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이 쏘아올린 외국인 '최저임금 차등적용'…실현 가능성은 얼마나
일각에선 사회 공론화 필요성 제기하기도…논란 당분간 지속될 듯
(세종=뉴스1) 나혜윤 기자 = 간병·육아 돌봄서비스 인력난 해소를 위해 한국은행이 외국인 노동자 활용 및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제안하면서, '외국인 최저임금 예외' 논란이 수면위로 다시 떠올랐다. 한은의 제언에 인권단체와 노동계는 '반인권적'이라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선 사회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저출산 고령화로 따른 부족한 노동력으로 인해 야기되는 각종 경제·사회적 문제를 고려할 때 '오죽하면' 통화당국이 이같은 대안을 제시했겠냐는 이유에서다.
1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은 조사국은 최근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부담 완화 방안'이라는 보고서에서 간병 및 육아와 관련된 '돌봄난' 해결을 위해 '외국인 돌봄 인력' 도입이 필수적이라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개별 가구가 돌봄 외국인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거나, 정부 차원에서 돌봄서비스 영역에 '고용허가제'를 도입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이와 함께 한은은 비용 부담을 낮추는 방안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면서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필요하다는 제언을 내놨다. 한은은 "홍콩의 경우 외국인 가사도우미 임금이 충분히 낮아진 이후 고용이 늘면서 내국인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크게 개선됐고 오스트리아에서도 임금이 낮은 외국인 간병인 고용이 늘어난 이후 부모 간병에 따른 자녀의 경제활동 제약이 대부분 완화됐다"고 강조했다.
한은의 이같은 제언에 이주단체·노동계는 즉각 반발했다. 이주노동자평등연대는 "이주노동자의 노동을 최저임금보다 값싸게 부릴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차별적이며, 착취를 정당화하는 반인권·반노동적 사고"라며 "돌봄 노동자들의 처우와 노동 조건을 더 끌어올리고 개선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도 논평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을 값싼 노동으로 인식하며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밀어 넣겠다는 발상은 차별적이며 반인권적"이라며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인권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내국인 노동자의 노동환경마저 악화시키는 악순환 고리를 만들 뿐"이라고 지적했다.
◇작년부터 수차례 논란…정부 "국적에 따른 임금차별은 ILO 협약 위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 적용 논란은 지난해 외국인 가사관리사에 대해 한시적으로 최저임금을 배제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되면서 시작됐다. 이후 정부가 필리핀 가사관리사 도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조정훈 시대전환(현 국민의힘) 의원은 외국인 가사관리사에 대해 5년간 한시적으로 최저임금법 적용을 제외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해당 법안이 노동계의 비판에 휩싸이자, 법안은 발의된 지 하루 만에 철회됐다.
이후 정부가 필리핀 가사관리사 도입을 추진하면서도 논란이 일자 고용노동부는 국내법을 비롯해 국적에 따른 임금 차별을 금지하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위반을 언급하며 외국인 가사관리사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은 '당연하다'고 밝혀왔다.
정부의 이같은 입장으로 인해 최저임금 차등 적용 논란이 수그러 드는가 싶었지만, 최근 한은이 다시 논란에 불씨를 지피면서 이슈로 떠올랐다.
정부 안팎에선 최저임금 차등 적용까지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넘어야 할 산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국적에 따라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하게 되면 ILO 협약 위반이다. 이를 어기지 않는 방안으로 한은은 개별 가구가 '사적 계약'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게 하는 방식이나, 돌봄 업종에 대한 '업종별 최저임금'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임금을 낮출 방안을 제언했다.
하지만 개별 가구가 고용하게 되는 경우를 살펴보면 현재 가사관리사 임금 자체가 최저임금보다 높은 시세로 책정되어 있다.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의 경우에도 법적으로는 가능한 이야기지만, 업종별 임금을 따로 결정하기 위해선 최저임금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 이럴 경우 경영계와 노동계의 이견이 커 합의가 쉽지 않다. 실제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해 적용한 것은 '최저임금제도'를 도입한 첫해인 1988년 사례밖에 없다.
◇ 외국인 차등 지급 해외사례도 無…'시급한 상황' 공론화 필요성 주장도 제기
해외 주요국들의 사례에서도 외국인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 지급 규정도 없는 상황이다. OECD 회원국 26개와 비회원국 15개 등 41개 국가를 조사대상으로 한 최저임금위원회의 '2023년 주요 국가의 최저임금제도' 분석 결과, 내국인과 외국인의 최저임금을 다르게 지급하는 국가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대만의 경우에는 최저임금의 적용 제외에 '가정단위의 개인 간병인은 노동기준법을 적용하지 않고, 고용인과 피고용인 간의 상호 약정에 따라 임금 책정을 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대만은 간병인에 대한 임금이 현저히 낮은 시세로 책정되어 있다.
다만 한은의 파격적인 제언에 일각에선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때라는 반응도 나온다. 필리핀 가사관리사 도입을 사실상 처음으로 언급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시장을 무시한 정책은 필패'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2년 전부터 제가 거론했는데 신중한 한은이 이런 의견을 낸 것은 그만큼 상황이 시급하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한국은행은 간병 도우미는 월 370만원, 육아 도우미는 월 264만원이 드는 현실을 지적하며 외국인 가사 도우미에게는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싱가포르, 홍콩 등의 사례도 소개했다"면서 "육아나 간병으로 인해 일을 할 수 없게 되거나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지출하게 되면 온 가족이 불행의 늪으로 빠져들 수 있다. 이런 사례가 많아지면 결과적으로 국가 경제의 손실로도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와 서울시가 협력해 올해부터 외국인 가사 도우미 시범사업이 시작되지만 결국 비용이 장벽"이라며 "현재 방안대로 외국인에게도 최저임금이 적용되면 (비용이) 월 200만원이 넘어서 대부분의 중·저소득층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freshness410@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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