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작’ 양경원, '분량 많은 조연'이 된 비결은 무엇일까?[인터뷰]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배우 양경원(42)이 어느 순간 잘 보였다. 최근 종영한 tvN 토일드라마 ‘세작, 매혹된 자들’에서도 핵심 빌런으로 끝까지 기세를 펼치며 시청자에게 존재를 각인시켰다.
양경원은 이미 '사랑의 불시착'(2019~2020)에서 함경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허세를 부리는 코믹한 북한병사 표치수 역으로 대중들이 알아보는 배우가 됐다. 이어 '빈센조' '빅마우스'를 거쳐, '웰컴투 삼달리'에서는 재벌 2세로 심성은 착하고 인간적인 전대영 역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세작, 매혹된 자들’에서 양경원은 아첨과 배신을 일삼는 역대급 소인배 간신 캐릭터 유현보를 맡았다.
"유현보 역할을 도전해보고 싶었다. 다른 캐릭터들은 악역이라 할만한 게 없고 각자의 소신에 따라 서로 달라졌을 뿐이지 충신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반면, 유현보는 그런 것 없이 본인의 안위에 따라 박쥐처럼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한다. 목표는 있었겠지만, 자기중심적이다. 사람을 대할 때도 목적지향적이다. 얻을 게 있는 사람과 없는 경우가 달라진다."
이렇게 유현보 캐릭터 특성을 파악한 양경원은 악랄한 눈빛과 비열한 목소리 톤으로 캐릭터의 특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매회 극의 위기를 조성하며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대척점에 서 있는 조정석과 신세경뿐만 아니라 같은 편조차도 의심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하는 ‘역대급 간신배’ 연기로 대체 불가능한 캐릭터 소화력을 입증했다.
그는 처음에는 김명하(이신영)의 아버지인 병조판서 김종배(조성하)의 수하였다가 김종배가 죽자 왕 이인(조정석)의 외삼촌인 영부사 박종환(이규회)에게 붙는 이중성을 보여주었다.
"유현보는 강약약강 캐릭터다. 나는 강중약중인 것 같다. 유현보는 솔직하게 말해 밉게 봐주었으면 좋겠다. 밉게 보이게만 접근하면 매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강한 자에게 더 굽신거리고, 약한 자에게 함부로 하는 목적지향적 인간이 됐다. 그런 시대나, 그런 상황에 놓여진다면 이해가 될 수 있다. '세작'이 역사에 충실한 드라마도 아니고, 판타지도 아니고, 극적 장치들을 상황마다 심어놨다. 그런 시대에 내가 살아간다면 나의 목숨과 안위를 위해 그렇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는 못하겠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내가 살기 위해 희생시킨다는 건 못할 짓이다."
양경원의 드라마 연기 행보를 보면 '분량이 많은 조연'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비중있는 조연 배역을 꿰차는 데에는 무슨 비결이 있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매체 연기에 오기 전에 연극과 뮤지컬에 자주 출연해 캐릭터의 다양한 감정을 오롯이 대사로 전달하는 연기의 기본을 충분히 다진 덕분인 것 같다.
"기자님이 조연이면서 분량이 많다고 하시는데, 이번에는 물리적인 양으로 볼때 그렇게 많은 역할은 아니다. 저에게 좋은 역할을 주신 듯하다. 작품과 사람 복이 많았다. 그게 가장 큰 이유인듯 하다.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과 작품을 만나고싶다. 다행히 행복하게 달려왔다. 계속 어떻게 갈 수 있지?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불려지고, 쓰여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가지고 있는 밑천으로 했지만 이제 나 자신을 좀 더 다듬고 점검하고,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준비하고 고민하자, 그런 생각을 했다."
배우는 한번 연기를 잘하면 그 캐릭터와 비슷한 배역 제의가 잇따른다. 정해인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성공하자 '봄밤' '유열의 음악앨범'(영화) 등 비슷한 배역이 계속 들어왔다. 배우들은 항상 이런 딜레마에 빠진다. 한가지 고정된 이미지로 계속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해인은 'D.P'로 연하남 로맨틱 가이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했다.
양경원에게도 마찬가지다. '사랑의 불시착'의 표치수 캐릭터는 성공의 계기이자 캐릭터 관리에 위기 신호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양경원은 "제작진도 검증돼 있는 사람을 쓰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도 표치수와 비슷한 역할을 계속 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두려웠다"면서 "한편으로는 같은 역할 제의에 선뜻 나서지 못하기도 했다. 내가 겪은 캐릭터의 결과 비슷한 게 오더라도, 좀 더 성숙한 양경원으로서 해볼 수 있겠다는, 걱정 보다는 설렘으로 임하고 있다"고 답했다.
양경원은 "그럼에도 유현보 같은 역할을 해본 적이 없어 쉽게 수락했다. 유현보는 만나는 사람마다 다르게 대할 수 있다는 캐릭터로서의 매력이 있다. 이런 걸 고민하며 촬영할 수 있었다. 조남국 PD와 함께 하고싶은 것도 수락의 이유다. 조남국 PD는 많은 히트작이 있음에도 사극은 처음이었다. 연출자로서 의중을 정하고 배우와 상의하듯이 끌고가는 PD님의 현장이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다.
양경원은 이어 "배우로서 저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가득하다. 어느 역할을 맡건 그 역할로 보였으면 좋겠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결이 다른 역할을 맡겨준 제작진에게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양경원은 ‘세작, 매혹된 자들’에서 함께 연기한 배우들과의 만남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사랑의 불시착'이후 만난 이신영 씨(김명하)는 많이 성장해 있었다.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신을 소화하는 게 대견했다. 조성하 선배님은 스윗하고 따뜻했다. 후배가 다가가기 어려울까봐 자신이 먼저 다가와 주신다. 김종배로 신을 잘 던져줘, 유현보는 받기만 해도 기본 이상은 했다. 조정석 형은 러블리하면서 개구진 모습이 있는데, 그걸 숨기고 연기하는 정석 형이 재밌더라. 왕을 어떻게 연기할지가 궁금했는데, 진짜 왕이더라. 시청자들은 놀라면서도 반가웠을 것이다. 정석 형의 '익숙해지지는 않는데, 어색하지 않게 가는' 연기는 큰 달란트인듯 하다. 어떻게 그런 모습까지 나올까 하고 감탄한다"
이어 "남장 한 신세경과는 처음 호흡을 맞췄는데, 고민을 많이 하는 배우였고 솔직 담백하며 배려심이 많았다. 나를 유현보로 봐주는 강희수(신세경)가 고마웠다. 나를 나쁜 놈으로 봐주질 않으면, 나 혼자 나쁜 놈이 되기 위해 애써야 한다. 같이 호흡하는 게 편해졌다"고 말했고, "영부사 박종환으로 나온 이규회 선배님은 연극을 오래 하신 분이다. 규회 선배님의 마스크와 눈이 부럽다. 그 많은 대사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임팩트를 만들어내는 걸 보고, 많은 걸 느꼈다"고 했다.
양경원은 "'세작'에서 하고 싶은 또 다른 배역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이인 왕의 호위무관인 주상화(강홍석)다. 제가 가진 조건으로는 해낼 수 없다. 누군가를 지켜주는 게 행복이다. 그걸 내 한몸 바쳐 살 수 있는 게 멋있다. 그런 삶을 살면 어떨까 궁금하다. 그림자 경호하는 주상화 역할에 끌렸다"고 말했다.
양원경은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춤과, 노래, 연기를 좋아하던 그는 무대에 대한 갈증을 항상 지니고 있었다. 진로를 선택할 때 안정적 가장이 되고싶었다. 하지만 건축이라는 일을 평생 해낼 자신이 없었다. 회사를 다니다가, 극단에 나가기도 했지만, 개운하지 않았다. 그러다 회사에 사표를 내고 29살에 본격적으로 극단의 전업배우가 됐다. 양원경의 차기작은 배우 오의식과의 2인 연극 '그때도 오늘'이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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