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격전지 르포] 울산북구, 단일화 시도가 '야권 분열'로
영남권 노동자 도시로 선거마다 보수-진보 접전, 후보 3명 전현직 의원 '이목'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울산 북구는 지역주의 정치에 대한 통념을 깨는 도시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중심으로 제조업이 발달해 노동자가 많은 이 지역에서는 '영남권=보수 텃밭'이라는 뻔한 공식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동안 선거마다 보수와 진보는 피 말리는 접전을 벌였고, 승리의 깃발도 한쪽이 독점하지 못한 채 번갈아 가며 꽂았다.
오는 4·10 총선에는 더욱 흥미로운 요소가 가미됐다.
더불어민주당과 진보당이 진보당 윤종오 후보를 단일후보로 내기로 합의했는데, 정작 민주당 소속이던 현직 이상헌 의원은 이 합의에 반발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해 버렸다.
야권이 여당과 맞대결을 노리고 내놓은 묘수가, 부메랑으로 되돌아와 도리어 야권 분열을 야기한 셈이다.
현재 상황은 여야 양자 대결 구도를 피하는 것과 동시에 야권 지지자들의 표심 분산까지 기대할 수 있는 국민의힘 박대동 후보에게 유리한 것으로 분석된다.
공교롭게 이들 3명 후보가 모두 북구에서 당선된 경험이 있는 전현직 국회의원이라는 점도 관심을 끈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당선'이라는 결승점을 통과하려는 3명의 후보는 저마다 방식으로 선거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그 숨 가쁜 행보의 일부분이나마 생생하게 들여다보고자 그들의 일정을 동행 취재했다.
박대동, 현장 간담회로 여론 수렴하고 정책 능력 어필
국민의힘 박대동 후보는 당을 상징하는 빨간 점퍼에다 목도리까지 착용한 차림으로 7일 오후 농소2동 약수초등학교로 들어섰다.
이내 학부모 10여명과 함께 운동장 한편에 둘러서더니, 지역 현안을 논의하는 현장 간담회를 약 1시간에 걸쳐 진행했다.
주제는 해당 지역에 단 한 곳도 없는 고등학교를 신설하는 문제였다.
학부모들은 원거리 통학 불편, 과밀·과대 학급에 따른 교육의 질 저하 등을 토로하며 고교 신설 필요성을 호소했다.
간담회가 열린 약수초가 내년 이전하기로 예정돼 있는데, 그 자리에 고교를 신설하는 대안이 합리적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다만 정치인이 약속하고, 주민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수준의 형식적인 자리는 아니었다.
유권자는 예리하게 꼬집고, 구체적 대책을 요구했다.
학부모들은 "학교조차 없는 실정인데, 믿고 아이를 낳아 키우라는 게 말이 되느냐", "학교 신설은 선거 때마다 공약으로 나왔는데, 당선된 뒤에 챙기는 분을 못 봤다", "어떤 해결 의지와 방안이 있느냐" 등의 지적과 질문을 내놨다.
박 후보는 "19대 의원 시절 초등학교 신설을 이뤄낸 경험이 있다"며 "저는 나라 재정을 관리하는 기획재정부 출신으로서, 이 난제를 해결할 방법을 잘 알고 사명감도 있기 때문에 믿어주셔도 좋다"고 답했다.
그러자 "후보 정당이나 정치 성향을 따지고 싶지도 않다"면서 "그저 아이들이 즐겁게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해주는 후보라면 선거에서 얼마든지 찍어드릴 것"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박 후보는 주민 목소리를 수렴하고 정책 구상에도 도움이 되는 간담회를 선거운동 기간에 적극 개최할 예정이다.
윤종오, 경로당 찾아 "노인부터 청년까지 행복한 사회 만들 것"
6일 오후 중산동의 한 아파트 경로당에 들어섰을 때, 스피커에서는 전통가요 '개나리처녀'가 큰 소리로 흘러나왔다.
둘러앉은 20여명의 어르신이 노래교실 강사의 구령에 따라 손뼉 치며 노래를 따라 부르던 중이었는데, 그 속에는 진보당 점퍼를 입은 윤종호 후보도 있었다.
윤 후보는 한명씩 시선을 맞추면서 호응을 유도하는 등 어르신들과 이질감 없이 잘 어울렸다.
그는 총선 출마 신고를 겸해 늦은 새해 인사를 올리고자 평소 주기적으로 방문했다는 이 경로당을 찾았다.
넙죽 큰절부터 올린 윤 후보는 "제 모친이 TV가 고장 나자 '유일한 친구가 없어서 외롭다'고 하셨는데, 그만큼 노년 생활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어르신뿐 아니라 청년도, 자영업자도, 회사원도 걱정 없이 사는 사회를 만들겠다"라고 출마의 변을 전했다.
맞절로 화답한 어르신들은 박수로 윤 후보를 응원했다.
윤 후보는 최고령자인 98세 할머니를 비롯해 모든 어르신과 일일이 악수하거나 하이파이브 한 뒤,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경로당을 떠났다.
그를 배웅한 한 어르신께 '이번 선거가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전망을 물었더니, "오랫동안 경로당을 찾으면서 목욕탕, 문화센터도 지원해준 윤종오를 찍어줄 것"이라고 했다.
'어르신들은 보수 정당을 선호하시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나이 먹었다고 국민의힘 찍고 그러지는 않는다. 우리 북구는 그게 특징"이라는 대답을 내놨다.
이상헌, 탈당 후 주민들과 첫인사…무소속 출마 준비 박차
7일 오전 신천동 지역농협 문화센터에서 열린 주부대학 개강식에 이상헌 후보가 참석했다. 탈당 후 무소속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주민들 앞에 등장한 것이다.
경쟁자들과 달리 이 후보는 그동안 선거 준비를 사실상 하지 못했다. 적어도 당내 경선을 거쳐 공천장을 확보하리라던 기대는, '진보당으로 단일화' 결정을 받아 든 순간부터 어그러졌기 때문이다.
민주당에 단일화 합의 재검토를, 진보당과 윤 후보 측에 단일후보 양보를 요구했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다.
서울과 울산을 동분서주하며 대책을 찾고 여러 차례 기자회견도 열었지만, 끝내 탈당과 무소속 출마 선언 수순으로 이어졌다.
이 후보는 지난 8일에야 뒤늦게 총선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다.
당적을 내려놓은 그는 본격적으로 미뤄둔 선거 준비에 몰두한다는 각오다. 이 후보는 "총선에서 당선돼 민주당으로 돌아가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주부대학 개강식에는 윤종오 후보도 참석했는데, 단일후보를 양보하라며 서로를 향해 날을 세웠던 두 사람은 인사는커녕 서로 시선을 피하면서 냉랭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행사에서 현역 의원인 이 후보는 내빈 자격으로 연단에 서서 인사말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인사말 말미에 "민주사회에서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기회를 줘야 한다. 옳고 그름을 똑바로 판단해야 우리도 삶의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순한 덕담이라고 하기에는 눈빛과 어조가 단호했는데, 이를 두고 '현재 심경을 담은 뼈 있는 말을 공개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이 후보 지지자는 "현역 의원이 있는데도 진보당으로 단일화한 것은 그냥 여당이 당선되라고 떠미는 꼴"이라며 민주당을 원망했다.
hk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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