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청소, 노예무역, 혼혈학대…콜럼버스 이후 백인이 빚은 '피의 역사'
1939년 제작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하인으로 출연한 흑인 여배우 해티 맥대니얼은 애틀랜타에서 열린 첫 시사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흑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녀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아카데미 수상식에서도 차별을 받아야만 했다. 수상식이 열린 호텔은 ‘백인전용’을 내세워 그녀의 출입을 거부했다. 다른 출연진과 떨어진 뒷자리에 자리를 마련해줘서 겨우 수상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해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 수상자였다. 그런 그녀는 죽어서도 차별을 받아야 했다. 헐리우드 공동묘지에 묻히기를 원했으나 마찬가지로 '백인전용'이라는 이유로 이마저도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언론인 김영호 작가가 쓴 <지구얼굴 바꾼 인종주의>(도서출판 뱃길 펴냄>는 콜럼버스 이후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백인이 벌인 인종청소, 노예무역, 혼혈학대, 종교탄압이 빚은 피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을 보면 15세기 이후 스페인에서는 종교재판이란 이름으로 이교도를 색출, 축출, 처형하는 광풍이 불어 수많은 유대인, 무슬림이 화형대, 교수대, 단두대에 세워졌다. 그러나 누구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신앙의 이름으로 단두대에 끌려가 머리가 잘려 나가고 화형대에서 연기로 사라졌는지 모른다.
그렇게 피를 뒤집어 쓴 스페인은 아메리카 정벌에 나서 원주민들을 살육, 도륙, 약탈하면서 제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스페인 말고도 영국, 네덜란드, 포르투갈, 프랑스도 원주민을 약탈하면서 제국의 대열에 섰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은 그곳에서 자신들의 문명을 활짝 꽃피웠지만 백인들은 이들 원주민에게 '야만인'이란 허울을 씌우고 피의 광란을 벌였다. 이들이 이런 짓을 벌인 이유는 원주민들이 사는 땅을 차지하기 위함이었다.
무력에서 밀린 원주민들은 땅마저 빼앗기고 하층민 신세로 전락했다. 더러 살아남았더라도 여자들은 겁탈당해 무수한 혼혈인이 태어났다. 그것도 모자라 스페인은 백인의 피 농도를 따져 차별하는 13단계의 신분제도를 만들어 원주민, 흑인, 혼혈인을 조직적으로 착취했다. 얼굴색 검을수록 더 많은 세금을 물렸고 백인은 면세의 특권을 누렸다.
문제는 그렇게 원주민으로부터 땅을 빼앗았지만 이를 가꿀 일손이 부족했다 땅을 강탈하면서 너무도 많은 원주민을 죽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기존 산림을 헐어내고 대농장으로 조성하다 보니 일손은 더욱 부족했다. 그러자 이들 백인이 선택한 방법은 아프리카 흑인들이었다. 이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와서 아메리카에서 노예로 부렸다.
당시 아프리카에서 역내거래를 포함하여 3000만 명이 납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아메리카로 끌려가는 길에 1/3은 굶거나 병들어 아니면 맞아 죽었다.
아메리카로 끌려간 흑인들의 고초도 고초지만 이들이 떠난 아프리카 대륙도 문제가 생길수 밖에 없었다. 과다한 인력유출로 발전역량을 상실한 채 원시시대로 되돌아갔다. 반면, 그들의 피와 땀이 아메리카, 아시아에서 일군 설탕, 커피, 목화, 담배, 향신료로 둔갑해 백인이 사는 서유럽에는 대호황을 가져왔다. 서유럽만의 황금시대였다.
김영호 작가는 "노예무역의 선봉장인 서유럽의 소국 포르투갈이 제국의 대열에 우뚝 일어섰지만 그들이 벌였던 선혈이 낭자한 죽음의 제전은 역사의 뒤안길에 가려져 있다"고 평가했다.
유럽 백인들의 만행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에만 그치지 않는다. 향신료를 찾아 동방으로 갔던 유럽 백인들은 인도 아대륙, 인도차이나 반도, 동남아시아를 200~400년 동안 차지하고 살육과 약탈의 향연을 벌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민족주의가 대두되면서 백인들이 고향에 돌아가서야 약탈은 끝이 났지만 이들의 피를 물려받은 혼혈인들은 온갖 천대와 박해를 감내해야 했다.
이처럼 이 책은 씨줄 날줄로 엮인 사건들을 다각도로 살펴보면서 오늘날 자유와 인권을 강조하는 서구 사회가 과거에 벌인 반인도주의·반문명적인 행위가 다른 대륙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김영호 작가는 "역사적으로 알려진 사실을 나름대로 다른 시각에서 모아 엮었다"고 이 책을 설명했다.
서구 백인들의 인종주의가 지난 600여 년간 ‘세계’를 어떻게 망가뜨렸는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허환주 기자(kakiru@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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