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봄학교·학폭조사관…준비없이 ‘시험’ 치르는 학교
[주간 경향] 2024년 새 학기를 맞은 학교에는 큰 변화가 두 가지 있다. 애초 2025년 전국 확대시행 예정이던 초등 ‘늘봄학교’가 1년 앞당겨진 이달부터 확대 시행됐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학교폭력 사안 처리 제도 개선안’ 발표를 통해 도입 계획을 밝힌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학폭조사관)’제는 석 달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전국 모든 시·도교육청에서 운영에 들어갔다.
늘봄학교는 윤석열 정부의 핵심 국가돌봄정책이다.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최장 13시간 동안 학교에서 학생들이 머무를 수 있도록 학교가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골자다. 학폭조사관제는 퇴직경찰, 퇴직교원, 아동·청소년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조사관이 학폭 사안을 전담 조사해 교사들의 업무부담을 줄이고, 학폭 처리의 전문성과 투명성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두 제도가 시행되기까지 과정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충분한 시범운영이나 평가의 시간을 갖기보단 ‘속전속결’로 정책이 실행됐다. 정책 집행에 있어 ‘속도’를 강조하는 윤 대통령의 뜻이 반영됐다. 준비 미흡 문제로 일선 교사들 사이에서 “졸속 추진”이라는 우려와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공통점이다. 늘봄학교는 전담 인력 및 공간 문제로, 학폭조사관제는 실효성과 효율성 문제를 놓고 각각 논란이 일고 있다. 학부모와 학생 대다수는 늘봄학교와 학폭조사관제를 올해 들어 처음 겪는다. 돌봄과 학폭은 일반 국민도 관심이 많은 사안이다. 제도의 성패를 놓고 학교가 시험대에 올랐다.
정부는 “오후 8시까지 돌봄”, 현실은 “하루 2시간이 끝”
경기도 안양에 거주 중인 A씨는 올 1월 초등학교에 입학 예정인 자녀의 학교 돌봄교실 입실을 신청했다가 추첨에서 떨어졌다. A씨는 회사에 사정을 읍소한 뒤 재택근무를 하며 하교한 자녀를 돌보기로 했다. 그러던 중 정부가 늘봄학교를 전국 확대 시행한다고 발표(2월)한 뒤 학교에서 “돌봄 인원을 더 받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A씨 자녀를 포함해 총 17명이 추가로 학교 돌봄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A씨는 기뻤지만 잠시뿐이었다. 학교는 “하루 2시간만 돌봄교실 이용이 가능하다”라고 통보해왔다. 아이들을 돌볼 인력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1학년인 A씨 자녀는 낮 12시 20분이면 수업을 마친다. 돌봄을 2시간 이용하면 오후 2시 20분에 자녀를 데리러 학교에 가야 한다. 출근은 여전히 불가능했다. A씨는 “정부에선 오후 8시까지 학교에서 돌봄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현실은 2시간이 전부”라며 “급하게 돌봄을 늘린 탓인지 준비가 많이 미흡하다고 느끼고 있다”라고 말했다.
아직 모든 초등학교가 늘봄학교를 운영하는 건 아니다. 올해 2월 19일 기준 교육부 집계를 보면 전국 6175개 초등학교 중 2741개(44.3%)가 새 학기 늘봄학교 운영을 시작했다. 단계적으로 늘려 2학기 때는 모든 초등학교에서 늘봄학교를 운영한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정부는 전체의 44.3%도 상당한 성과라고 말한다. 문제는 늘봄학교의 운영시간이나 방식 등이 학교별로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일단 전담인력을 확보했는지가 늘봄의 ‘질’을 좌우한다. 정부는 “기존 교원들에게 업무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기간제 교사를 뽑아 업무를 전담하도록 했다. 인력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학교가 많다. 늘봄학교를 운영하는 서울의 B초등학교는 학기 시작 전 기간제 교사를 구하지 못해 최근 재공고를 냈다. 교사를 구할 때까진 교감 등 기존 교원이 늘봄을 맡기로 했다. 기간제 교사를 채용했더라도 이들의 근무시간 외(오전 7~9시·오후 6~8시) 업무나 늘봄학교에 포함된 ‘맞춤형 프로그램(하루 2시간)’ 강사를 구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충남의 C초등학교, 울산의 D초등학교 등은 해당 인력을 구하기 위해 ‘시급 1만원’을 걸고 자원봉사자를 구하고 있다.
전담 인력을 구하지 못하면 늘봄학교가 파행운영되거나 기존 교사들에게 해당 업무가 떠넘겨진다. 이는 지난해 시범운영 단계에서부터 숱하게 문제점으로 지적됐는데도 해결되지 않은 채 전국 확대시행을 맞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지난 3월 6일 “3월 4일부터 늘봄 실태조사를 한 결과 하루 만에 80여건의 파행 사례가 접수됐고, 절반 이상이 늘봄 업무에 교사가 투입된 사례”며 “늘봄 파행에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력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경기도의 한 교감은 “기간제 교사를 못 구한 학교들은 결국 교감들이 해당 업무를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떠맡고 있다”라며 “그런데도 교육부는 무슨 생각으로 2학기엔 6000여개 모든 초등학교에서 늘봄을 하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늘봄학교 운영에 필요한 돌봄교실 등 ‘공간’ 확보 문제도 있다. 녹색정의당 정책위원회의 ‘2022년 과밀학급 현황’ 자료를 보면 서울 강남(37.70%)·서초(35.90%), 경기 하남(35.90%)·김포(31.10%)·과천(30.50%) 등은 초등학교 과밀학급 비율이 30%를 넘었다. 경기 화성·용인·김포·수원 등은 초등 과밀학급수가 각각 400~600개에 달했다. 최재영 충남교사노조위원장은 “용인이나 수원은 물론 충남 천안·아산 등 지역별로 과밀이 심한 지역은 이미 학교 특별실이나 학생 휴게공간까지 교실로 쓸 정도로 공간 문제가 심각하다”며 “늘봄을 할 공간도 없는데 내년에는 학교에 ‘늘봄지원실’까지 만든다는 정부 발상은 현실과 괴리가 크다”고 밝혔다.
학폭조사관제 도입으로 ‘학폭 소송’ 증가 우려
학폭조사관제는 지난해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됐다가 자녀 학폭문제로 사퇴한 정순신 변호사 사건,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 순직 사건 등으로 학폭처리 과정의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자 도입됐다. 기존에는 학폭사건이 접수되면 교내 전담기구(교사·학부모·아동전문가 등 참여)에서 사안을 조사한 뒤 교내에서 자체 해결(피해자 동의 시)하거나 각 지방교육지원청의 학폭심의위원회(학폭위)에 사안을 넘겨 처분을 받았다. 제도가 도입된 지난 3월 1일 이후부터는 학폭 접수 시 교육지원청이 위촉한 학폭조사관이 사안을 조사한 뒤 교내 자체 해결, 학폭심의위 이관 등의 절차를 밟게 된다.
학폭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교사들이 받는 업무 부담을 줄이는 것 제도 도입의 주요 취지다. 이는 교사노조나 교원단체들이 줄곧 요구해온 사안이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제도 도입을 밝혔을 때 교원단체 등은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시도교육청별로 관련 연수가 진행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제도 도입 이후에도 학교(교사)가 학폭 사안 접수 및 1차 확인서·접수보고서 등을 작성해야 하고, 학폭조사관의 학생 조사 시 교사가 배석해야 하는 등 여전히 교사가 학폭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교사노조연맹은 “학폭 업무 경감은커녕 조사 일정 조율 및 조사 시 배석 등 교사 업무가 오히려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며 “학폭 조사업무를 완전히 이관해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벼운 사안도 학폭조사관이 조사하면서 필요 이상으로 행정력과 예산이 소요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교육지청 소속 학폭심의위원은 “제도 시행 전 학교에 접수되는 학폭의 60~70%는 교내 자체 해결됐고, 심의위에 올라온 사안도 60~70%가량은 경미한 사안”이라며 “이렇게 경미한 사안들까지 전문 조사관을 투입해 비용(1건당 18만~40만원)을 들여가며 조사하는 게 얼마나 실익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조성백 서울시교육청 장학사는 “일선 학교에 배포한 가이드라인을 통해 ‘경미한 사안의 경우 종전대로 학교에서 조사하고 종결처리하는 방안도 가능하다’라고 안내했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학폭조사관제 도입으로 ‘학폭 소송’ 등 법적 대응 비용이 증가할 것으로 내다본다.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27일 공개한 ‘학폭조사관 직군별 현황’ 자료를 보면 전국 15개 시도교육청이 위촉한 1743명의 학폭조사관 중 ‘퇴직경찰’이 658명(38%)으로 가장 많았다. 한 학폭전문 변호사는 “수사 전문가인 퇴직경찰이 투입되면 조사의 신빙성이나 보고서의 완성도는 분명 높아질 것”이라면서도 “반대로 조사를 받는 학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서는 전문가의 조사에 대비하기 위해 초기 단계부터 변호사를 구하는 등 법률 대응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올해 3월 1일부터는 학생생활기록부(학생부)에 기재되는 ‘가해학생 조치사항’의 보존기한도 늘었다. 이전에는 학폭 수위에 따라 6호(출석정지), 7호(학급교체), 8호(전학) 등의 처분을 받으면 ‘졸업 후 2년’까지 해당 조치사항이 보존됐다.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보존기한이 4년으로 늘었다. 학폭 조사와 처분의 수위가 모두 높아진 만큼 ‘학폭 소송’ 역시 증가할 것이란 게 법조계의 견해다.
학폭조사 과정에 퇴직경찰이 개입하는 게 맞는가에 대한 논란 역시 계속되고 있다.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대표는 “조사에 엄밀함을 더한다는 이유로 전직 수사전문가 앞에 아이를 결국 세우는 것인데, 학생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배려가 있어야 한다”며 “학폭을 예방하거나 학폭에 대한 교육적 해결을 모색하기보단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정책이 집중되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임이랑 법률사무소 률 변호사는 “현행 학교폭력예방법을 보면 지나치게 경미한 사안까지 학폭의 범주에 포함돼 부모 간 감정싸움, 법적 다툼 등으로 일이 커지는 측면이 있다”며 “학폭 적용 대상과 범위를 일부 축소하고, 교내 학폭 전담기구의 역할을 강화하는 등 법률 개정을 통해 교육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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