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D-30] 울산북구 전·현직 3명 '진검승부'…탈당 이상헌 변수

김재식 기자 2024. 3. 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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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재선 이상헌 무소속 출마 '표밭 지키기' 총력
박대동 "3연패는 없다", "윤종오 "진보세력 재건"
울산 북구 무소속 이상헌, 국민의힘 박대동, 진보당 윤종오 예비 후보 ⓒ News1 김지혜 기자

(울산=뉴스1) 김재식 기자 = 노동자가 다수 거주해 전통적 진보 텃밭으로 인식되는 울산 북구가 22대 울산 총선의 최대 접전지로 부상하고 있다.

중앙당 결정에 따른 울산 민주당과 진보당 후보의 야권 단일화로 이번 총선에서 북구는 싱겁게 승부가 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하지만 지난 4일 울산 유일의 더불어민주당 소속 현역 재선이었던 이상헌 국회의원(69)이 지난 4일 탈당과 함께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이상헌 의원의 총선 출마가 현실화하면서 민주당 후보 무공천을 전제로 한 진보당 윤종오 후보로의 야권 단일화는 무의미해졌다.

지난 2012년 19대부터 21대까지 울산 북구에서 차례로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거물급' 총선 후보 3명이 22대 총선에서 불꽃 튀는 진검승부를 겨루게 됐다.

국민의힘 박대동(72·19대), 진보당 윤종오(60·20대), 무소속(전 더불어민주당) 이상헌(69·20,21대)후보가 당사자들이다.

이들 3명의 후보는 이번 총선에서 개인의 정치생명과 당의 존립을 걸고 그 어느 때보다 절박감속에 총선 레이스에 들어갔다.

울산 북구의 과거와 현재, 총선 지형 변천사를 되새겨 보면 이들 세 후보 절박감의 근원을 이해할 수 있다.

울산 북구는 한때 현대자동차와 협력업체 직원 중심으로 노동자들이 많이 살아 진보진영 강세 지역으로 늘 거론됐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핵심 거점이기도 했다. 원주민 중심의 보수세력과 외부유입 노동자 세력을 핵심지지 기반으로 한 현 국민의힘과 진보당이 선거 때마다 '강 대 강'으로 부딪쳤다.

우리 사회를 보는 가치관과 신념이 전혀 다른 두 이질적 집단은 상대방과 공존에 동의하지 않으며 울산 북구의 정치지형을 양분해 왔다. 하지만 2010년 초 조성된 대단위 아파트단지에 중산층의 대거 유입은 ‘진보-보수’ 양강 대결의 북구 정치지형에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노동계 세력이 2000년 1월 30일 민주노동당을 창당해 제도권 정치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이후 실시된 국회의원 결과들이 이를 방증한다.

1997년 7월 15일, 울산광역시 승격과 함께 울주군과 동구에 속해 있던 일부 읍·면이 분리돼 북구가 독립 선거구가 되면서 2000년 치러진 16대 총선에서 보수와 진보세력은 첫 승부를 겨룬다.

당시 선거에서 한나라당 소속 윤두환 후보가 민주노동당 최용규 후보에게 563표 앞선 1만9430표를 득표해 보수진영이 아슬아슬하게 승리했다.

당시 울산 민주노동당 주류 측이 승리를 자만해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 출신인 이상범 전 북구청장을 공천하지 않고 현대차 1차 협력업체인 세종공업 노조위원장 출신인 최용규 후보를 내세웠다 패배했다는 게 정설이다.

이 총선에 무소속 이상헌 후보가 새천년민주당으로 처음 출마해 4170표를 얻는 데 그쳤다.

보수세력과 진보세력 사이 치열한 경쟁 속에 ‘3 지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4년 뒤 치러진 2004년 17대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조승수 후보를 내세워 한나라당 윤두환 후보를 꺾고 원내 진출에 성공한다.

하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조승수 후보가 의원직을 잃으면서 치러진 2005년 4월 30일 재선거에서 한나라당 윤두환 후보가 민주노동당 정갑득 후보에게 1793표 차이로 승리, 북구에서 처음으로 재선 고지에 오른다.

이때도 현 더불어민주당 후신인 열린우리당 소속 박재택 후보의 득표는 2711표에 불과했다.

18대 총선에선 아이러니한 반전이 일어난다.

한나라당 윤두환 후보가 민주노동당 이영희 후보를 7514표라는 비교적 큰 표차로 승리해 3선의 중진 대열에 올랐다.

하지만 윤두환 당선자 역시 선거법 위반으로 중도 낙마하면서 실시된 2009년 재선거에서 당시 진보신당 소속의 조승수 후보가 당선된다. 이때 조승수 후보와 맞붙은 한나라당 후보가 박대동 현 국민의힘 후보다.

박대동 후보는 3년 뒤 치러진 제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 김창현 후보를 꺾고 처음 당선됐다. 당시 민주당은 북구에서 18대와 19대 총선에 후보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지지세가 미미했다.

제20대 총선에서는 진보세력과 민주당이 무소속 윤종오 후보로 단일화해 새누리당 윤두환 후보를 꺾는다. 하지만 무소속으로 당선된 윤종오 후보가 선거법 위반으로 중도에 하차하면서 민노당에 뿌리를 둔 진보세력은 퇴락의 길에 접어둔다.

'노동자·학생 운동권’ 중심의 진보세력이 밀려 나간 정치적 공간을 차지한 게 현 더불어민주당이다. 윤종오 후보의 중도하차 이후 2018년 6월 재·보궐선거에서 이상헌 후보가 당선되면서 울산 북구에서 민주당의 정치적 존재감을 처음 알렸다.

이때 이상헌 후보는 북구 농소 2·3동에 들어선 대단위 아파트 중산층 유권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보수와 진보로 나눠져 극심하게 대립하던 북구 유권자 지형이 변한 것이다.

이상헌 후보가 2000년 새천년민주당으로 첫 출마 이후 무려 18년 만이었다. 이상헌 후보는 21대 총선에서도 미래통합당 박대동 후보를 물리치고 재선 고지에 올랐다.

이후로 진보당은 총선과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울산 북구에서 거의 정치적 '세(勢)’를 상실해 갔다.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북구 가·나·다 2인 선거구에서 당시 새누리당 후보와 나란히 당선됐던 진보당은 2018년 제7회 선거에서 전원 낙선했다.

2022년 8회 지방선거에서 진보당은 북구 가(2인)·나(3인)·다(3인) 선거구에 단 2명의 후보를 내, 1명을 당선시켰다. 3위로 당선된 진보당 후보는 4위인 국민의힘 후보와 145표 차이였다.

나머지는 의석수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반분했다.

진보당 윤종오 후보는 이번 총선에서 진보세력 재건의 깃발을 든 셈이다. 이번 총선에서 진보당 후보로 승리하지 못하면 진보세력의 정치적 재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상헌이란 거목의 그늘이 사라졌을 때 북구의 민주당 정치세력의 앞날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사실상 지도력 공백 상태에 빠진다. 북구 의원 5명 전원이 이상헌 후보를 지지하며 탈당한 이유다.

이상헌 후보의 탈당을 지켜본 민주당 관계자는 "10년 넘게 가꾼 민주당 북구 텃밭이 송두리째 날아가게 됐다"고 했다. 이상헌 후보는 무소속이라도 총선에 나서서 10년 넘게 가꾼 민주당 텃밭을 지켜야 하는 이런 절박함이 있다.

박대동 후보의 절박감도 다르지 않다. 12년 전 단 한 번 국회의원 당선의 영광 이후 최근 잇따라 두 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상헌 후보에게 쓴 잔만 마셨다.

그동안 세월만 쌓여 70대를 훌쩍 넘었다. 이번이 아니면 두 번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또한 이번 총선에서 패배하면 10년 넘게 보수 세력이 지지하는 국회의원이 나오지 못한다는 고민도 남다르지 않을 것이다.

ㅐㄱ@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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