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권력 뜨고 의료대란 장기화…민주당 총선 겹악재
여당 위기 때 이회창·박근혜 차출
총선 승리 공식…한동훈 같은 경로
국가 비상상황엔 정부 지지 표심
외부요인 겹친 민주 ‘뾰족수’ 없어
지난 6일 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4차, 5차, 6차 경선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민주당 출입 기자 한 사람이 기자들의 단체대화방에서 “비명횡사 정도가 아니라 그냥 전멸인 것 같다”며 ‘둠스데이’ ‘제노사이드’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강병원·전혜숙·박광온·윤영찬·정춘숙·김한정 등 비이재명계 현역 의원들의 무더기 탈락을 ‘집단학살’로 묘사한 것입니다.
이날 경선 결과는 ‘이재명발 공천 파동’의 세번째 파도에 해당합니다. 첫번째 파도는 박용진 의원 하위 10% 통보였습니다. 보복 평가 논란이 일었습니다. 박 의원은 지난 대선후보 경선과 대표 선출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대표의 경쟁자였습니다. 두번째 파도는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홍영표 의원 공천 배제였습니다. 경쟁자 찍어내기 논란이 일었습니다. 두 사람은 총선 이후 8월 민주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에 출마할 수 있는 잠재적 경쟁자들이었습니다. 세번째 ‘비이재명계 현역 의원 집단학살’ 파도가 끝이 아닐 것입니다. 경선이 더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박용진-정봉주 후보 결선 결과는 오는 11일 밤에 나올 예정입니다.
민주당 ‘강성당원의 힘’ 확인
이번 경선 결과로 민주당 안에서 오래된 의문 한가지가 풀렸습니다. 친이재명 성향 권리당원들의 실제 영향력입니다. 그동안 민주당에서는 이른바 ‘개딸’로 불리는 친이재명 성향 강성 권리당원 및 지지자들의 영향력이 실제보다 ‘과다 대표’되고 있다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수가 그리 많지 않은데도 목소리만 커서 당내 분위기를 해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무도 ‘개딸 과다 대표론’을 말할 수 없게 됐습니다. 친이재명 성향 권리당원과 지지자들의 힘이 실제로 상당히 막강한 것으로 확실히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이 ‘팬덤정당’으로 한 발짝 더 다가선 것입니다.
이재명 대표가 말하는 것처럼 이번 경선 결과는 ‘1년 전부터 마련한 시스템에 의한 공천’의 결과물일 수 있습니다. 형식논리상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이재명의 민주당’ ‘개딸이 장악한 민주당’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더 짙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이미지는 민주당과 민주당 후보들의 본선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민주당으로서는 총선 악재입니다. “당의 주인은 당원임을 확인했다”며 환호할 상황이 아닙니다.
민주당의 이번 공천 파동은 4년 전 이해찬 대표 체제에서 이뤄진 공천과 여러 측면에서 대조적입니다. 당시에도 현역의원 하위 평가 감점 제도가 있었지만, 불공정 논란은 없었습니다. 비밀이 지켜졌습니다. 당사자들이 대체로 수긍했기 때문입니다. 하위 평가를 받은 의원들은 감점을 감수하고 경선을 치렀습니다. 이긴 사람도 있고 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가 감점을 받았는지 지금까지도 정확히 밝혀진 적이 없습니다. 이해찬 당시 대표는 경선에서 측근과 지인들에게 어떤 특혜도 주지 않았습니다. 측근들이 “너무 매정하다”고 원망을 쏟아낼 정도였습니다. 그렇다고 기계적인 경선 관리만 한 것은 아닙니다. 정무적인 판단을 정교하게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당 지도부에 쓴소리를 하도 많이 해서 ‘조·금·박·해’로 불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조응천(경기 남양주갑), 금태섭(서울 강서갑), 박용진(서울 강북을), 김해영(부산 연제) 의원입니다. 친문재인 성향의 권리당원들은 이들을 경선에서 떨어뜨리겠다고 별렀습니다. 이해찬 대표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비주류 의원들도 민주당 공천을 받아 출마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습니다. 금태섭 의원에게 정봉주 전 의원, 김남국 변호사가 도전장을 냈습니다. 이해찬 대표는 정봉주·김남국 두 사람을 차례차례 ‘정리’했습니다. 대신에 무명에 가깝던 강선우 후보와 경선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도 금태섭 의원은 경선에서 졌습니다. 금태섭 의원은 승복했습니다. 그의 깔끔한 성품 때문인 것도 있지만, 이해찬 대표의 배려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금태섭 의원을 제외한 세 사람은 민주당 공천을 받았습니다. 본선에서 조응천·박용진 의원은 당선됐고, 김해영 의원은 떨어졌습니다.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 공천 잡음이 거의 없었던 것은 이처럼 이해찬 대표의 리더십과 정무적 판단 및 관리 능력 덕분이었습니다. 잡음 없는 공천은 황교안 대표가 이끈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의 공천 난맥, 코로나19 사태와 겹치며 민주당의 유례없는 총선 압승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번 이재명발 공천 파동으로 인한 손실이 최종적으로 어느 정도일지는 아직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보다 더 커질 수도 있고 작아질 수도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이번 민주당의 공천은 혁신 공천, 그리고 공천 혁명이다. 민주당은 당원의 정당이고 국민이 당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경선을 통해 증명했다. 국민주권의 원리를 제대로 구현하고 있다”고 철벽 방어를 쳤습니다.
그러나 공천은 실제로 공정한 것보다 ‘공정하게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도가 회복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론조사 수치를 믿을 수 없다”고 외치며 정신 승리에 빠지는 것은 위험합니다.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할 것입니다. 오는 21일과 22일 후보등록 전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여당 위기 뒤 반등’ 역사 반복되나
모든 사람의 시선이 공천 파동에 쏠려 있지만 정작 민주당이 맞닥뜨린 총선 악재는 따로 있습니다. 공천 파동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력적인 두 개의 장애물입니다.
하나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입니다. 한동훈 위원장은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검사 출신입니다. 본인은 누구보다 똑똑하고 말도 잘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똑똑하고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집권 여당 대표로서는 말이 너무 많고 필요 이상으로 공격적입니다. 질문하는 기자를 타박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현장에서 취재하는 기자들 사이에 피로감이 쌓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동훈 위원장은 민주당이 상대하기 버거운 상대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미래 권력’이기 때문입니다. 여권의 미래 권력은 그 존재 자체가 엄청난 힘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도 그런 사례가 있었습니다.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김영삼 대통령은 이회창 전 국무총리를 전국구 1번으로 공천하고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겼습니다. ‘미래 권력 차출’ 전략은 성공했습니다. 신한국당은 예상을 깨고 1당을 차지했습니다.
2012년 4·11 19대 총선을 앞두고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2011년 10월26일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은 나경원 후보를 내세웠지만, 무소속 박원순 후보에게 패배했습니다. 총선 패배 위기가 고조되자 여권은 미래 권력이었던 박근혜 전 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세웠습니다. 박근혜 위원장은 김종인·이상돈·이준석 등 새로운 인물들로 비대위를 채우고 경제민주화를 앞세웠습니다. 당명도 바꾸고, 색깔도 바꿨습니다. 그런 혁신의 동력으로 총선과 대선을 모두 이겼습니다.
지난해 10월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한 이후 지금까지 벌어지는 장면을 보고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2012년 4·11 19대 총선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당의 보궐선거 패배, 총선 패배 위기감, 미래 권력 차출까지 전개되는 양상이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한동훈 위원장의 국민의힘이 앞으로 남은 기간 총선 승리 낙관론에 취해 방심할 가능성이 남아 있긴 합니다. 어쨌든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지도부가 지금 “여론조사와 언론을 믿을 수 없다. 우리가 이기고 있다”고 외칠 때는 아닌 것 같습니다.
4년 전엔 코로나, 이번엔 의료대란
민주당이 맞닥뜨린 다른 하나의 장애물은 의대 정원 확대와 의사들의 진료 거부 사태입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평가가 좋아지는 딱 하나의 이유는 의대 정원 확대와 의사들의 진료 거부 사태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4년 전 코로나 사태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코로나19가 확산하자 황교안 대표의 미래통합당, 그리고 우리나라 보수 세력은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정부를 강하게 몰아붙였습니다. 코로나를 ‘우한폐렴’이라고 부르며 색깔론을 뒤집어씌웠습니다. 그러나 민심은 야당의 뜻과는 반대로 움직였습니다. 상식적인 국민 다수가 국가 위기 상황에서는 정부 여당에 힘을 몰아줘야 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여야가 바뀌었을 뿐 민심의 작동 원리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하는 불법적인 집단행동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히 대응할 수밖에 없다. 국민을 위한 의료개혁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추진해 반드시 완수해내겠다.”
윤석열 대통령이 실제로 의대 정원 확대와 진료 거부 사태를 해결할 역량이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국가 위기 상황에서 유권자들의 표심이 정부 여당 쪽으로 기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민주당으로서는 난감한 일입니다. 뾰족한 대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정치는 옳기 때문에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겼기 때문에 옳은 것입니다. 선거 승리가 선이요, 선거 패배는 악이라는 뜻입니다. 4월10일 22대 총선 결과가 나오면 윤석열 대통령이나 이재명 대표 둘 중 한 사람은 선거 패배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이고 사죄해야 합니다. 그게 과연 누구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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