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그려내는 '코로나 시대의 사랑' [PADO]
망각의 동물답게, 우리는 2020년 초부터 근 3년간 우리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던 코로나 시절의 기억을 빠르게 잊어가고 있다. 환자에게 일련번호를 부여해서 동선을 세밀하게 추적하고,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가족관계증명서를 들고서 약국 앞에 줄을 서고, QR 코드를 찍으면서 공공장소를 출입하고, 백신을 접종해야 할지 말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온라인 화상회의와 재택근무에 익숙해지고, 자가진단키트와 PCR 검사를 받던 경험들. 하나하나가 한없이 생소하고 대책 없이 불안했지만, 그 과정들을 모두 감내했던 우리는 이제 언제 그랬냐는 듯 무심하게 일상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학의 큰 힘 중 하나는 과거의 기억을 들춰내어 이런 집단적인 망각의 과정을 최대한 늦춰 주는 것이다. 2023년 전미도서상(National Book Award) 시 부문 수상자인 크레이그 샌토스 페레즈(Craig Santos Perez)가 2022년에 코로나 대유행 시기의 사랑을 그려낸 시에서는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연상시키는 참신한 비유들이 살아 숨 쉰다. 이 시의 제목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연상시키며, 죽음의 공포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사랑이 어떻게 여전한 삶의 원리로 작동하는지를 탐색한다는 면에서도 두 작품은 장르의 차이를 뛰어넘어 어느 정도의 친연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마치 그대가 페니실린, 인슐린, 아니면
암을 치료하는 화학요법 약물인 것처럼 그대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나는 마치 시한부가 되어 진단과 죽음 사이에 놓인
아주 위중한 환자를 사랑하듯 그대를 사랑한다.
나는 마치 실험실 안에 얼어 있는 채
우리의 항체를 자극할 준비가 된 새로운 백신을 사랑하듯 그대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대 사랑 덕분에, 질병에서 나를 보호하는
면역은 나의 세포들 안에서 강력하게 반응할 것이다.
나는 이 전염병의 대유행이 어떻게 혹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채로
그대를 사랑한다. 나는 그대를 조심스럽게 사랑한다, 두 겹의 마스크를 쓰고.
나는 그대를 이런 식으로 사랑한다, 우리가 사회적 거리 두기의
이렇게나 밀착되어, 그대 바이러스의 양은 나와 똑같고,
이렇게나 밀착되어, 나의 기침과 함께 그대의 그래프도 상승한다.
이 시의 부제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페레즈의 소네트는 파블로 네루다의 17번 소네트를 변형한 패러디 형식의 시이다. 페레즈는 2020년에도 '기후 변화 시기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네루다의 같은 소네트를 변형해서 발표한 적이 있다. '코비드-19 시기의 사랑'에서도 페레즈는 네루다의 원작과 거의 동일한 구조의 문장들을 사용하지만, 네루다가 비유에서 주로 사용했던 꽃과 식물들 대신에 의학 용어들을 나열하여 일종의 '낯설게 하기'를 시도한다. 자연물들과 사랑을 아름답게 엮어서 표현하는 네루다의 소네트에 비해, 페레즈의 소네트에 등장하는 비유들은 당황스럽고 기발하며 그래서 다소 도발적이다.
예컨대, 네루다의 시에서 첫 대목은 사랑을 꽃의 외형적인 아름다움에 연결하는 대신 영적이고 정신적인 차원의 사랑을 지향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페레즈는 이 부분을 언뜻 보기에 엉뚱한 방식으로 다시 쓴다. 페레즈의 새로운 소네트에서 코로나 시기의 사랑은 "인슐린"이나 "페니실린", 그리고 화학적 항암제와 같은 기존의 의학적 치료법이 전혀 유효하지 않은 위기 상황에서 시작된다.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는 상황에서 사랑은 너무나 무력하며 불안정해 보인다. 하지만, 시인은 곧바로 "시한부" 환자의 비유를 끌어들여 이런 경험 속에서 사랑이 얼마나 절실해질 수 있는지를 표현한다. 언제라도 이 낯선 바이러스가 삶을 파괴하고 심지어 끝내버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낄 때, 사랑하는 이를 향한 감정은 한없이 고조돼 절절한 안타까움을 증폭시킨다.
하지만 이런 위태로운 분위기는 다행스럽게도 곧바로 반전을 맞이하게 된다. 이 시의 두 번째 연에서 네루다의 소네트를 아름답게 떠받쳐 주던 "빛"과 "향기"를 대신해 사랑을 유지할 수 있는 희망의 상징으로 도입되는 것은 "백신"과 "항체", 그리고 "면역"이다. 위협적인 바이러스에 대항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간절히 기대하던 그 시절의 초입에, 백신은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한 줄기 빛처럼 보였다. 시인에게 사랑이란 바로 그런 힘을 지닌다. "인슐린"이나 "페니실린", 화학적 항암제 등이 아무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사랑은 놓치지 말아야 할 희망이며 구원인 것이다. 마치 "백신"이 우리의 "항체"를 자극하고 끝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을 끌어올리듯이, 사랑은 불안과 공포를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에너지를 가져다준다.
그래서 시인은 앞날을 분간할 수 없는 그 시절에도 여전히 사랑하기를 선택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칸막이를 넘어 최대한 "조심스럽게", 서로를 보호할 수 있는 "두 겹의 마스크"를 착용하고라도 만남과 접촉은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서 바이러스의 균등한 배분으로 이어진다. 원작인 네루다의 소네트에서 밀착된 두 사람의 관계는 "나의 가슴 위에 놓인 그대의 손"이나 "나의 꿈과 함께 그대가 눈을 감는다"와 같은 구절을 통해 지극히 낭만적으로 묘사된다. 이에 비해, 페레즈의 시는 두 사람이 사랑을 통해 바이러스를 나누어 가지게 된다는 매우 재치 있으면서도 현실적인 결말을 제시하며 끝난다. '코로나 시대의 사랑'은 서로의 바이러스를 교환하여 양적으로 같은 수준에 도달하는 접촉과 교류로 규정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이 시가 알려 주는 진실은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기의 사랑이 "기침"을 공유하고 서로의 몸 속에서 바이러스 양의 그래프를 동반 상승시킨다는 다소 황당한 결론을 향해 가는 것일까? 물론, 패러디의 특성을 가진 시를 읽으면서 이런 결론을 그저 흥미롭고 재기발랄한 시상의 전개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의 마지막 행에서 "그대의 그래프"라는 표현으로 모호하게 남겨진 것을 궁극적으로 무엇의 그래프라고 해석하는지에 따라, 이 시는 좀 더 묵직한 의미를 전달해 주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지난 3년 동안 코로나라는 새로운 전염성 질환과 맞서는 과정에서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듯이, 누군가와의 접촉을 통해 몸 안으로 들어온 바이러스는 질병의 신체적 증상을 촉발할 수도 있지만 그 반대로 질병에 대한 항체를 만들어 내서 면역을 강화시킬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사랑은 분명 바이러스를 전파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결국 사랑은 우리 안에서 면역력의 상승 곡선이 만들어질 수 있게 한다. 이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의 "기침"과 함께 그대 안에서 상승하는 그래프는 바이러스 양의 그래프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바이러스를 이겨낼 수 있는 "면역"의 그래프인 셈이다.
사실 지금 3년의 어려운 시간을 딛고 거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가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에서 비롯된 바이러스의 공유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게 되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페레즈가 말하는 사랑이란 어쩌면 연인들 사이의 육체적, 감정적 교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우리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망 전체를 가리키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보게 된다. 코로나 기간에 깨닫게 된 중요한 진실 중 하나는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는 물론이고 평소에 소통하지 않고 지냈던 이웃이나 대중교통에서 마주치는 이름 모를 사람들의 건강과 안녕이 실질적으로 우리의 삶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었다. 더 나아가서, 세계 어느 곳에서 변이된 바이러스로 인해 누군가가 한번 시작한 "기침"이 많은 연결고리를 돌고 돌아 나의 평온한 일상을 위협할 수도 있고 또 그 반대로 회복시킬 수도 있다는 깨우침 또한 지난 3년간의 기억이 가져다준 교훈이다. 이렇게 폭넓게 정의된 방식으로 '코로나 시대의 사랑'을 다시 회고할 때, 페레즈의 소네트는 촘촘하게 얽힌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존재 양식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하며 나아가서 그 관계들의 위태로움, 그리고 소중함을 동시에 수긍하게 해 준다.
조희정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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