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S·해외부동산 위기에도…5대금융 사외이사 '찬성100% 거수기'

신호경 2024. 3. 10.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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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사회 162안건에 모두 찬성…리스크위에서도 반대·특이의견 없어
1억 넘는 보수받고 '우수·최고등급' 셀프 평가…74% 연임 눈앞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한지훈 민선희 기자 = 지난해 이미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이나 해외부동산 관련 대규모 손실이 현실로 드러났지만, 5대 금융지주의 대다수 사외이사가 침묵 속에 위기를 방관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들은 각 금융지주의 이사회는 물론이고 리스크(위험)관리위원회에서조차 강하게 문제를 지적하거나 대책을 추궁하기보다는 거의 모든 안건에 찬성표를 던지면서 '경영진 견제·감시'라는 본연의 임무에 소홀했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됐다.

금융정의연대, 홍콩 ELS 대규모 손실사태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 (서울=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금융정의연대 등 단체 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홍콩 ELS 대규모 손실사태 관련 금융당국에 대한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4.2.15 dwise@yna.co.kr

5대 금융지주 37명 사외이사 반대표 '전무'

10일 연합뉴스가 최근 공시된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2023년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작년 한 해 모두 37명의 사외이사가 각 금융지주 이사회에서 활동했다.

금융그룹별로 사외이사 인원은 ▲ KB 7명 ▲ 신한 9명 ▲ 하나 8명 ▲ 우리 6명 ▲ NH농협 7명으로, 이들은 각 금융지주가 개최한 15차례(결의안건 33건), 14차례(35건), 11차례(36건), 14차례(37건), 14차례(21건) 이사회에 참석했다.

하지만 이들 이사회에서 논의된 162건의 '결의 안건'에 사외이사가 반대표를 던진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결국 162건의 안건은 3건의 수정·조건부 가결을 포함해 100% 이사회에서 가결됐다.

홍콩ELS·해외부동산 난리에도 '특이의견 없음'

사외이사들의 '거수기' 행태는 이사회뿐 아니라 금융그룹 전반의 각종 거래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제때 인식·측정·감시·통제해야 하는 리스크관리위원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각 금융지주 리스크관리위원회(신한금융 명칭 위험관리위원회)는 3∼4명의 사외이사로 구성됐다.

1년간 KB·신한·우리금융지주는 9회, 하나금융지주는 8회, NH농협은 11회에 걸쳐 리스크관리위원회 회의를 열었지만, 지배구조·보수체계 연차 보고서상 5대 금융지주 리스크관리위원회의 모든 '보고 안건'별 사외이사 활동 내역란에는 '특이사항 없음' 또는 '특이의견 없음'만 적혀 있었다.

사외이사들은 리스크관리위원회의 '결의 안건'에도 모두 찬성했고, 따라서 안건들은 이의 없이 100% 통과됐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융권의 가장 큰 잠재 위험 요소로 부상한 H지수 ELS, 해외 상업용 부동산과 관련한 언급은 5대 금융지주 보고서를 통틀어 단 두 곳에 등장할 뿐이었다.

신한금융지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9일 열린 '제8회 위험관리위원회'에서 이용국 위원장(사외이사)은 '2023년 3분기 평가 보고' 사항과 관련해 H지수 기초자산 기반 ELS 상품 현황을 물었다.

하나금융지주는 같은 해 7월 24일 '제4회 리스크관리위원회'에서 첫 번째 안건으로 '미국 및 유럽 상업용 부동산 대체투자 점검 결과'를 보고했다. 하지만 해당 안건에 대한 사외이사들의 활동 내역 역시 '특이의견 없음'으로 기록됐다.

"우수·S등급" 자화자찬…해외서도 "사외이사 제역할 못한다" 지적

하지만 이런 활동에도 불구, 사외이사들은 스스로 매우 후한 점수를 줬다.

KB금융지주 리스크관리위원회 구성원(사외이사)은 ▲ 위원회 구성 규모의 적정성 ▲ 이사회가 부여한 권한과 업무위임의 적정성 ▲ 위원회 기능과 역할의 충실성 ▲ 안건 내용의 충실설 및 충분한 정보제공 등의 항목에서 자신들의 활동이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우리금융지주 리스크관리위원회 위원들 역시 위원회 구성·기능·역할·운영·경영진과의 의사소통이 우수한 것으로 자평했고, NH농협금융지주 리스크관리위원들도 설문 결과 모든 평가 항목에서 스스로 최고 등급(S)을 매겼다.

이런 '자화자찬' 덕분인지, 임기가 끝나는 사외이사 10명 가운데 7명꼴로 이달 말 주주총회에서 연임 확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5대 금융지주 현 사외이사 가운데 임기 만료를 앞둔 이사는 27명(KB 4·신한 9·우리 4·하나 6·농협 4명)인데, 74%에 이르는 20명(KB 3·신한 7·우리 3·하나 3·농협 4명)이 이미 각 금융지주 후보추천위원회로부터 중임(연임) 추천을 받은 상태다.

KB금융의 경우 김경호·권선주·오규택·최재홍 4명의 사외이사가 이달로 임기를 채우지만, 추가 연임이 불가능한 김 이사를 제외한 3명이 재추천됐다.

신한금융에서는 9명의 임기 만료 이사 중 곽수근·김조설·배훈·윤재원·이용국·진현덕·최재붕 7명이 주총에서 이변이 없는 한 연임될 예정이다.

우리금융의 윤인섭·정찬형·신요환, 하나금융의 이정원·박동문·이강원, NH농협금융의 남병호·함유근·서은숙·하경자 이사도 연임 대상이다.

국내 주요 금융지주 사외이사진이 경영을 제대로 감시하거나 견제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금융당국 등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계속 제기돼왔다.

앞서 지난해 초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는 3대 금융지주(신한·하나·우리) 주총 안건 관련 보고서에서 주주들에게 각 금융지주 사외이사 후보 연임 안건에 반대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라임·DLF(파생결합펀드) 사태, 채용 비리 등 각 금융지주의 대형 사고와 관련해 법적 위험이 있는 임원에 대해 집단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넘어간 만큼(collective inaction) 유임의 자격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연합뉴스가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5대 금융지주 사외이사의 작년 평균 보수는 7천531만원, 근무시간을 반영한 평균 시급은 약 20만원에 이르렀다. 특히 H지수 ELS 손실 규모가 가장 큰 KB금융지주의 경우 사외이사 7명 중 3명의 보수가 1억원이 넘었다.

shk999@yna.co.kr, hanjh@yna.co.kr, ss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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