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될 바엔 컴퓨터 사업”…강남 엄마 뒷목잡을 아들? 대박 신화 썼다는데 [추동훈의 흥부전]
[흥부전-46][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40] 마이클 델
마치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이 이야기는 실제 한 인물의 에피소드인데요. 오늘은 27살에 최연소 전 세계 500대 부자에 오르고 31살에 억만장자가 된 델 컴퓨터 창업자, ‘마이클 델’이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의 주인공입니다.
올해도 꺼지지 않는 인공지능(AI) 열풍으로 많은 기업들이 AI 수혜기업으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데요.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아마존 등 여러 빅테크 기업들이 관련주로 분류되며 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AI 반도체칩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엔비디아와 연관되기만 하면 주가가 폭등하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는데요.
엔비디아칩을 사용한 컴퓨터 서버 제조업체 슈퍼마이크로가 대표적입니다. 연일 급등하던 주가로 결국 S&P500 지수에 신규 편입되는 성과를 거뒀는데요. 슈퍼마이크로가 전념하는 컴퓨터 서버 시장의 전통강호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델입니다.
사실 이런 사업가 본능은 세계적인 기업가들에게 곧잘 보이는 에피소드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빌 게이츠나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도 10대 때부터 자신만의 경쟁력을 발휘해 물건을 팔거나 돈을 벌어본 이야기들이 유명하죠.
특히 우표를 사고파는 중개인이 이를 주선하는 대신 많은 수수료를 챙긴다는 것을 안 마이클 델은 본인이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직접 구매자를 찾아다니며 수수료를 뺀 가격에 우표를 파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이런 요렁은 12살 짜리 어린이에겐 다소 많은 2000달러라는 돈을 벌게 해줍니다.
10대 시절 마이클 델의 또 하나의 관심사는 전자기기였습니다. 7살 때 처음 계산기를 샀던 그는 중학생 때 초창기 전신타자기 단말기를 사용해보기도 했습니다. 지금이야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못하는게 없는 시대지만 당시만 해도 여러 전자기기는 값비싼 물품이었죠. 다행히도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한 마이클 델은 15살에 그의 첫 번째 컴퓨터인 애플2를 사기도 했습니다.
그는 애플2 컴퓨터를 사자마자 그 비싼 물건을 전부 분해해 도대체 이 안엔 무엇이 들었고 어떻게 설계됐는지를 유심히 살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엔 몰랐을 겁니다. 애플2를 완전히 분해했던 경험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꿀 것이라는 사실을요.
그는 먼저 새로 집을 장만한 신혼 부부 등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법원 기록을 확보하기로 전략을 세웁니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을 고용해 돈을 치르고 신규 주택 매수자 정보를 획득했습니다.
마이클 델은 이들 가정에 직접 한통한통 구독 권유 편지를 보냈고 이러한 전략은 주효해 1년만에 무려 1만8000달러에 달하는 돈을 벌었습니다. 이는 당시 자신이 다니던 학교의 선생님의 연봉보다도 많은 돈이었습니다. 마이클 델은 직접 여러 명의 직원을 고용했고 제법 많은 돈을 벌게 되며 창업을 위한 초기자금을 확보합니다.
중간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고객의 수요에 맞는 맞춤형 광고를 하고, 직접 판매를 원칙으로 하는 델의 ‘다이렉트 모델’은 이러한 경험에서 시작합니다.
주변 지인들의 요청으로 인해 델이 조립하거나 업그레이드한 컴퓨터는 같은 부품을 이용하고 같은 성능을 내는 대기업 컴퓨터보다 20%나 저렴했습니다. 당연히 이는 입소문이 났고 델은 이를 아예 비즈니스 모델로 확장할 계획을 세웁니다.
특히 그는 중간 중간 껴있는 도매상들의 판매 수수료 비용을 아끼면 보다 저렴한 가격에 더 많은 제품을 팔 수 있는 직거래 마케팅 전략의 힘에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이 전략을 이용해 조립 컴퓨터 시장에 뛰어들겠단 결심을 했습니다.
바다에서 잡은 생선이나 밭에서 캔 감자가 여러 차례의 유통과정을 거치며 가격이 치솟는 것처럼 컴퓨터 부품 하나 하나를 모아 PC를 조립해 고객에게 판매되는 과정에서 쌓여가는 유통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겠단 것이었죠.
마이클 델은 고객이 주문한 후에서야 PC를 조립하는 전략을 선보였습니다. 기존 PC 판매방식이 업체가 자체적으로 판단해 각 부품을 선택해 조립한 뒤 완제품 PC를 내놓으면 고객은 이중에서 입맛에 맞는 제품을 사야 하는 것이었다면 델의 회사에선 고객이 직접 각 부품을 고르면 델이 이에 맞춰 조립하고 최적화해준 뒤 발송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용산전자상가나 온라인 PC업체에서 보편적으로 이용되는 맞춤형 주문제작 시스템의 원조가 바로 마이클 델의 판매방식인 셈입니다.
델의 신선한 판매전략은 예상대로 먹혀 들었고 델은 같은 해 5월 아예 자신의 이름을 딴 델 컴퓨터로 사명을 변경하고 본격적인 PC 판매를 시작합니다. 델은 전화 주문을 받을 직원을 계속 고용했고, 네모난 테이블 위에 3명의 조립직원이 종일 주문서대로 부품을 하나씩 장착하고 컴퓨터를 완성하는 일을 반복해 나갔습니다.
이후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고 1988년 델컴퓨터는 나스닥에 상장하며 경제계의 스타로 발돋움합니다. 이 후 그는 27살의 나이에 포천지 상위 500대 기업 회사중 가장 나이가 어린 CEO로 이름을 올렸고 31살의 나이에 억만장자에 등극하며 1990년대 스타 CEO로 이름을 날립니다.
행운도 따랐습니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며 온라인 주문이라는 새로운 주문 방식이 도입된 것입니다. 이후 델 컴퓨터는 성공 가도는 가속화됐고 2001년 1분기, 델은 컴팩을 제치고 세계 시장 점유율 1위(12.8%)에 오르게 됩니다.
결국 그는 3년만인 2007년 CEO로 복귀했지만 여전히 위기는 이어졌습니다. 중국과 대만 등 아시아 시장에서 값싼 가격을 앞세워 컴퓨터와 노트북 시장의 틈새를 파고들었고 델은 이러한 시장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2013년, 결국 그는 결단을 내립니다. 상장 25년만에 회사를 직접 상장폐지하고 비공개회사로 전환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외부 자본과 개인투자자들의 과도한 관심과 간섭으로는 회사의 체질을 바꾸거나 혁신이 어렵다는 점이 이유였습니다. 트워터를 인수한 일론 머스크가 회사를 완전히 뜯어고치겠다며 비상장 회사로 전환 후 회사명을 X로 바꾼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스토리지, 네트워크 장비, 서버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을 인수하고 사업 분야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델은 사명 역시 ‘델 테크놀로지’라고 변경하며 PC 판매기업보단 종합 IT 솔루션 기업의 이미지를 강조했습니다. 단순히 PC 판매에 머물렀다간 급변하는 시장에서 생존이 불가능할 것이란 위기의식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습니다.
비상장회사로의 과감한 전환과 새로운 사업에 수백억 달러를 투자하는 결단, 타고난 사업가 마이클 델이 걸어가는 길은 아직 현재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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