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주 "복수의결권은 창업자 재신임…글로벌 VC도 한국으로"
글로벌화 단초는 로컬…강릉 '보헤미안' 같은 글로컬기업 나와야
(서울=뉴스1) 강은성 김형준 유승관 기자 = ■ 대담=강은성 성장산업부장, 정리=김형준 기자
"벤처투자가 많이 위축됐다지만 지표상으로는 좋아지고 있어요. 다만 투자 자원이 더 다변화될 필요가 있죠. 임기 중에는 글로벌 벤처캐피탈(VC)들과 국내 스타트업을 적극 연결할 생각입니다."
지난해 국내 벤처투자액은 약 11조 원이다. 유동성 확대로 투자가 이례적으로 활성화됐던 코로나19 시기 이전보다 늘어난 수치다. 하지만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딥테크 분야에 투자가 몰리며 초기 스타트업들은 여전히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다.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집무실에서 만난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글로벌 VC들을 국내 기업들과 적극 연계해 투자 다변화를 이뤄내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글로벌 자금도 우리 벤처에 투자할 수 있도록 마중물"
중기부는 올해 모태펀드 출자액 9100억 원 전액을 1분기에 출자한다. 특히 스타트업의 해외투자 유치를 지원하는 '글로벌펀드'에 역대 최대 규모인 1500억 원을 공급해 1조 원 이상의 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오 장관이 내내 강조한 것은 '시장의 자율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정부가 꼭 나서야 하는 부분에 '마중물'을 부어줘야 한다는 대목이었다. 펀드를 조성한다고 해서 마치 '헬리콥터 머니'처럼 중소 벤처기업에 돈을 살포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국가 정책은 시장에 대한 '개입'이 아닌 중소기업의 역량이 닿지 않거나 혹은 수요와 공급의 '매칭'이 쉽지 않은 부분에 대한 '연계'를 해 줄 때 빛이 나고 우리 기업의 '자생력'도 살아난다는 정책 철학을 갖고 있었다.
오 장관은 "글로벌펀드를 늘리는 것은 글로벌 VC들과 (국내 스타트업이) 연결되면서 그들이 우리 기업들을 볼 수 있도록 만드는 취지"라며 "좋은 기업이 있으면 글로벌 VC들이 자체적으로 투자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는 마중물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인 VC들도 주목하고 있다. 오 장관은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이나 K-스타트업센터를 통해 한인 VC들이 한국 스타트업에 관심을 갖도록 매치 메이킹을 올해 많이 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복수의결권, 너무 유연해선 안 돼…창업자 재신임으로 시장 신뢰 높아져"
지난 2021년 미국 나스닥 시장에 국내 기업 쿠팡이 직상장했다. 상장 첫날 시가총액은 우리돈 100조원 규모로 치솟았다.
쿠팡의 성공적인 상장에 야놀자, 컬리 등 쟁쟁한 스타트업 유니콘(기업가지 1조원 이상의 스타트업)들이 나스닥 상장을 줄줄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자본시장보다 압도적으로 큰 규모의 미국 주식시장에 매료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쿠팡의 김범석 의장에게 부여된 '클래스B' 주식의 차등의결권이 국내 스타트업 경영자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김 의장이 보유한 클래스B 주식의 의결권은 보통주(일반주) 성격인 클래스A 주식보다 29배 많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슈퍼 주식'이다.
그동안 국내에선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기술로 창업을 하고 유니콘으로 키워내는 과정에서 투자라운드를 반복할 수록 창업자의 지분은 지속적으로 잠식당하고 결국 경영권마저 위협당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이들 창업자들에겐 나스닥 상장으로 '슈퍼 의결권'을 갖게 된 김범석 의장이 마치 '롤모델'처럼 여겨졌을 터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혁신가의 경영권을 보호할 수 있는 '복수의결권' 제도가 마련됐다. 지난해 11월, 유예기간을 거쳐 본격 시행됐고 제도 도입 96일만에 복수의결권을 발행한 첫 기업 '콜로세움'이 탄생했다.
오 장관은 복수의결권 제도가 혁신가의 경영권을 보호하면서 시장의 신뢰를 높이는 또 다른 방안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주주와 창업가 사이에 신뢰가 있을 때, '한 배'를 탔다고 서로 동의할 때 복수의결권 발행이 가능한 것"이라면서 "결국 복수의결권을 발행한다는 것은 주주들이 창업주를 재신임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창업주의 지적자산이 가장 중요한 벤처업계에서 창업주와 기업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주주들의 신뢰가 기반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오 장관은 복수의결권 제도가 도입됐다고 해서 치적용이나 부처 성과용으로 해당 기업을 애써 늘리려는 의지는 없어보였다. 오히려 복수의결권이 혹시 낳을 '부작용'을 경계하며 자본시장의 충분한 신뢰를 얻을수 있도록 정부가 옆에서 돕겠다는 각오다.
오 장관은 "(제도가) 악용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지나치게) 유연하게 해서도 안 된다"며 "창업자 보호도 중요하지만 주주와 투자자의 이익도 함께 보호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기에 창업자와 주주와 이해관계자가 충분히 신뢰관계를 갖고 신중하게 복수의결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헤미안' 같은 글로컬 소상공인…글로벌화 단초는 '로컬'
오 장관은 1988년 외무고시 합격 후 36년을 외교관으로 살아온 '외교통'이다. 장관 후보자 시절부터 중소기업·소상공인의 '글로벌화'를 외쳐온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오 장관은 오히려 글로벌화의 단초는 바로 '로컬'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 시장에 나가기 위해선 로컬 역량이 먼저 돼야 한다"며 "내수시장에서 통한 우리 물품과 서비스는 당연히 글로벌로 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 장관은 강릉의 기업가형 소상공인 카페 '보헤미안'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보헤미안은 도시와 해외에 지점을 내는 형태가 아니라 여전히 앵커로 강릉에 남아 그곳으로 사람들이 오도록 만들었다"며 "이처럼 내 지역에 글로벌한 시각과 요소를 넣고 우리 삶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 글로벌화다. 그것이 곧 '글로컬'"이라고 전했다.
글로벌화만큼이나 고금리 등으로 금융부담이 극에 달한 소상공인들을 지원하는 것도 오 장관의 큰 숙제다. 이에 중기부는 금융위원회, 민간과 함께 소상공인 금융비용 지원에 나서고 있다.
오 장관은 "(금융 지원은) 이자 때문에 힘들어하는 소상공인들에게 가장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정책이 아닐까 싶다"면서도 "다만 한계기업까지 연명하는 수단이 돼선 안 된다. 한계기업은 채무조정을 하고 새출발 기금 등으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영주 장관 프로필 △1964년생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교 대학원 국제관계학 석사 △외무고시 22회 △외교부 2차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ju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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