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전문가가 말하는 청정에너지 확대 비결은[에너지톡]
데이비드 쉽워스 교수 초청 토론
재생e 발전 비중 英 42% 韓 9%
20년만에 4배 이상 격차 벌여져
시장에 맡긴 英 정부 주도한 韓
전력시장 구조개편이 성패 갈라
영국도 2000년 전후까지만 해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3% 수준이었고, 전력은 대부분 석탄·가스를 태워 터빈을 돌리는 화력발전소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20여 년 새 국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의 격차는 42%대 9%로 벌어졌다.
20~30대 연구원 주도로 에너지 전환을 모색하는 단체 에너지전환포럼은 지난 6일 주한영국대사관과 함께 그 비결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데이비드 쉽워스(David Shipworth) 영국 런던대(UCL) 에너지·건축환경 교수를 초빙해 이야기를 들었다. 한-영 청정에너지 고위급 대화 참석차 한국을 찾은 제레미 폭링턴(Jeremy Pocklington) 영국 에너지안보·탄소중립부 차관도 참여해 의견을 교환했다.
3시간여에 걸쳐 나눈 양국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하나로 귀결됐다. 한국과 영국의 차이를 만든 가장 큰 요인은 영국은 전력 시장의 구조 개편에 성공해 시장 체제를 도입하고,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 나라 모두 처음엔 전력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했다. 우리 삶의 필수 에너지원이란 중요성을 고려한 것이다. 정부가 공기업을 만들어 전기를 만들었다(발전). 또 가정과 기업에 공급(송·배전)했다. 정부가 요금을 정해 사용량 만큼 부과(판매)했다. 그러나 영국은 1990년대부터 점진적으로 시장 체제를 도입했다. 발전사끼리 경쟁하고, 송·배전 부문도 일부 경쟁 체제가 도입됐다. 각각의 판매 사업자가 나름의 요금을 받기 시작했다. 2000년엔 정부로부터 독립된 전기·가스 규제기관인 Ofgem을 설립하며 정부는 그 통제권도 시장에 넘겼다. 정부는 이후 청정에너지와 신사업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는 데 집중했다.
쉽워스 교수는 “당시 영국 정부는 시장에 경쟁이 도입되면 가격 하락을 비롯한 편익이 있으리란 자유시장에 대한 확신 아래 이를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2000년대부터 본격화한 전 세계적 탄소중립 움직임과 맞물려 전력 부문의 탈(脫)탄소를 촉발했다. 영국은 2008년 세계 최초로 기후변화법을 제정하고 2019년 2050년까지 탄소중립(온실가스 순배출량 0)을 선언하는 등 탄소 감축 노력을 펼쳤다. 자유화한 전력 시장은 이를 빠르게 받아들였다.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도입되는 등 탄소규제가 강화하며 석탄화력발전은 경쟁력을 잃었다. 전력 사업자는 자연스레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시야를 돌렸다. 현재 영국에선 해상풍력 발전이 원가(균등화발전원가·LCOE) 측면에서도 가장 저렴한 발전원이다. 사업자들은 친환경 때문이 아니라 돈 때문에 이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쉽워스 교수는 “현재는 조금 달라졌으나 당시 영국은 탈탄소 부문에서 선도적 입지를 지키면 큰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의지 아래 진보·보수당 모두 이를 지지했고 운 좋게도 북해의 풍부한 해상풍력발전 자원이 대량으로 개발돼 이를 뒷받침했다”고 부연했다.
우리도 그 나름대로 탄소중립 달성과 재생에너지 확대에 공을 들였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을 시작으로 박근혜·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역대 정부가 20년 가까이 재생에너지 확대에 공들였다. 그러나 관 주도의 경직된 노력은 효율이 떨어졌고, 부작용도 뒤따랐다. 원가와 무관한 정부의 요금 통제 아래 석탄발전 전력은 여전히 재생에너지 발전 전력보다 훨씬 저렴한 전력원이다. 문재인 정부의 전력계통(송·배전망)을 고려치 않은 무조건적인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확대 정책은 전력계통 혼잡 위기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그 사이 기업은 재생에너지 발전 전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탄소무역장벽이 높아지며, 우리 기업은 웃돈을 주고서라도 재생에너지 발전 전력을 사려는데, 그 절대적 양이 부족하다. 미국은 정부 통제 아래 있는 전기요금을 사실상의 ‘정부 보조금’이라며 한국 철강기업에 상계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쉽워스 교수는 “한국도 (에너지 전환에 속도를 내려면) 전력계통 등 전 부문에서 혁신이 일어날 수 있어야 하는데 구조적 어려움이 있는 듯하다”며 “한국이 현 단일 구조를 유지하는 게 잘 이해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론 ‘영국식 제도 무조건 좋다’고 말하기 어려운 딜레마도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촉발한 글로벌 에너지 위기 땐 정부 독점적 구조가 국민·기업에 ‘방파제’ 역할도 했다. 공기업 한전과 한국가스공사가 5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빚을 진 결과이기는 하지만, 영국을 비롯한 유럽 주요국 전기요금이 2~3배씩 널뛰는 동안 우리나라는 ‘불과’ 40% 수준의 요금 인상만으로 전기·가스를 안정 공급 체계를 유지했다.
에너지 위기가 아니더라도 정부 통제 아래 있는 한국의 에너지 요금은 상대적으로 낮다. 국제 비교 가능한 한국과 영국의 평균 전기요금은 한국이 1킬로와트시(㎾h)당 124원(현재는 약 150㎾h)인 반면 영국이 319원이다. 약 2.5배 차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한 젊은 청중이 쉽워스 교수에게 이 같은 현실적 딜레마를 물었다.
쉽워스 교수도 일부 수긍했다. “에너지 가격이 ‘사회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더 광범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는 다만 “탄소 배출에 부과되는 비용, ‘탄소세’나 ‘탄소 무역장벽’은 계속 커지고 있다”며 “한국 수출기업의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결국 모든 구성원이 탈탄소 비용을 형평성 있게 부담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김형욱 (ner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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