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미국의 오판이 가져온 파국 [PADO]

김동규 PADO 편집장 2024. 3. 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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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미국 뉴욕과 워싱턴에 대한 테러공격이 이뤄진 9/11은 전 세계 정세를 180도 바꿨습니다. 테러리스트들이 납치한 여객기가 뉴욕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부딪히던 그 순간 이후, 미국인들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공포에 휩싸였고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부시 행정부는 뉴욕과 워싱턴을 지켜내지 못한 죄책감에 미국 국민의 복수심을 해소해줄 희생양을 찾고 있었습니다. 9/11을 주도한 알카에다가 거점으로 삼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는 것은 당연해보였는데, 중동의 군사강국 이라크도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고 미래에 또 다른 9/11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명분으로 침공했습니다. 이렇게 이라크전쟁이 발발했고 미국은 20년간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이라크전쟁은 명분이 있는 전쟁도 이길 수 있는 전쟁도 아니었습니다. 사담 후세인은 대량살상무기 대부분을 이미 폐기한 상태였습니다. 이라크전쟁으로 미국은 명분과 힘 모두 훼손했고 세계질서는 미국 일극체제의 조종(弔鐘)을 울렸습니다. 포린어페어스 3/4월호에 실린 이 기사는 퓰리처상을 2회 수상한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언론대학원 교수인 유명 저널리스트 스티브 콜(Steve Coll)의 신간 '아킬레스의 덫'에 대한 서평입니다. 아프가니스탄과 빈라덴의 알카에다가 어떻게 연결됐는지를 밝힌 '유령전쟁'(Ghost War)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자는 이번에는 이라크전쟁을 조명했습니다. 베트남전쟁과 함께 미국을 또 한번의 수렁에 빠뜨렸던 이라크전쟁. 기사를 읽으면서 국제정치의 냉혹함, 외교의 역할, 그리고 세계질서의 리더 미국의 역할과 한계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기사 전문은 PADO 웹사이트(pad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때때로 외교정책은 기술적 요소에 좌우된다. 바람으로 항해하던 시절, 범선을 만들 수 있는 목재는 귀중한 천연자원이었다. 증기 동력의 등장으로 광산과 탄광은 국가의 중요한 전략적 자산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동력이 증기에서 석유로 전환되면서 석유 매장지는 너무나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중동의 풍부한 석유는 1908년에 처음 발견됐고, 곧 이곳은 세계경제의 핵심지역이 됐다. 처음에는 당시 최대 식민지배국이었던 영국이 이 지역의 질서를 유지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 동안 미국이 질서유지를 맡았다. 1970년대 미국은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에 의존해 글로벌 석유공급을 유지하면서 지역 안보를 현지 파트너에 맡기려고 했다. 그러나 1979년 이란혁명으로 이란이 우방에서 적으로 돌아선 후, 미국은 이라크와 이란이 잔혹한 전쟁을 치르는 동안 두 나라 중 어느 한 나라가 걸프만을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양쪽 모두에 군사지원을 해가며 힘의 균형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점령하고 사우디를 위협하면서 이 힘의 균형은 무너졌다.

이때 조지 H. W.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의 침략을 물리치고 쿠웨이트의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국제 연합군을 이끌며 직접 사태 관리에 나섰다. 그러나 이라크의 지도자 사담 후세인은 전쟁에서 살아남아 이라크 대부분을 다시 장악했다. 미 행정부는 제재와 봉쇄 정책으로 돌아섰고, 그 후임자들은 10년 동안 이를 지속했다.

그러던 중 9/11 테러가 발생했다. 그 후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테러 문제뿐만 아니라 이라크 문제도 해결하기로 결정하고, 이라크를 정복한 후 사담 후세인 정권을 힘으로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이라크 공격은 대체로 계획대로 진행됐지만 그 결과는 혼란스러웠다. 해방은 점령이 됐고, 지역 불안은 반란으로, 그리고 내전이 돼버렸다. 미군은 결국 이라크에 머물며 거의 20년 동안 여러 적들과 싸워야만 했다.

사실 이라크 전쟁은 너무도 비참하고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 실수였기 때문에, 돌이켜 보면 이 전쟁이 냉전 이후 미국의 패권에 대한 세상의 관점이 '성공적이다'에서 '의심스럽다'로, 그리고 환영에서 저항으로 바뀌는 전환점이었던 것 같다. 20년이 지난 지금, 더 나은 중동에 대한 꿈, 적극적인 국제적 개입에 대한 미국의 열망을 보여주던 미국 일극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남은 것은 어떻게 그런 엄청난 자멸적 실패가 애초에 일어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전쟁 전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자, 많은 사람들은 9/11에 대한 복수심, 이데올로기적 열망, 이라크 자원을 차지하려는 욕망 등 다른 의도가 미국의 침공을 이끌었다고 믿게 됐다. 최근의 역사학은 이러한 이론들을 반박하면서 부시 행정부 관리들이 실제로 대이라크 봉쇄가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 이후에 이라크가 무슨 짓을 할지 정말로 두려워했음을 보여줬다. 미 행정부 관리들은 진실을 몰랐고 아무도 진실을 믿지 않으려 했다. 진실은 이랬다. 사담 후세인 정권은 1990년대 초에 거의 모든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을 폐기했지만, 폐기후 10년이 지난 시점까지도 상당수의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있다는 징후를 내비쳤고 그것이 후세인 정권을 파멸로 몰아넣었다.

저널리스트인 스티브 콜은 사담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과 이를 종식시키려는 미국의 시도를 서술한 '아킬레스의 덫'에서 이 기묘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로 이라크에서 확보한 기록과 전직 관리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은 명확하고 가독성이 뛰어나며 세심하게 역사의 현장인 바그다드에서 바라본 시각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단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록할 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1991년의 걸프전 이후 사담 후세인의 행동은 위험할 정도로 공격적이고 비이성적이었다. 또, 9/11 테러 이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미국의 새 행정부(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이 심리적 트라우마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리고 2003년, 미국과 이라크의 상호 오해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중국의 군사이론가 손자(孫子)는 전략가들에게 "적을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이라크 전쟁은 양측이 서로를 모를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준다.

(계속)

PADO 웹사이트(https://www.pado.kr)에서 해당 기사의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국제시사·문예 매거진 PADO는 통찰과 깊이가 담긴 롱리드(long read) 스토리와 문예 작품으로 우리 사회의 창조적 기풍을 자극하고, 급변하는 세상의 조망을 돕는 작은 선물이 되고자 합니다.

김동규 PADO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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