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격전지 르포] 명룡대전 계양을…제1야당 대표 vs 與 거물정치인

박경준 2024. 3. 10.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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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팍팍해 현 정권 찍기 어려워"…"이재명 와도 달라진 게 없어"
송영길 내리 5선 등 20년 민주당 텃밭…변화 요구 목소리도 나와
지난 5일 인천 계양을에서 지역 주민과 인사 중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와 지난달 13일 국민의힘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오른쪽) [이재명 당 대표실 및 원희룡 전 장관 측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인천=연합뉴스) 박경준 김치연 기자 = 인천에서 비교적 조용한 베드타운인 계양을은 이번 총선에서 가장 뜨거운 지역구가 됐다.

더불어민주당의 대표적 텃밭인 이곳에 대권주자인 이재명 대표가 현역으로 있는 만큼 승부에 큰 변수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그런 이곳에 국민의힘이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을 '자객'으로 꽂으며 '명룡대전'이 성사됐다.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에서 대선후보를 지낸 제1야당 대표와 여당의 거물 정치인의 맞대결을 바라보는 유권자들의 심정은 어떨까.

지난 5일 오후 아파트가 밀집한 계산동 은행마을 앞에서 퇴근길을 재촉하던 안모(26)씨는 이 같은 구도가 영 못마땅한 듯했다.

안 씨는 "'명룡대전'이라는 말만 나오지, 동네 발전을 위해 뭘 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며 "계양을에 이렇게 관심이 많은지 몰랐다"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2022년 4월 보궐선거로 계양을에 온 지 2년이 채 안 된 '0.5선' 이 대표와 이번 선거를 목전에 두고 이곳을 선택한 원 전 장관 모두에게 냉랭한 듯했다.

계양을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계양 갑·을로 나뉜 이래 2010년 보궐선거를 제외하고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수 정당이 이긴 적이 없다.

선거구가 나뉘기 전인 2000년 16대 총선부터 다섯 번이나 당선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계양을의 맹주였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5일 지역구인 인천 계양구의 번화가에서 주민과 사진을 찍는 모습 [이재명 당 대표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총선을 앞두고도 민주당의 아성은 여전히 견고해 보였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 6시께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 7시 30분 계양구청 인근 번화가에서 '동네투어'를 하겠다고 예고했다.

이 시각에 맞춰 기자가 도착하니 족히 60∼70명은 돼 보이는 시민들이 몰려 있었다.

이 대표가 가는 현장에 으레 나타나는 유튜버들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이 대표와 민주당을 지지하는 지역 유권자들이었다.

딸과 함께 이 대표를 보려고 나왔다는 주부 고모(65) 씨는 "이 대표 지역 일정을 보러 온 게 세 번째"라며 "여기는 민주당 지지세가 워낙 강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2시간 45분 동안 서른 곳 남짓의 식당과 주점 등을 일일이 들러 주민들과 악수하고 지지를 호소했다.

들어가는 곳마다 빈자리가 많다고 걱정한 이 대표는 '민생'을 선거의 키워드로 제시했다.

이 대표는 연합뉴스 기자에게 "2년 전 보궐선거 때에 비해 손님이 너무 적어 가슴이 아프다"며 "민생에 무관심한 정부의 태도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계양테크노밸리를 첨단산업단지로 지정하고, 여기에 첨단 대기업을 유치하겠다는 지역 맞춤형 공약도 소개했다.

야권 지지층에서는 원 전 장관이 결국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고 계양을에 온 것일 뿐 지역 발전에는 도움이 안 될 것으로 내다봤다.

동네 토박이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던 양승호(43) 씨는 "경제가 안 좋아져 살림이 팍팍한데, 이번 정권과 함께한 사람은 더 찍기 어렵지 않겠나"라며 "원 전 장관이 아니라 다른 후보가 왔으면 여당이 표를 더 얻었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4일 인천 계양구의 한 카페에서 손님들과 사진을 찍는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김치연 기자 촬영]

반면, 20년 넘게 민주당의 텃밭이었던 만큼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았다.

지난 4일 계양구청 앞에서 만난 최상범(61) 씨는 "송영길이 그렇게 오래 해 먹고 이재명이 왔어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고 쓴소리를 했다.

도전자인 원 전 장관은 이 같은 여론을 십분 활용했다.

이날 낮 빨간색 목도리를 두른 채 계양구청 인근 번화가를 찾은 원 전 장관은 점심을 먹으러 나온 주민들에게 인사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후원회장을 맡은 축구 국가대표 출신 이천수 씨도 동행했다.

한 달 전부터 출근 시간 거리 인사는 물론, 점심과 저녁에는 식당에 들어가 일일이 악수하며 '스킨십'을 늘리고 있다.

원 전 장관은 연합뉴스 기자에게 "주민들이 처음에는 '계양을 이용만 하려는 것 아닌가' 하고 의심했지만, 발로 뛰어 모든 주민을 만난다는 각오로 다니자 '원희룡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하철 2호선·9호선 연장, 작전서운동 GTX-D역 설치 등을 지역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런 열정에 호응하듯 "이번에 한 번 뒤집으세요", "2번 찍을 거예요"라고 외치는 시민들이 눈에 띄었고, 원 전 장관은 "많이 좀 도와주세요"라고 화답했다.

원 전 장관의 당선을 바라는 국민의힘 지지층 유권자 사이에서는 중앙정치에서 부각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지적하는 분위기도 읽혔다.

원 전 장관을 지켜보던 하재범(58) 씨는 "이 대표는 전과 4범에 일주일에 세 번씩 재판에 불려 가는데 지역 주민을 위해 뭘 할 수 있겠나"라며 "원 전 장관은 집권 여당이니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kj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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