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격전지 르포] '찐윤 참모' vs '원조 친박' 경북 경산
"누가 당선돼도 경산 위해 일할 것…후보들 공정 경쟁해야"
(경산=연합뉴스) 이강일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국가 운영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해서는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돼야 하지 않겠나? 비리에 연루됐던 사람이 당선되면 안된다. 그런데 국민의힘 후보가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다"(50대 상인)
"최경환 후보가 부총리하고 국회의원 할 때 경산에 KTX 정차시켰고, 도로 깔고, 다리 놓은 데가 얼마나 많은데. 그 사람이 경산 발전 대명사인데 경산 발전을 위해 노력한 것은 인정해야지"(60대 상인)
"지역을 위해 일하겠다고 하고, 공약도 비슷비슷해 보이는 만큼 조지연이고, 최경환이고 누가 되더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누군가는 당선될 것이고, 그 사람이 경산 발전을 위해 일해 줬으면 한다"(50대 택시기사)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한 달가량 앞둔 지난 6일 낮 경북 경산시 자인시장 주변에서 만난 유권자들의 의견은 다양했다.
장날이 아닌데도 점심 식사를 위해 시장 식당가에 나온 시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경산시 지역구 선거 판세부터 더불어민주당 공천 등 총선과 관련한 주제로 대화하는 사람이 많았다.
5선에 도전하는 69세 전직 부총리와 대통령실 출신의 37세 여성 정치 신인이 맞붙게 된 경산 선거 판세와 관련해서는 상당수 시민은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우세를 점쳤다. 인지도가 크게 작용한 듯했다.
최 전 부총리가 '친박 좌장', '원조 친박'으로 통했고, 지역에 널리 퍼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막연한 우호적 정서 탓인지 최 전 부총리가 다시 당선돼 경산을 위해 일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이전 선거에서 나타난 경산지역 유권자들의 투표성향을 보여주듯 후보가 누구인지는 제대로 몰라도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는 소리도 있었다.
일부 시민들은 지역 유권자들이 공약·정책 비교는 하지 않고 사람만 보고 투표를 하는 지역 성향에 불만을 보이기도 했다.
영남대 등 대구권 주요 대학이 몰려 있어 젊은 층이 많기 때문인지 대학가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나 진보당 등 야당 후보와 그들의 공약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유권자도 보였다.
영남대 앞에서 만난 한 20대 남성은 "보수성향 후보 말고 다른 후보에 대해서는 언론도 유권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경북 경산시는 보수성향이 짙어 전통적으로 '국민의힘 공천=당선' 공식이 통하던 지역이었다.
이 때문에 21대 국회의원인 국민의힘 윤두현 의원이 당연히 재선에 도전할 것으로 여겨졌다. 이에 조지연 전 대통령실 행정관, 이성희 전 경산시의원, 류인학 전 국민의힘 중앙위 건설분과 부위원장 등이 국민의힘 공천을 두고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지난달 무소속으로 출마하기로 하면서 선거판은 확 바뀌었다.
최 전 부총리는 의정 사상 경산에서 4선(17∼20대) 의원을 지낸 유일한 인물로 지역에서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또 3선 경산시장을 지낸 최영조 전 시장과 국민의힘 당원 일부가 최 전 부총리의 선거캠프에 합류하면서 힘을 보탰다.
최 전 부총리 캠프에 합류한 국민의힘 당원들은 2022년 지방 선거 때 경산시장 공천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말에는 전직 경산시의원 20여명도 최 전 부총리의 캠프에서 지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지난 6일에는 전직 경북도의원 7명이 최 전 부총리 지지 의사를 표했다. 이들이 국민의힘을 탈당하고 최 전 부총리를 돕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두꺼운 지지층과 경산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보여주듯 최근까지 여러 차례 여론조사에서 최 전 부총리는 국민의힘 후보 누구와 대결해도 경쟁력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현역인 윤두현 의원(초선)은 지난달 말 "무소속 후보에 승리를 헌납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윤 의원의 불출마 선언 이후 대통령실 행정관 출신인 조지연 후보가 다른 경쟁자들을 누르고 국민의힘 공천을 받았다.
조 후보가 공천받으면서 경산 선거는 '찐윤 참모' 출신과 '친박 좌장'이 격돌하게 돼 경북지역 선거구 가운데 가장 많은 관심을 끌게 됐다.
조 후보는 1987년생으로 젊고, 여성이어서 남성 중심의 보수적 유권자 정서에는 다소 불리할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인지도도 최 전 부총리에 비해 떨어진다.
하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조직을 바탕으로 지지세를 모으며 최 전 부총리를 추격하고 있다.
여기에 현역인 윤두현 의원이 불출마하면서 당원들에게 당부한 덕분인지 국민의힘 소속인 현직 경산시의원과 경산을 지역구로 하는 경북도의원들은 총선 승리를 위해 조 후보를 지지하기로 하면서 차츰 지지세가 늘어가고 있다.
전직 시·도의원들은 최 전 부총리 쪽을 돕고, 현직 시·도의원들은 조 후보를 돕는 양상이다.
조 후보에 비해 우세하다고 자평하던 최 전 부총리측도 현직 시·도의원을 중심으로 한 국민의힘 당원들 결집이 이어지자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최 전 부총리 캠프 측은 지난 4일 보도자료를 내고 "총선을 한 달 남짓 남겨둔 상황에서 경산시 공무원들이 특정 후보와 긴밀하게 접촉하는 등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하고 있다는 제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캠프 측은 국민의힘 소속인 경산시장과 소속 공무원들의 불법 선거 우려가 있다며 선거관리위원회의 감시와 지도를 요구했다.
또 최 전 부총리와 고교 동기인 지방법원장 출신의 변호사를 단장으로 한 클린선거감시단을 구성해 경쟁 후보 측의 불법선거운동을 감시하기로 했다.
경산시민 서모(52·중방동)씨는 "지역발전을 이끌 사람이 누구인지 유권자들이 공약·정책 등을 살펴본 뒤 제대로 된 선택을 하고, 출마자들은 공정한 경쟁을 한 뒤 지역 발전을 이끌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산에서는 조·최 후보 외에도 더불어민주당 유용식 예비후보, 진보당 남수정 예비후보 등이 표밭을 다지고 있다.
lee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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