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재발견_부천수주도서관
수주도서관은 청동기 마을유적이 발굴된 고강선사유적공원에 자리하고 있다. 부천문화둘레길이 시작되는 공원과 가깝다 보니 책을 읽다가 둘레길이나 오솔길을 산책할 수도 있어 도서관 안팎이 풍요롭다. 이뿐만 아니라 도서관과 같은 날 개관한 수주문학관, 고강선사유적체험관이 함께 있어 책과 문화, 역사와 자연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시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부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지정
최근 지자체마다 특성화 주제를 설정해 공공도서관을 운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부분의 신규 도서관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도서관의 테마를 정하고 그에 맞는 이용자 중심의 건축과 인테리어로 도서관을 꾸미고 있다. 책을 읽기에도, 잠시 머물다 가기에도 좋은 공간 디자인을 우선시하는 요즘의 공공도서관 앞에서, 여느 공공기관과 다를 바 없는 건물에 장서량으로 승부를 보던 도서관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2022년 7월 8일 부천에서 15번째 시립도서관으로 문을 연 ‘수주도서관’은 연면적 6천196㎡,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도서관을 중심으로 문학관, 선사유적체험관, 시민학습관이 공존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탄생했다.
급성장한 산업도시가 그렇듯 부천시 역시 이주민이 많아 삶의 치열함이 묻어 나는 도시 분위기가 역력했고 이러한 도시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문화의 힘을 빌렸다. 부천에서는 해마다 국제만화축제가 열리고 있으며 판타지 영화를 중심으로 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1997년부터 개최되고 있다.
부천시는 문화 발전의 전략인 만화, 영화, 도서관, 교육 등을 종합적으로 견인하고 도시의 지속가능한 발전 대안으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가입을 추진했다. 이에 2017년 동아시아 최초이자 세계 21번째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로 지정됐으며 문학의 구심점이 되는 시립도서관의 활성화를 위해 부천시만의 특색 있는 문화특화프로그램을 추진·운영 중이다.
한편 부천시는 협약된 도서관끼리 소장한 자료를 서로 주고받으며 이용자가 빌릴 수 있는 ‘상호대차서비스’를 2002년 전국에서 처음 시행했다. 현재 16개 시립도서관을 비롯해 공립작은도서관(19개소), 대학도서관(3개소) 등 43개소를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2016년부터 시민이 원하는 책을 도서관 방문 없이 가까운 서점에서 대출할 수 있는 희망도서바로대출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책, 문학, 역사가 공존하는 공간
부천수주도서관은 고강선사유적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청동기 마을유적이 발굴된 장소로 이와 연계해 수주도서관 별관 2층에는 고강선사유적체험관이 마련돼 있다. 체험관에서는 청동기 마을유적의 모습과 집터에서 유물을 발굴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이렇듯 선사유적이라는 지역 문화자원을 활용해 수주도서관은 역사(고고학)를 특성화 주제로 삼고 역사 도서 저자 강연회, 아동 대상 선사테마 특화 프로그램(선사시대 시간탐험대) 등을 운영한다.
한편 수주도서관의 이름은 일제강점기 학자이자 언론인·문인의 삶을 산 수주(樹州) 변영로의 호를 따 명명했다. 3·1운동 당시 ‘독립선언문’을 영문 번역하고 타자기로 직접 타이핑한 것으로 유명한 그는 부천을 대표하는 문필가로 주민공모 과정을 통해 도서관 이름이 정해졌다.
부천은 변영로의 아버지가 삶의 터전으로 여기며 살던 곳이다. 정작 변영로는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그는 스스로 부천을 ‘출생치 않은 고향’이라고 말할 만큼 부천을 삶의 근원지로 여겼다. 고려시대 부천의 옛 이름이기도 한 ‘수주’를 자신의 호로 삼은 것도 고향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변영로 시인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 수주문학관이다. 수주도서관과 같은 날 개관했는데 시인과 관련한 자료 6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실은 ‘천재의 고향, 펜을 들다’, ‘민족의 울분, 기록하다’, ‘지조의 문인, 마음을 울리다’, ‘수주의 흔적, 정신을 이어받다’ 등 4개의 주제로 구성돼 있으며 시인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더욱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인터랙티브 체험과 영상을 함께 제공하고 있다.
부천문화재단의 위탁을 받아 운영하고 있는 ‘고강선사유적체험관’은 청동기시대 고강 선사 문화의 가치를 알리고 체험할 수 있는 역사체험형 전시 공간이다. 이곳 역시 도서관과 함께 2022년 개관했으며 1955년 부천 고강동 청룡산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 유적지를 바탕으로 발굴 당시의 모습과 옛 고리울 마을을 재현했다.
고강동의 선사 문화를 생동감 있게 전하고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는 체험관은 ‘고리울 선사유적을 발견하다’, ‘고리울 유적의 흔적을 찾아라’, ‘옛 고리울 마을로 떠나자’ 등 3개의 주제로 구성돼 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의 유물을 직접 발굴해볼 수 있으며 고리울 마을의 움집 생활과 당시의 제례 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다. 또 체험관 가까이에 고강동 선사유적지가 있는 선사유적공원도 위치해 함께 둘러보기 좋다.
생애주기별 맞춤 책 서비스 제공
한편 도서관 3층에 마련된 미디어창작소는 시민들이 문화를 생산하고 즐길 수 있는 ‘창의·공유·개방’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운영 중이다. 카메라, 조명, 녹음기기, 배경 등 영상 및 사진 촬영, 오디오 녹음이 가능한 장비가 구비돼 있어 시민들이 비용 부담 없이 콘텐츠 제작을 경험할 수 있다.
이 밖에 수주도서관은 시민이 직접 기획하고 참여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한 도시 한 책 읽기’, ‘북 페스티벌’ 등 자발적인 부천형 독서운동이 전개되고 있으며 저출산 등 사회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아기환영 북스타트’ 사업, 생애주기별 다채로운 ‘책맞춤’ 프로그램, 취약계층을 위한 ‘찾아가는 교육·도서 대출’ 등 지역과 융합하는 독서 복지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그중 생애주기별 ‘책맞춤 서비스’는 태어나면서부터 책 읽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한 신생아 ‘북스타트’ 서비스로 시작한다. 부천시에서 태어난 신생아 1천명을 대상으로 도서관, 행정복지센터 등 72개소에서 북스타트 책꾸러미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후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반려동물, 환경 등 20개 주제별 책꾸러미를 선택해 대출할 수 있는 ‘주제별 동화첵(check)’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조혜정 기자 hjch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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