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코·입 없거나 여러개…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

한겨레 2024. 3. 9.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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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우진영의 한국 근현대 미술 잇기
얼굴과 표정
박수근의 ‘한일’ 속 뭉개진 표정
일제·전쟁통 힘든 시간의 표현
김정욱, 제목 없는 2023년 작
마음 주고받는 기쁨 나타내
박수근, ‘한일’(閑日), 1950년대. ⓒ박수근연구소 제공(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소장)

“장난도 마술도 아니야. 나는 정말로 눈에 보이지 않아.” 허버트 조지 웰스의 소설 ‘투명인간’ 속 한 장면이다. 물리학자 그리핀은 스스로를 사라지게 만들고 광기에 빠져든다. 우리는 익숙한 얼굴에 편안함을 느낀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두렵다. 표정을 숨긴 남자들의 모습을 그려낸 근대의 박수근과 날것의 얼굴을 드러내는 현대의 김정욱을 만나본다.

봉인된 표정 ‘박수근의 남자들’

“언니, 이 남자들 재밌게 놀고 있나 봐. 그런데 얼굴은 안 그린 거야?” 사촌 동생이 묻는다. 박수근의 ‘한일’에 대한 감상이다. 2022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어느 수집가의 초대’전에서의 일이다. 여유롭다. 장기판을 두고 둘러 모였다. 제목 그대로 한가로운 날이다. 얼굴은 불투명하다. 등을 보인 남자들의 표정이 궁금하다. 정면의 두명은 간신히 눈 코 입의 형태만을 확인할 수 있다. 늘 물음표였다. 박수근이 그린 남자들은 왜 같은 얼굴일까.

박수근은 홀로 그림을 익혔다. 보통학교 졸업이 전부다. 1932년 18살에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서 입선하고 해방 뒤 대한민국미술전시회(국전)에서 특선하며 이름을 알렸다.1950년 한국전쟁 때 남하하며 가족과 생이별했다. 다시 만난 건 2년 뒤였다. 억지로 시간이 흐르던 날들이었으리라. 그는 보통의 하루를 사랑했다. 어제가 별일 없이 지나갔음에 감사했다. 오늘이 평범했음에 안도했다. 내일도 그러하기를 바랐다. 그의 그림을 우리는 ‘소박하다’고 이야기한다.

‘노인’(1961)의 남자는 그저 쪼그려 앉아 있다. ‘노상의 사람들’(1962) 속 뒤쪽 세 남자는 등을 돌린 채 환담 중이다. 손과 팔에 쥐어진 것은 없다. 왜 이토록 무료한 모습일까. ‘한일’ 속 정면을 향한 두 남자의 눈 코 입이 더욱 흐릿하다. 비어 있는 두 손이 처연하다. 박수근의 속내를 읽고 싶다.

“내 불행에만 몰입했던 눈을 들어 남의 불행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박완서의 ‘나목’ 중 한 부분이다. 박완서와 박수근은 한국전쟁 때 미군부대 피엑스(PX)에서 함께 일했다. 서울대 문리대 입학 뒤 강제로 공부를 중지해야 했던 그녀는 처지를 비관했다. 초상화를 그리던 남자들을 ‘간판쟁이’라며 하대했다. 이처럼 불행에 취하기는 쉽다. 박수근은 아니었다. 묵묵히 그렸다. 캔버스가 아닌 싸구려 스카프 한 모퉁이에. 의연하고 담담하게. 박완서는 후에 알았다. 그가 예술가였음을. 자기연민에서 벗어나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타고난 선량함은 때때로 사람을 구원한다. 누군가 미워지려 할 때면 되뇐다. 스스로의 우아함을 지켜낸 박수근의 삶의 태도를.

‘한일’ 속 남자들의 감춰진 표정에서 인내의 흔적을 본다. 핍진한 시절이었다. 무력함과 자책에 젖은 날도 많았으리라. 동료 화가 정규는 1962년 일간지에 이렇게 적었다. “단순화된 인생의 정경에서 우리는 따뜻하고도 어딘가 고독한 박수근의 인간상을 느낀다.”

‘유채로 가능한 질감인가?’ 그림은 거칠고 딱딱하다. 오돌토돌하다. 박수근 특유의 마티에르다. 겹겹이 바르고 말리고 또 바른다. 시간을 켜켜이 채운다. 표면은 바위와 돌처럼 굳어진다. 그 더께만큼 인물들의 선함이 살아난다.

“용마루만 보아도 내 집이 사랑스럽다고 말씀하셨다.” 아내 김복순의 회고다. 피엑스에서 수모를 견뎌내며 일해 마련한 서울 창신동 집이다. 하늘에 맞닿을 듯 높은 곳에 자리한 창신동 카페 통유리에 붙어 가늠해본다. “여기서 6분 거리니까 저기쯤일까.” 연모하는 한 남자를 떠올렸다. 박수근이다. 그가 용마루에서 물감 층을 쌓아올리고 있다. 뒷모습을 보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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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욱, ‘제목 없음’, 2023. 작가 제공

포개진 얼굴에 깃든 애정

세개의 부릅뜬 눈과 마주쳤다. 당혹스럽다. 그림에 대한 첫 느낌이다. 오시아이(OCI) 미술관에서 열린 김정욱의 개인전 ‘모든 것’ 전시에서다. 형형하지만 어떤 눈빛인지 모르겠다. 중앙에 여러 얼굴들이 겹쳐 있다. 뚜렷하게 드러난 이목구비가 질서 없이 포개졌다. 인간인가 아닌가. 공상과학 영화 속 외계인인가. 눈이 어지럽다. 시선을 옆으로 옮겨보는데 더 혼란스럽다. 정체를 가늠하기 힘든 형상들은 흩어지거나 모였다. 해석을 시도할수록 뒤엉킨다.

불현듯 떠올랐다. “친구가 누나 마음 조금 몰라준 게 문제가 될까? 상대방이 나와 항상 같은 마음일 순 없잖아.” 관계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니 동생이 말했다. 냉정하다. 내 마음을 가족과 연인과 친구가 다 헤아릴 것이라는 건 환상이다.

김정욱이 그려낸 난해함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다. 같은 형태와 비례로 겹쳐진 얼굴들이 말을 건다. 100%를 주고받으려 하지 말라고. 보인다. 그림 속 형상들이 완벽하게 포개지려다 어긋났음을. 콕 하고 박혔던 동생의 한마디가 다정해진다. 캔버스 속 쏘아보던 눈과 얼굴에서 뿜어내는 광선들이 더는 무섭지 않다.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등진 사람이지만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대학 시절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가 조선시대 초상화에 압도당했다고 김정욱은 회고했다. 인물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녀의 모든 작품은 이름이 없다. 현대미술 작품에 붙는 단골 제목(Untitled)이 아니다. 이름 자체를 붙이지 않는다.

모티프는 계속 변주되었다. 여자아이의 커다란 얼굴이었다가 나란하게 서 있는 전신의 인형이었다가 제단화 속 순교자의 형상들이거나. 다만 내내 컴컴하다. 소녀의 검은 동공 속에서 처음으로 홀로 집을 보던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난다. 어스름히 새어드는 가로등 불빛에 덜컥 겁이 날 무렵이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가족들이다. 하나의 얼굴이 두개 세개 네개가 된다. 김정욱의 먹색과 검은색이 불러오는 감수성은 이토록 컬러풀하다. 모든 발색을 품듯이. 한지 위에 수백번씩 먹을 입힌다. 얼굴과 표정 사이에 흑백의 색들이 꼼꼼하게 채워진다. 깊게 넣어둔 내 안의 어두움도 삐져나온다. 용기 내본다. 나의 결핍도 마주하고프다. 김정욱의 얼굴들처럼. 당당하게.

“아무리 그려도 그릴 게 있다. 수행과도 같은 나날을 감내한다.” 최근 개인전에서 김정욱이 밝힌 바다. 확신한다. 그녀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다짐한다. 마음을 주고받는 기쁨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이해와 자책 사이에서 흔들리더라도. 거울을 본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얼굴이 있다.

그리고 가끔 생각한다. 얼굴을 본다는 것은 모든 것을 보는 것임을. 유창한 말과 유려한 글은 속내를 감출 수 있음에. 오늘도 너의 얼굴을 바라본다. 마음을 나누고 싶어서.

미술 칼럼니스트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소심하고 예민한 기질만 있고 재능이 없단 걸 깨달았다. 모네와 피카소보다 김환기와 구본웅이 좋았기에 주저 없이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전공했다. 시대의 사연을 품고 있는 근대미술에 애정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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