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총파업 하면, 사회는 멈출 수밖에 없다 [김동진의 다른 시선]
3·8 세계 여성의 날 총파업을 맞아 돌아보는 ‘여성의 노동’
(시사저널=김동진 페페연구소 대표)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을 맞아 여성운동계에서는 여성 총파업을 추진 중이다. 이번 총파업에는 한국여성노동자회·한국여성민우회 등 전국의 총 39개 단체 및 노조가 참여했고, '2024 여성파업 조직위원회'가 활동 중이다. 조직위원회는 결성 제안서를 발표하고, 웹사이트에 설문조사 결과 및 여성활동가 기고를 실었으며, 관련 행사를 기획 중이다. 이들은 이번 파업에서 (1)성별 임금 격차 해소 (2)돌봄 공공성 강화 (3)일하는 모두의 노동권 보장 (4)임신중지 건강보험 적용 및 유산유도제 보장 (5)최저임금 인상 등 5가지 사항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 여성의 날은 매년 3월8일, 여성의 사회·경제·정치적 성취를 기념하고 성평등을 촉진하기 위한 기념일이다. 세계 여성의 날의 기원은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운동이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여성들이 산업 노동에 투입되면서 사실상 여성은 남성보다 더 열악한 임금 및 근로환경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에 1857년 미국 뉴욕시의 방직·직물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들이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에 저항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로부터 2년 후 최초로 여성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1908년 미국에서는 약 1만5000명의 여성이 근무시간 단축, 임금 인상, 투표권 등을 요구하며 뉴욕시로 행진했다.
한국, OECD 국가 중 '성별 임금 격차' 부동의 1위
이듬해인 1909년 2월28일을 미국에서는 '전국 여성의 날'로 선포했고, 이에 힘입어 1910년 덴마크에서 개최된 '국제여성노동자회의(International Working Women's Conference)'에서 독일의 여성운동가 클라라 제트킨이 '세계 여성의 날'을 제안했다. 1911년에 유럽의 몇몇 국가에서 먼저 '세계 여성의 날' 행사를 개최했고, 1913년부터 3월8일로 변경된 이후 더 많은 국가가 이날을 기념하고 있다. 이에 유엔은 1975년에 3월8일을 공식적으로 '세계 여성의 날'로 기념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나혜석·김활란 등 여성활동가들 덕분에 1920~45년까지 세계 여성의 날 행사가 이어졌다. 조선총독부는 여성의 날 행사를 감시했지만 딱히 명분이 없어 탄압하지는 못했다. 이승만 정권 이후에는 여성운동 탄압으로 인해 뜻있는 소수에 의해서만 실시되었다. 그러다 1985년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제1회 한국여성대회를 개최하게 되었으며, 1987년 6월 항쟁을 계기로 더 많은 참여자가 모이게 되었다. 2018년 여성의 날이 법정 기념일로 공식 지정되었다.
세계 여성의 날의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면, 오늘의 여성 총파업은 갑작스럽지 않으며 극히 자연스럽다. 애초에 세계 여성의 날이 생겼던 계기가 열악한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처우 개선을 위한 운동이었으니. 세계 최초의 여성 파업은 1975년 10월24일 오후 2시5분 아이슬란드에서였다. 남성과 동일한 임금을 적용한다면 여성은 오후 2시5분에 퇴근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 파업에는 아이슬란드 여성의 90%가 참여했고 여성들은 직장에서의 일과 가사 및 돌봄노동을 모두 거부하고 거리로 나왔다.
여성 노동자 다수로 구성된 산업은 완전히 마비되고 아이슬란드의 경제가 하루 동안 멈췄다. 전화 서비스가 중단되어 통신이 마비되었다. 조판공의 대다수가 여성이었기에 신문사가 문을 닫았고, 여성 배우가 일하지 않아 극장도 문을 닫았다. 대다수 교사가 여성이었기에 학생들은 학교에 남겨졌고, 항공사는 승무원 부족으로 항공편을 취소했으며, 은행에서는 남성 임원이 창구에서 일했다. 아버지들은 직장을 쉬거나 자녀를 동반하고 출근했다. 라디오 뉴스 보도 중 배경으로 아동들의 말소리가 들리기도 했고, 퇴근 후 아버지들이 자녀들을 돌봐야 했기에 아이들이 잘 먹고 요리하기 쉬운 음식인 소시지가 곳곳에서 매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총파업은 여성의 일터노동, 가사노동, 돌봄노동 등이 없다면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듬해인 1976년 아이슬란드에서는 남녀고용평등법이 의회를 통과했고, 1980년에는 유럽 최초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또한 아이슬란드는 2009년부터 '세계 성별 격차 보고서(The Global Gender Gap Report)'에서 성별 격차가 가장 없는 나라로 꾸준히 전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의 사례와 매우 대조적이다. 우리나라는 2022년 기준 여러 성별 격차 지수 중 성별 임금 격차가 31.1%로,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근로자 중 정중앙인 중위임금을 받는 남성이 여성보다 31.1%를 더 받는다는 뜻이다. 해당 연도에 OECD 38개 회원국의 평균 성별 임금 격차는 12%였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1996년 OECD 가입 이래 26년 동안 줄곧 회원국 중 성별 임금 격차 1위 타이틀을 내려놓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남성에도 억압으로 작용
성별 임금 격차의 원인은 다양하다. 일단 직업적 성별 분리 현상으로 여성/남성은 이미 여성/남성이 많이 진출해 있는 직업에 몰리게 된다. 예를 들어 여초 직군인 교사, 간호사, 항공사 승무원 등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여성의 직업 중 상당수는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 등으로 수행하는 영역이라기보다는 소위 돌보는 일, 주로 여자가 하는 일, 그래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로 여겨지기에 더 낮은 임금이 매겨진다. 이 밖에도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고위직 승진에서 여성보다 남성이 선호되는 경우, 직장에서 육아휴직을 쓴 여성이 복귀한 후 제대로 승진하지 못하고 밀려나는 문제 등이 성별 임금 격차를 더 벌어지게 만든다.
미국의 저명한 여성학자 벨 훅스(bell hooks)는 이러한 사회구조를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라고 명명했다.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억압적으로 작용한다. 개인의 성향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고강도의 노동을 당연시하는 문화를 만들고, 강한 위계질서에 순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든다. 이는 과거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며 전 세계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세계 최초로 여성 총파업을 했던 아이슬란드도 여전히 성별 임금 격차가 있고 완전한 성평등에 도달하지 못했다며 1975년 이후 48년 만인 지난해에 여성 총파업을 실시했다. 한국에서는 2017년부터 여성이 오후 3시부터 노동을 멈추는 '3시 STOP' 파업이 진행되었다.
2024년 세계 여성의 날인 3월8일에는 서울 보신각에서 여성 총파업 대회가 열릴 뿐 아니라, 청계광장 일대에서 참여 단체들의 부스 행사 및 연대 발언, 축하공연, 행진 등의 행사가 이어져 축제의 장 또한 펼쳐질 전망이다. 2024년 세계 여성의 날 총파업이 우리가 처한 노동 현실을 돌아보고 바꾸어 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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