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성화 "뮤지컬 배우 21년차, 한결 같이 지켜온 나만의 원칙 있어"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개그맨으로 데뷔해 잠시 드라마에 출연했다가 어느덧 뮤지컬 배우로 20년 지내오고 있습니다. 배우 일 자체가 다 끊겼을 때 뮤지컬을 만나게 됐고 그때부터 이 일을 계속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20년의 세월동안 철칙처럼 지키고 있는 단 하나의 원칙이 있는데 연습량과 연습 과정에 있어서만큼은 '이제 됐다'고 스스로 느껴질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죠."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콰지모도 역을 맡아 열연 중인 배우 정성화가 출연 소감과 콰지모도 역을 위해 차별화한 지점, 뮤지컬 배우로서 20주년을 맞이한 소감 등을 공개했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15세기 파리, 아름다운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와 그녀를 사랑하는 세 남자인 노트르담 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 노트르담 성당의 대주교 프롤로, 근위 대장 페뷔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1998년 프랑스 초연 이후 전 세계 23개국, 9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1,5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프랑스 3대 뮤지컬'로 손꼽히며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어버전 역시 2007년 전국 투어부터 다섯 번의 시즌을 거치는 동안 누적관객 110만명을 돌파해 스테디셀러로 우뚝 선 작품이다.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오드포트에서 기자간담회에 나선 정성화는 "'노트르담 드 파리'에 처음으로 합류하게 됐다. 윤형렬 배우가 이미 300회 이상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을 했는데 저와 양준모는 새롭게 합류했다. '정성화만의 콰지모도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콰지모도라는 인물이 지닌 추한 이미지와 연민의 정을 제대로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랑스 뮤지컬이지만 국내 배우들만의 차별점을 만들어내고 싶다. 저만의 연기적 패턴과 목소리를 잘 담아내는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이어 콰지모도 캐릭터를 구체적으로 만들어나간 과정에 대해 "음악 감독님이나 연출님이 '네 목소리로 노래를 해주면 좋겠다'고 하셔서 해보니 청아한 목소리의 콰지모도가 나오더라. 그의 추악한 면이나 몸도 불편하고 귀도 안들리는 사람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이 됐다. 저는 음역대도 넓게 쓰면서도 귀가 불편하고 발음도 불편한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 등이 불편한 친구이기에 최대한 낮은 자세로 무대에 서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왼쪽 다리로만 걷는 연습을 했다. 그런데 하다 보니 굉장히 어렵다. 그래서 처음에는 하자마자 며칠 앓아 누웠다. 근육 훈련을 부단히 해서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다"고 전했다.
정성화는 콰지모도 역을 연기하며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에 대해 "콰지모도가 에스메랄다에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계기와 가장 깊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 시점에 대한 그림을 그렸다. '벨'이라는 노래를 부를 때 에스메랄다에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녀를 우리 집에 초대했을 때 사랑이 깊어진다. 그리고 그녀를 감옥에서 구할 때 사랑이 절정에 다다르게 된다. 이런 모습들을 관객 여러분들이 이해하실 수 있게 잘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상반신을 상당한 각도로 구부린 채 150분의 러닝 타임을 소화해야 하기에 콰지모도 역을 체력 소모도 상당히 요구된다. 걸음걸이 또한 불편한 콰지모도를 표현하기 위해 한 쪽 다리에 더 힘을 많이 주고 걸어야 하고 높은 곳에도 오르내려야 하는 만큼 뮤지컬의 핵심 요소인 가창에도 일반 뮤지컬과 달리 또 다른 노력이 필요했을 터.
"2막 첫 곡인 '성당의 종소리'는 노래 한 곡을 무대를 돌아다니면서 해야 해요. 그 무대가 끝나면 저절로 헉헉 거릴 정도로 힘이 들죠. 그것에 대비해 노력을 많이 했어요. 이 공연의 재미가 싱어와 댄서들이 따로 있는 점인데 댄서들과 연습을 하다 보면 마치 태릉 선수촌에 와서 훈련하는 것 같아요. 댄서 친구들이 도움을 많이 줬죠. 유산소 훈련과 다른 훈련들을 댄서분들과 꾸준히 소통하면서 하고 있어요. 힘든 것은 많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죠. 허리를 구부리고 큰 소리를 어떻게 내느냐고 많이 물으세요. 보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코어에요. 코어가 망가지지 않으면 소리가 나오죠. 윤형렬 씨나 프랑스 가루 배우도 똑같이 합니다. 그분들도 이상 없이 하는 걸 보면 노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코어를 잘 지키는 것 같아요. 그 부분에 집중하니 노래는 잘 나와요.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요."
정성화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선택하게 된 이유와 서울 공연을 마무리해가는 시점에서의 소감 등도 공개했다. 그는 "제가 어렸을 때 이 작품을 부산에서 본 적이 있다. 그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이렇게 좋은 음악이 있구나'하고 꼭 한번 공연해보고 싶었다. 그동안 이 작품을 하지 못한 이유가 다른 공연과 겹치기도 했고 내가 가서 폐를 끼치는 것 아닌가 두려움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시기가 잘 맞았고 오디션 공고가 떴기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소속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영상 오디션을 프랑스 현지에 보내 통과가 됐다. 그래서 이번 공연에 오르게 됐다. 막상 이 공연으로 무대에 서보니 저도 스스로 음악을 즐기고 관객도 함께 즐기게 해드리며 공연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작품의 여러 에너지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의 에너지다. 리카르도 꼬치안떼라는 걸출한 작곡가가 작곡한 음악이 너무 좋다. 프랑스에서 '아름답다(Bell)'이라는 넘버가 44주간 차트 1위를 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사랑받을 만한 음악이다. 함께 공연을 해보니 너무 행복하고 많은 분께 사랑받는 이유도 알겠다"며 '노트르담 드 파리'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안중근 역을 맡아 통산 300회 공연을 달성시킨 창작 뮤지컬 '영웅'은 뮤지컬 배우 정성화하면 바로 떠오를 정도로 그의 대표작이다. 그의 뮤지컬 '영웅' 공연을 본 영화 '해운대'·'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이 뮤지컬 영화 '영웅'을 만들면서 생애 첫 영화 주연을 맡아 327만 흥행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매체와 뮤지컬 무대를 오가며 관객 저변 확대에도 충분히 공을 세우는 중이다. 하지만 스스로는 여전히 뮤지컬 배우로서 더 매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영화 '영웅'을 통해 폭넓은 관객분들께 뮤지컬 '영웅'을 소개할 수 있어서 좋았죠. 사실 뮤지컬 한편을 보러 오시는 것이 큰 결심이 필요해진 시대잖아요. 영화 한편을 통해 뮤지컬의 저변이 넓혀졌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다만 뮤지컬의 생소한 부분들을 소개드릴 수 있어서 뿌듯합니다. 제가 대단한 걸 이뤘다는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없어요. 다만 대단한 걸 이루기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영화계나 방송계, 공연계 모두 어렵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 배우가 할 일은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할 게 아니라 제 자리에서 항상 최선을 다해 최고의 공연을 보여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노트르담 드 파리'에만 매진하고 있습니다."
정성화는 이날 간담회에서 개그맨으로 데뷔해 잠시 배우 생활을 거쳐 뮤지컬 배우로 데뷔하기까지의 시간도 돌아봤다. 2004년 뮤지컬 '아이러브유'로 시작해서 뮤지컬 '영웅', '레미제라블', '맨 오브 라만차', '킹키부츠', '레베카', '광화문 연가', '웃는 남자', '젠틀맨스가이드 : 사랑과 살인편', '미세스 다웃 파이어'까지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오며 지켜온 단 하나의 원칙에 대해서도 공개했다.
"연극 '아일랜드'를 할 무렵 작품이 몇년동안 없어서 혼자 살며 전기까지 끊겼던 때에요. 돈이 필요해서 알바를 하고 지내는데 표인봉 선배가 '아일랜드'에 출연할 생각이 없냐고 연락을 주셨어요. 그 연극을 하는 저를 본 설도윤 대표님이 뮤지컬 '아이러브유'에 저를 캐스팅해주셨죠. 사람에게 있어서 인생의 어떤 시기에 누군가를 만나는 건 참 중요해요. 그때 걸출한 스타 남경주 선배님과 함께 공연하면서 너무 느낀 게 많아요. 저렇게 해야 정말 꾸준한 배우가 될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남경주 선배님이 저를 좋아해주셔서 너무 많은 걸 가르쳐 주셨어요. '성화야, 더 일찍 와야 한다' '네가 지금 하는 연기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등 많은 걸 가르쳐주셨고 그때 공연에서 들은 관객들의 함성소리가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눈물이 저절로 나더라고요. '평생 이걸 위해서 살아야겠구나'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저에 대해 잘 파악하면서 성실히 할 수 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죠. 그때부터 지금의 제 나름의 연습량이 생겼어요. 몇시간씩 한다고 정한 게 아니고 제 몸에 완전히 체득될 때까지 연습하고 또 연습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거든요. 그렇게 연습해오던 습관이 20여년 가까이 이어져 오고 있어요. 지금도 연습량이나 연습 과정에 있어서는 이를 악물고 철칙처럼 지키고 있죠."
20여년의 시간동안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공연을 해왔지만 그는 여전히 목마르다. 아직도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고 한걸음씩 성장하기를 꿈꾼다. 자신이 맡은 캐릭터가 몸에 체득될 때까지 연습을 아끼지 않는 것과 함께 또 한가지 그가 견지해온 원칙은 다름 아닌 주위 동료, 스태프와의 조화로운 협업이다.
"배우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매번 공연에서 똑같은 실력을 보이는 것은 쉽지 않아요. 매번 똑같이 잘 부르기는 어렵죠. 공연마다 가진 난이도도 다르고 노래가 첫곡부터 엔딩곡까지 안정적으로 매끄럽게 표현되는 것은 어려워요. 그래서 더 겸손해질 수 밖에 없어요. 오랜 시간 공연을 해오면서 제게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었어요. 저와 함께 무대에 서주는 동료 배우들, 앙상플, 스태프들과 인간 관계를 잘 구축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배우로서 할 일 같아요. 배우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사람을 잘 알아야하고 또 그런 부분이 제 성장의 중요한 키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테크닉적으로는 제가 바리톤 음색이기에 고음도 개발하고 싶고 다른 목소리와 울림통도 개발하고 싶죠. 돌아가실 때까지 무대에 서신 루치아노 파바로티처럼 저도 오래오래 노래하고 싶어요."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msj@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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