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흔든 ‘사과’, 금리도 묶나···인플레 영향 역대 최대[송종호의 쏙쏙통계 ]
지난달 사과 71%·귤 78% 폭등
석유류도 2.5% 올라 상승 견인
정부 할인지원에 600억 추가투입
새해 첫 달 2%대로 안정세를 찾을 것으로 보였던 소비자물가 상승 폭이 한 달 만에 다시 3%대로 올라섰습니다. 금(金)사과· 금(金)귤이라며 치솟는 과일값을 걱정했는데 역시나 과일(과실)품목의 물가상승 기여도가 0.57%포인트나 됐습니다. 즉 지난달 물가상승률 3.1%(전년 동기 대비) 중 5분의 1가량이 과일값 상승 때문이라는 얘기입니다.
보통 품목별 기여도가 0.1%포인트 수준이라는 점에서 과일값이 물가를 흔드는 주된 요인이었습니다. 상승폭이 큰 과일을 보면 귤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78.2%, 사과와 배도 각각 71%, 61.1% 씩 올랐습니다. 문제는 사과의 경우 검역 문제로 수입을 할 수도 없어 올해 가을 사과 수확기까지 안정세를 찾을 수 있을지가 미지수라는 겁니다.
물가를 2%대로 안정시키려던 정부로서도 난감한 형편입니다. 물가가 안정돼야 금리를 낮추고 경기둔화에 적극 대응할 길이 열리는데 현재와 같은 상황이라면 금리인하 시기가 기존보다 늦춰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겁니다. 사과로 인해 흔들린 물가가 금리까지 묶어두는 현상이 고착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통계청이 지난 6일 발표한 2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 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3.77(2020=100)로 1년 전보다 3.1% 올랐습니다. 지난해 8∼12월 3%를 웃돌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월(2.8%) 2%대로 떨어졌지만, 한 달 만에 3%대로 올라섰습니다. 농산물 물가가 20.9% 올라 전체 물가를 0.80%포인트 끌어올렸고 국제유가 상승 영향으로 석유류 물가 하락 폭도 전월(-5.0%)보다 축소된 1.5%에 그쳤습니다.
전체 물가 기여도도 1월 -0.21%포인트에서 -0.06%포인트로 줄면서 상대적으로 물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물가 상승을 이끈 건 신선식품이었습니다. 해당 지수는 신선과실이 41.2% 오른 영향으로 20.0% 상승했습니다. 신선과일은 1991년 9월 43.9% 오른 뒤로 32년 5개월 만에 상승 폭이 가장 크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이상기후로 작황이 좋지 않아 공급이 감소한 여파로 오른 사과값은 지난해 가을 이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봄철 이상 저온으로 화분이 다쳐 착과수가 줄었고, 여름철 집중 호우와 수확기 직전 고온으로 탄저병 발생하는 등 악재까지 겹쳤습니다. 최근 상승세에 더해 지난해 작황이 좋아 과일값이 낮았던 점에 대한 기저효과도 있다는 게 통계청 설명이었습니다.
여기에 작년에는 설 연휴가 1월이어서 설이 지난 2월 과일 가격이 안정된 반면, 올해는 명절이 2월 중순이어서 선물 및 제수용품 수요가 증가한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통계청 관계자는 “품목 기여도는 매년 가중치 비중이 달라지기 때문에 시계열로 비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과일 기여도가 역대급으로 크게 치솟은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과일이 인플레이션에 역대 최대 영향을 미친 겁니다.
정부도 급해졌습니다. 물가동향 발표 하루 만인 7일에는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긴급 기자 간담회를 열였습니다. 두 달간 약 430억 원을 들여 납품단가 인하와 할인 지원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장기적으로는 기후변화에 대응해 과수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송 장관은 “농식품부는 최근 물가 상황을 엄중히 인식하고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참외 등 대체 과일이 본격적으로 출하되기 전까지 과일·채소 중심으로 납품단가 인하와 할인 지원을 거듭하겠다”고 했습니다. 정부는 사과를 비롯해 전·평년 대비 30% 이상 가격이 높아진 모든 품목에 대해 정부 할인(20%)과 유통업계 자체 할인(20% 이상)을 적용할 방침입니다. 참외 등 대체 과일이 다음 달부터 시장에 풀리는 만큼 그전까지 가용할 수 있는 수단을 총동원해 '물가 방어'에 나서겠다는 의지인 셈입니다.
다만 사과 수입에 대해선 선을 그었습니다. 송 장관은 “수입을 위한 검역 절차는 평균적으로 8년 넘게 걸린다”며 “올해처럼 사과 가격이 치솟는 상황에서 단기적으로 취할 수 있는 대책은 아니다”고 일축했습니다. 다른 정부 고위관계자도 “일본산 사과 수입 논의는 검역절차 8단계중 5단계에 머물러 있는 지가 30년 가량 됐다”며 “쉽게 풀릴 일이 아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정부의 과일값 안정화 조치가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입니다. 정부는 조생종 사과가 7월부터 출하되면 사과 가격이 안정화를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현재 과일값 안정은 천수답식 대책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기상악화가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식인데 근본적 대책마련이 미흡할 경우 유가 상승까지 겹쳐 물가 불안을 재촉할 수 있다는 목소리입니다.
정부가 그동안 고물가대책으로 할인쿠폰을 지속적으로 발행한 것을 두고서도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공급난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수요만 유지시켜 물가 안정을 지연시켰다는 겁니다. 사실 가격을 낮추겠다는 취지였지만 공급을 늘리지 않고 소비 자극만 시킨셈입니다. 정부 고위 관계자도 달걀값 대란 시기를 언급하며 “해외에서 공수를 해와 공급을 늘리면 자연히 물가가 안정되는 방법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앞으로 물가 안정이 더딜 경우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물가가 오르면 성장률도 그만큼 떨어질 수 있어 서민 고통은 더 심화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펴낸 ‘최근 한국·미국·유로 지역의 디스인플레이션 흐름 평가’ 보고서에서 한국에 대해 “주요국과 달리 농산물 가격이 높은 수준을 지속해 물가 둔화 속도를 더디게 하고 있다. 물가 둔화 요인을 빠르게 해소하지 않으면 금리 인하 결정 시점이 시장의 기대보다 늦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비싼 사과를 못 사 먹지 못해서 문제가 아니라 ‘사과값 상승→물가상승→금리 인하 지연→경기 둔화→서민고통’ 도미노 현상에 대한 우려입니다. 정부는 2%대 물가 목표치를 달성하기까지 남은 마지막 구간, 이른바 ‘라스트 마일(last mile)’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쏙쏙통계’는 정부가 발표하는 통계의 ‘속’ 사정과 숫자 너머의 이야기를 ‘쏙쏙’ 알기 쉽게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세종=송종호 기자 joist1894@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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