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놀이터] 운동하며 놀 어르신 친구들~♬ 숨지 말고 여기여기 붙어라!
지역 최초 설립…장애인도 이용가능
동년배가 기구사용 안내 ‘노노케어’
고령층 친화 야외시설 각지 확산 중
미국선 치매환자 전용 공원 조성도
2025년부터 초고령 사회(만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로 접어들면서 어린이놀이터 못지않게 ‘어르신 놀이터’에 관한 관심이 커졌다. 어르신놀이터란 노인의 신체·정신 건강을 위해 노인 친화적으로 만든 야외운동 공간을 말한다. 어르신들도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노인정에서 담소를 나누는 것 이상의 신체활동을 원한다. 이런 관심을 반영해 최근 지방자치단체에선 어르신 놀이터를 설립하는 추세다. 전북 완주의 어르신 놀이터를 찾아 그 현재와 미래를 알아봤다.
◆ ‘마실’로 마실 가요=찬기가 채 가시지 않은 3월의 어느 날, 전북 완주 생강골공원 한편에 자리한 어르신놀이터 ‘마실’엔 삼삼오오 모인 어르신들 덕에 활기가 돈다. 마실은 2022년 3월에 문을 연 전북 최초의 어르신놀이터다. 완주군은 공원 유휴 부지에 162㎡(49평) 규모로 어르신놀이터를 조성해 푹신한 우레탄 바닥을 깔고 어르신을 위한 운동기구 12종을 설치했다.
“고리가 봉에 닿지 않게 천천히 움직여 보세요!”
‘플레이 플래너’인 이용식씨(76·봉동읍)가 어르신 놀이터를 찾은 다른 어르신 정진섭씨(79·〃)에게 기구 사용법을 알려준다. 이씨는 ‘노인 일자리 사업’을 통해 운동기구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가르치는 일을 한다. ‘노노케어(老老 care)’가 이뤄지는 것이다. 정씨가 배운대로 구불거리는 철봉에 달린 삼각형 모양 고리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옮겨본다.
“허허, 이거 쉽지 않네!”
고리가 계속 철봉에 부딪히며 ‘따닥’ 소리를 낸다. 고리를 옮기는 덴 힘보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마실에 있는 기구는 어르신이 사용했을 때 관절이나 근육에 무리가 가지 않게 설계됐다. 움직이는 손잡이가 달린 수직·수평 철봉에선 팔을 위아래, 좌우로 뻗으며 간단한 스트레칭을 할 수 있다. 균형 감각을 키우는 데 도움을 주는 기다란 나무토막 위를 걷는 기구 옆엔 손잡이가 달려 있어 어르신이 넘어지지 않도록 돕는다. 마실엔 어르신뿐 아니라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도 찾아와 운동한다.
마실을 찾은 이광순씨(76·〃)는 “평소에 허리가 아팠는데 스트레칭 기구에서 쭉 펴고 나니 아주 시원하다”며 밝게 웃었다.
마실은 신체활동을 하는 곳을 넘어 어르신이 다른 어르신과 소통하는 장이 된다. 기존에 알고 지내던 이웃과 함께 오기도 하고, 놀이터에서 만난 또래와 더불어 운동하며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이곳 어르신들은 마실이 생기기 전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는데 가까운 동네에 운동할 수 있는 장소가 생겨 좋다고 입을 모은다.
이용식씨 역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도우면서 외로움이 사라지고 뿌듯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 어르신놀이터의 미래=국내에 어르신놀이터가 하나둘 생기고 있지만 아직은 그 숫자가 부족한 게 현실이다. 국내 최초 어르신놀이터는 2010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 문을 연 시니어 복합체육시설이다. 핀란드의 놀이시설 전문 제작업체 ‘랍셋(LAPPSET)’의 제품을 수입해 모래 위에 설치했다. 그물다리와 흔들다리·평행봉·오르막길·계단이 쭉 이어진 형태로 기구 위를 걸으며 평행 감각을 기르게 된다. 이후 어르신놀이터 건설이 뜸하다 2021년 충남 공주 ‘미나리공원 어르신놀이터’가 생긴 것을 시작으로 전국에 하나둘 확충됐다.
지자체에선 노인복지사업의 일환으로 어르신놀이터를 조성하고 있다. 서울시는 2022년부터 ‘서울형 어르신놀이터 조성사업’을 추진 중이다. 매년 각 자치구 유휴 부지에 어르신놀이터를 설치해 2026년까지 25개 모든 자치구에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충남도 역시 지역 내 모든 시·군에 1개 이상의 어르신놀이터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2020년 밝혔다. 문제는 예산이다. 어린이놀이터는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55조의2에 따라 150가구 이상 주거단지를 지을 때 반드시 설치해야 하지만 어르신놀이터와 관련한 법령은 없다.
이태겸 서울사이버대학교 건축공간디자인학과 교수는 “고령화가 심각한 농어촌 지역에선 이용객이 적은 어린이놀이터가 방치된 경우가 많다”며 “어린이놀이터를 보완해 어르신놀이터를 세우기보단 조부모와 손주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세대 통합 놀이터’를 조성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해외에선 다양한 형태의 어르신 친화 야외시설을 만날 수 있다. 2002년 문을 연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메모리 가든’은 치매를 앓는 어르신과 간병인을 위한 공원이다. 치매 환자는 꽃과 나무를 보며 오감을 깨우고 걷는 것을 연습한다. 캐나다는 노인과 아이가 모두 즐거운 세대 통합형 공원을 지향한다. 영국 런던에 있는 ‘하이드파크 노인 놀이터’는 나무로 둘러싸인 곳에 볼링장·테니스코트와 사이클링 머신 등이 마련돼 있다. 독일 뉘른베르크 공원엔 65세 이상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어르신들은 그곳에서 거대한 체스와 볼링을 즐긴다.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