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은 노력·정성에 비례… 시간과의 미학에 반하다 [유한나가 만난 셰프들]
2024. 3. 9. 14:01
‘엘픽’의 김수홍 셰프
대학 졸업하자마자 해외로 취업
덴마크 등 돌며 다양한 경험 쌓아
귀국 후 재충전하며 제주 엘픽 오픈
서울로 둥지 옮겨 제2의 요리인생
파이어 그릴 요리로 수비드 효과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 시그니처
대학 졸업하자마자 해외로 취업
덴마크 등 돌며 다양한 경험 쌓아
귀국 후 재충전하며 제주 엘픽 오픈
서울로 둥지 옮겨 제2의 요리인생
파이어 그릴 요리로 수비드 효과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 시그니처
엘픽의 김수홍 셰프를 만났다. 그는 어린 시절 조부모 집에서 성장했다. 충남 논산의 조부모 집은 아궁이와 온돌이 있는 시골집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물을 뜯어 어른들의 새참을 자주 만들었는데 이를 일이 아닌 놀이라고 여기며 즐겼다. 주방일에 자연스럽게 적응하게 된 그 즈음 여러 매체에 셰프가 등장하는 시대가 열리면서 요리사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에 중학교 때 요리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조리 관련학과로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싱가포르 힐튼호텔로 취업했다. 지인이 먼저 싱가포르의 외식업체에서 근무했는데 김 셰프에게 이력서를 넣어보라고 조언하여 다양한 외식업체의 문을 두드렸다. 그중 힐튼호텔에서 연락이 와서 바로 취업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해외 취업을 한다는 것이 많은 결심이 필요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학생 시절에 아르바이트한 경험이 고기를 손질하고 다루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부분을 호텔에서 어필했더니 핫파트의 메인 섹션에서 근무할 기회가 생겼다. 1년 2개월 동안 힐튼호텔 근무를 마치고 덴마크의 노마, 스페인의 에체바리, 포르투갈의 아헤야스 두 세이쇼, 오스트레일리아의 오란자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다양한 나라에서 근무하면서 여러 음식을 접했는데, 특히 노마에서 같이 일했던 크루들과 함께 오픈했던 포르투갈의 아헤야스 두 세이쇼는 5명이 16코스 요리와 45석 규모를 커버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요리하려면 1인 하루 15시간 이상 근무해야만 업장 운영이 가능했다. 지금 생각하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하지만 실제로 근무하면서 또 그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한국에 귀국한 후 제주도에서 1년 정도 재충전하며 엘픽을 오픈했다. 제주도에서 보낸 휴식 시간의 영향으로 첫 레스토랑은 제주도에 오픈했다. 김 셰프는 시장에서 사는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채집을 통해 대부분의 재료를 수급해서 사용하고 있다. 나물이나 허브를 채집하기에 제주도가 너무 좋았고, 서울 외에 문화 유입이 가장 좋은 지역이 제주도라고 생각해서 제주도에 첫 매장을 오픈했다. 이후 더 좋은 요리를 하고 싶다는 갈망으로 서울로 둥지를 옮겼다.
청담동 엘픽은 우드그릴 레스토랑이다. 스테이크 하우스라고 얘기하지만 스테이크를 메인으로 하고 파이어 그릴로 조리할 수 있는 다양한 요리들이 있는 곳이다. 파이어 그릴 레스토랑이지만 재료들의 채집과 재배가 기반이 되고 있다 마늘, 양파, 대파 빼고는 모두 제주도에서 재배하거나 채집해서 재료를 공수해서 사용하고 있다. 가니시는 노지에서 뜯거나 키워서 사용하기 때문에 그 향이 매우 강하고, 일반적으로 아는 허브 중에는 딜 정도만 사용하고 있다. 나머지는 크레송, 시프소렐, 방석나물, 갯콩순처럼 조금은 생소한 재료를 제주도에서 채집해서 사용하고 있다. 크레송이나 시프소렐이 제주도 노지에서 자라난다는 것이 생소하지만 김 셰프가 직접 제주도 지역을 다니면서 재료를 발견하여 하나, 둘 사용하기 시작했다.
엘픽의 파이어 그릴은 그릴 위에서 수비드를 한 것과 같은 결과물을 낼 수 있도록 장시간 조리하며 자극적인 향을 내지 않게끔 노력하고 있다. 김 셰프는 대추나무를 가장 좋아하는데, 화력이 좋아서 높은 온도에서 긴 시간 조리할 수 있다. 모든 해산물 요리를 그릴에서 굽는데, 단백질 종류를 구울 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이 각 재료가 막 익기 시작하는 온도에 맞춰서 익히는 방법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릴 위에서 불 향을 입고 가장 부드러운 상태를 유지해서 조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엘픽은 엘피코의 줄임말로 산 속에 있다는 느낌을 표현하기 위한 이름이다.
엘픽의 첫 번째 시그니처 요리는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다. 다른 드라이 에이징과 다른 부분은 2주 정도 고기의 표면을 건조시키고 3주차부터는 생고기를 갈아서 직접 고기 표면에 발라서 곰팡이를 피운다. 인위적인 파우더 효모를 쓰는 것보다 천연 효모를 직접 배양해서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감칠맛이 극대화되고 숙성향이 강화된다. 먹을 때 그 맛이 강렬한 만큼 손이 많이 가는데, 특히 습도, 온도 조절에 민감해서 항상 관심을 가지고 봐야만 한다. 누군가에게 알려주기 어려운 방법이라 엘픽의 고기들은 김 셰프의 손을 직접 거쳐서 만들어지고 있다.
두 번째 시그니처 메뉴는 단새우 파스타. 일반적으로 동해의 홍새우를 단새우라고 하는데 엘픽에선 2018년도부터 남해에서 나오는 단새우를 사용한다. 남해의 단새우를 100% 사용해서 만든 비스큐 소스를 완전히 졸여서 직접 만드는 생면 파스타 위에 단새우 회를 올려서 제공하는데, 굉장히 깔끔하면서 녹진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김 셰프의 음식은 대부분 시간과 싸움을 하는 메뉴들이라 조리하는 사람이 들인 노력과 정성에 비례할 수밖에 없는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공적인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다 보니 오랜 시간과 많은 재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최종적으로 김 셰프는 웨스턴 스타일 그릴이 아니라 한국식 그릴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궁이나 황토방을 활용한 그릴에서 시스템을 만들어 지금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미있는 요리를 즐겁게 만들어서 손님들과 행복하게 즐기고 싶다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다.
유한나 푸드칼럼니스트 hannah@food-fantasy.co.kr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세계일보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
- “한국처럼 결혼·출산 NO”…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서 주목받는 ‘4B 운동’
- “그만하십시오, 딸과 3살 차이밖에 안납니다”…공군서 또 성폭력 의혹
- “효림아, 집 줄테니까 힘들면 이혼해”…김수미 며느리 사랑 ‘먹먹’
- “내 성별은 이제 여자” 女 탈의실도 맘대로 이용… 괜찮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단독] “초등생들도 이용하는 女탈의실, 성인男들 버젓이”… 난리난 용산초 수영장
- ‘女스태프 성폭행’ 강지환, 항소심 판결 뒤집혔다…“前소속사에 35억 지급하라”
- “송지은이 간병인이냐”…박위 동생 “형수가 ○○해줬다” 축사에 갑론을박
- “홍기야, 제발 가만 있어”…성매매 의혹 최민환 옹호에 팬들 ‘원성’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