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격전지 르포] 유성을 '5선 중진 vs 여성과학자' 맞대결
(대전=연합뉴스) 김준범 기자 = "대전 사람들은 특정 정당을 보고 투표하지 않아요. 지역에 도움이 되고 시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후보를 선택할 겁니다"
지난 6일 대전 유성구에서 만난 시민들은 대부분 한달 앞으로 다가온 제2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냉철하게 투표권을 행사하겠다는 다짐을 내비쳤다.
역대 선거마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왔던 지역 유권자들은 이번 총선에서도 '진짜 일꾼'을 찾기 위해 후보들을 유심히 지켜보는 중이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7석을 독식한 대전에서는 특히 유성을 선거구가 가장 주목받는 격전지로 꼽힌다.
단일 선거구였던 유성은 지난 20대 총선부터 갑과 을 선거구로 나뉘어졌다.
'과학기술 요람'인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대덕특구)를 품고 있는 유성을 선거구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충남대학교 등 학생들을 비롯한 젊은 층이 많고, 30여개 정부출연연구원 소속 노동조합이 있어 그동안 민주당 강세 지역으로 꼽혔다.
하지만 신성동 주변에 군부대가 집중돼 있고, 최근 유성 지역 아파트값 상승 등 영향으로 보수 성향 목소리도 커져 후보 간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이번 총선에서 유성을은 '노련함의 중진의원'과 '연구원 출신 새 정치인'의 신구대결이 펼쳐진다.
국민의힘에서는 '유성 터줏대감' 이상민 후보를 전면 배치했다.
이 후보는 2004년 제17대 총선을 시작으로 유성에서만 5번 선거에서 모두 승리를 챙겼다.
그는 지난 1월 "이재명 사당, 개딸(강성 지지층)당과 결별한 것"이라며 파란색 옷을 벗고 국민의힘 상징인 붉은색 목도리를 목에 둘렀다.
이 후보 지지자들은 "유성에서 오랫동안 정치를 하면서 누구보다 지역 사정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과학계는 물론 유성에 진짜 필요한 부분을 발전시키기 위해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지 않아 직접적인 선거 활동은 할 수 없지만 이 후보는 자신의 지역구 사무실을 찾는 지지자들과 인사하며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이 후보는 "국민의힘에 입당한 뒤 주민들의 응원을 많이 받고 있다"며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 등 고민이 많은 젊은층 이야기도 경청하면서 필요한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반발하며 '우주과학 전문가'인 황정아 후보를 내세웠다.
민주당 총선 '인재 6호'로 영입된 황 후보는 전남 여수 출신으로 전남과학고를 나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학부와 석·박사를 마쳤다.
과학기술위성 1호인 우리별 4호 탑재체 제작, 누리호 탑재 도요샛(초소형 위성) 개발 주도, 우리나라 첫 정찰위성 사업인 '425 사업' 자문위원 참여 등의 경력을 갖고 있다.
황 후보 지지자들은 "현재 대한민국 과학 중심지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적합자"라면서 "이제 유성을은 미래를 위해 새롭게 변해야 할 시기"라며 응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황 후보도 관평동에 선거캠프를 차리고 '과학의 힘으로, 완전히 새로운 유성'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달며 본격적인 이름 알리기에 나섰다.
그는 "과학자로서 성공한 경험을 살려 유성구민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유성을 선보이고 싶다"며 "실현할 수 있는 생활 밀착형 공약을 제시하겠다"고 다짐했다.
두 후보 공약 가운데 공통점은 올해 대폭 삭감된 R&D 예산을 증액하겠다는 것이다.
이 후보는 "삭감된 과학기술 R&D 예산에 대해 내년 전액 복원을 전제로 하고, 올해는 응급조치로 오는 5∼6월께 있을 추경에 우선 1천87억원을 편성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황 후보도 "연구원들이 안심하고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정부 예산 총지출의 5%를 R&D 예산으로 의무화하는 법안을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두 후보 모두 R&D 예산 복원에 힘쓸 것이라는 계획을 밝히자 연구 현장에서는 환영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한 정부출연연구기관 관계자는 "내년 연구개발 예산이 얼마나 증액될지는 모르겠지만 양당 후보가 모두 공통된 공약을 발표한 것은 반길만한 내용"이라며 "연구원들도 예산이 증액될 수 있도록 현장에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두 후보가 어떤 방식과 방향으로 예산을 늘릴 계획인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것"이라며 "대덕특구를 품고 있는 선거구인 만큼 연구자들을 위한 정책도 나오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두 후보를 향한 구민들의 기대가 큰 만큼 일각에서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이상민 후보를 향해서는 '철새정치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유성구 한 구민은 "20년간 국회의원직을 유지하면서 정당을 옮겨 다니는 모습이 유권자 입장에서는 좋게 보이지 않는다"며 "R&D 예산을 지키지 못한 국회의원으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았다"고 꼬집었다.
'새 얼굴'을 내세우는 황정아 후보에게는 '정치 초보'라는 이미지가 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한 유권자는 "과학기술계를 대변한다고 출마를 선언했는데 지역민을 위한 깊이 있는 고민도 필요하다"면서 "당내에서도 아직 입지가 크지 않아 구민 목소리가 잘 전달될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psykim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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