하기까지 한다.
"이 책에서 전통적 누드화를 아무 작품이나 하나 고른 다음, 그림 속 여자를 남자로 바꿔 보자. 머릿속에서 생각만 해도 좋고 직접 그려봐도 좋다. 그리고 그런 전환이 얼마나 폭력적인 것인지 살펴보기 바란다. 이미지 자체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관객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 관념에 대한 폭력 말이다."(77쪽)
‘다른 방식으로 보기'가 온전히 페미니즘에 경도된 책은 아니다. 총 7개의 장에서 3개는 이미지로, 4개는 텍스트로 구성돼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페미니즘이고, 다른 대목에선 마르크스주의적 비평을 다룬다.
중요한 건 '현대의 고전'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책, 미술학도와 교양인들의 필독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페미니즘이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물론 미술작품을 보는 방식에 페미니즘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페미니즘을 제외하고 미술을 감상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 또한 사실이다.
‘여름의 문'은 여성의 몸, 신체적 변화, 월경 등을 미화하지 않는다. 목욕탕에서 보이는 할머니의 늘어진 가슴, 생리혈의 질감, 냄새 같은 요소가 거리낌 없이 등장한다. 19세기나 20세기 초까지 '교양인'이라면 입에 담지도, 글로 적지도 않았어야 할 내용들이지만 현대 페미니즘은 여성의 육체를 여성 스스로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묘사하고자 한다. 책을 읽고 말고는 개인 취향이겠지만 오늘날의 교양 독자라면 저자의 필력에 감탄해야지 "어떻게 이런 내용을 책에 쓰느냐" 같은 소리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올 어바웃 러브'는 이성애자 여성으로 살아온 한 페미니스트의 인생 역정과 지적 이력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사랑을 주제로 삼으면서 자연스럽게 여성의 미덕뿐 아니라 악덕에도, 남자들의 강함뿐 아니라 약함까지도 다룰 수 있게 된 작품이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페미니즘 책이지만 현 시대를 살아가는 교양인의 눈높이에서 받아들이지 못할 내용도 딱히 없어 보인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 역시 마찬가지다. 미술 비평 분야에서 현대의 고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 책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미술 작품에 담겨 있었고, 후대의 화가들이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왔는지,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생생한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이 책을 페미니즘 도서로만 여길 순 없지만 그렇다 해서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위화감 없이 페미니즘 읽고, 말할 수 있어야
고백하자면 필자는 아이돌 그룹에 큰 관심이 없다. 이 글을 쓰기 위해 허윤진에 대해 검색했고, 그가 미국 대학 합격증을 받았지만 입학하지 않고 한국에 와서 아이돌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고 나니 허윤진의 가방에 담겨 있던 책들의 정체가 쉽게 이해됐다. 아이비리그 혹은 미국 주립대 출신 대학생 혹은 대졸자, 말하자면 '교양 대중'으로서 큰 부담 없이 접할 법한 책인 것이다.대중문화든 이른바 '고급문화'든 그것을 만들고 즐기는 이들에게 페미니즘은 상식이 된지 오래다. 선진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대학생 이상 학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학교에서 수업을 듣지 않았더라도 '교양필수' 차원으로 어느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이들을 교양 대중이라고 부른다면, 허윤진의 가방에 담긴 책들은 교양 대중의 필독서 혹은 추천서 목록에 정확히 부합하는 것이다. 이 정도 책은 아이돌뿐 아니라 모든 10대와 20대가 읽어야 마땅하다.
이 글의 목적은 르세라핌의 허윤진이 '찐페미'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 반대일 수도 있다. 또 나왔다가 사그라진 페미 논란은 어처구니없고 황당하지만 비웃고 지나갈 일도 아니다. 우리는 평범한 대학생 내지 졸업생 수준의 교양인이라면 이 정도 페미니즘 서적은 아무 위화감 없이 읽고, 토론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jeongtaeroh@rie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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