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샀을까, 탈때마다 후회·고통”…‘사생결단’ 싼타페·쏘렌토, ‘남의 떡’ 효과 [세상만車]
벤츠·BMW 닮은 싼타페·쏘렌토
테스형, 말파리효과에 성인됐다
뭘 사야 할지, 소비자에겐 고통
위버멘쉬(초인, 이상적인 인간)가 되기 위해서는 친구와 적이 될 줄도 알아야 안다. 친구 안에 있는 적에게 경의를 표하라.
“신은 죽었다”는 외침으로 유명한 독일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니체의 ‘초인 사상’이 이 책에 집대성돼 있습니다.
가수 김연자의 노래 제목이기도 한 ‘아모르 파티’(Amor Fati)도 이 책에서 나왔습니다.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으로 ‘파티’(Party)와는 상관없습니다.
‘적’과 ‘친구’가 들어간 내용은 그나마 이해할 수 있어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적이나 친구를 자신을 자극하고 독려할 ‘경쟁자’나 ‘동반자’로 해석하니 이해가 쉬워지더군요.
적과 친구에 대한 니체의 성찰을 철학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학·심리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메기 효과, 말파리 효과, 도도새의 법칙 등이 대표적입니다.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반복”이라고 강조한 20세기 대표 역사가인 아놀드 토인비 덕분입니다.
토인비는 “좋은 환경보다 가혹한 환경이 오히려 문명을 낳고 인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며 메기 효과를 자주 인용했습니다.
국내에서도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3년 ‘메기론’을 설파한 이후 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적절한 위협 요인과 자극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니체가 말한 ‘적’과 위협을 통해 성장을 자극하고 성공을 이룰 수 있게 몰아붙이는 메기는 닮은꼴입니다.
사람도 적절한 자극, 고통, 스트레스가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죠.
말파리 효과는 미국 자동차 브랜드인 포드가 존경심을 담아 고급 브랜드명으로 사용한 미국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의 일화에서 유래했습니다.
링컨은 대통령이 된 뒤, 유능하지만 거만한데다 자신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지닌 대통령 후보 경쟁자 체이스 상원의원을 재무장관으로 임명했습니다.
링컨은 주위 사람들의 우려에 “대통령이 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말파리가 체이스를 물고 있다”면서 “말파리가 체이스를 끊임없이 달리게 할 테니 떼어내고 싶지 않다”고 말했죠.
적을 이롭게 ‘활용’하는 니체의 ‘초인 사상’이 연상됩니다. 약초가 원래는 독초였던 것처럼 독을 약으로 쓸 수 있는 것도 적을 이롭게 활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죠.
봄날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안일함과 안주에 경쟁력을 잃어 작은 도전에도 쉽게 무너질 수 있으니까요.
토인비는 찬란했던 고대 마야 문명이 멸망했던 이유가 오랫동안 외부의 적이 없어 갑작스럽게 닥친 시련에 취약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죠.
먹잇감이 충분하고 천적도 없던 낙원에서 살아 하늘 나는 법을 잊어버린 도도새가 멸종된 이유도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포식자 때문입니다. ‘도도새의 법칙’입니다.
‘킬러계의 초인’을 다룬 영화 ‘존윅3: 파라벨룸’에서도 말과 단어는 다르지만 결국 같은 뜻을 지닌 명대사가 나옵니다.
“시 비스 파켐, 파라벨룸(Si vis pacem, para bellum)”이죠. 라틴어로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뜻으로 도도새의 법칙과 관련있습니다.
자동차 분야에도 있습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와 BMW가 이 효과로 재미를 톡톡히 본 대표 브랜드입니다.
두 브랜드는 각각 벤츠 E클래스와 BMW 5시리즈를 앞세워 글로벌 프리미엄 E세그먼트 세단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시장을 주도했습니다.
벤츠 S클래스와 BMW 7시리즈, BMW 3시리즈와 벤츠 C클래스, BMW X5·X6와 벤츠 GLE도 해당 세그먼트에서 경쟁력을 높여주는 두 마리 메기·말파리가 됐습니다.
현대차가 1997년 IMF 구제금융 이후 부도난 기아를 인수했을 때 카니발라이제이션(시장잠식)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서자인 기아가 적통인 현대차를 도와주는 역할에 머물려 존재감을 잃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습니다.
결과적으로 현대차와 기아는 ‘따로 또 같이’ 전략으로 서로를 자극하며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브랜드로 키웠습니다.
겉으로는 “너 때문에 못 살겠다”며 욕했지만 속으로는 상대방의 장점을 배우고 활용하면서 경쟁력을 높였기 때문입니다.
쏘렌토는 싼타페가 1위가 되도록 지원하고 자극하는 말파리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메기가 될 능력도 몰래 키웠습니다.
르노코리아 QM6, 쉐보레 이쿼녹스의 공격이 싼타페에 미치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역할도 수행했죠.
2020년 ‘디자인 기아’의 역작인 신형 쏘렌토가 나온 뒤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신형 쏘렌토가 메기가 됐습니다. 싼타페는 역할을 바꿔 말파리가 됐습니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사용하는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싼타페는 2018년에는 10만대 넘게 판매되며 ‘국민 SUV’ 대접을 받았습니다. 판매대수는 10만6428대에 달했습니다.
쏘렌토는 6만8215대 팔렸습니다. 3만2663대 판매한 QM6를 이겼지만 2위에 그쳤습니다.
2019년에는 QM6의 반격에 싼타페와 쏘렌토 모두 판매가 감소했습니다.
싼타페는 판매대수 8만6913대로 1위 체면을 지켰습니다. 쏘렌토는 5만2663대, QM6는 4만6952대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2020년에는 상황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쏘렌토가 8만1869대로 1위 자리에 올랐습니다.
싼타페는 5만8240대로 2위에 밀려났습니다. 게다가 4만7931대 팔린 QM6와 1만대 가량 밖에 차이나지 않는 굴욕을 겪었습니다.
쏘렌토는 2021년에는 7만18대, 2022년 6만8220대, 지난해 8만4410대 판매됐습니다. 4년 연속 1위를 달성했습니다.
싼타페 판매대수는 2021년 4만1739대에서 2022년 2만8205대로 감소했습니다. 말파리 역할도 제대로 못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습니다.
지난해 판매대수는 4만9562대로 전년보다 75.7%(2만1357대) 늘었습니다.
올해 1~2월에는 쏘렌토와 싼타페 모두 메기·말파리 효과 덕에 ‘윈윈’(Win-Win) 성과를 달성했습니다.
현대차·기아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쏘렌토가 그랜저를 제치고 국내 판매 1위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판매대수는 1만7955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9356대보다 91.9% 늘었죠.
싼타페도 전년동기의 4900대보다 214.9% 폭증한 1만5429대가 팔렸습니다. 지난해 8위에 그쳤던 순위도 2위로 ‘퀀텀점프’했습니다.
모욕감은 자극이 됐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싼타페는 없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환골탈태했습니다.
적이자 친구인 쏘렌토가 싼타페의 파격을 이끌어낸 셈입니다. 쏘렌토 탓이자 덕이라고 볼 수 있죠.
파격으로 재미를 본 쏘렌토는 메기가 된 뒤 ‘안정적인 개선’을 추구하면서 말파리가 된 싼타페가 주는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메기·말파리 효과, 도전과 응전, 윈윈 전략은 싼타페·쏘렌토의 진화와 혁신을 이끌어냈습니다.
소비자에게도 어떤 차를 골라야 할 지 결정을 제대로 내리지 못하는 만드는 고민을 던져줬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고르는 기쁨이 한 차종만 골라야 하는 고민을 넘어 ‘고통’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한 차종을 결정한 뒤에도 고통은 계속될 수 있습니다. 남의 떡이 커보이듯이 쏘렌토를 구입했다면 싼타페, 싼타페를 샀다면 쏘렌토를 살 것을 하면서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남의 떡 효과’인 셈이죠.
테스형은 악처 ‘탓’이 아닌 ‘덕’에 메기·말파리 혜택을 누리며 ‘4대 성인’ 반열에 올랐습니다.
인생의 동반자이지만 남편의 경제적 무능력에 악처가 될 수밖에 없었던 크산티페의 잔소리를 견디고 피하는 과정에서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깊이가 더 깊어졌을 겁니다.
이번 ‘세상만車’는 ‘이렇게 말했다’는 철학자 니체로 시작해 철학자 소크라테스로 끝맺겠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결혼하라. 좋은 아내를 얻으면 행복할 것이요, 악처를 만나면 철학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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