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 넣어도 소용없잖아” 흉기 들고 찾아온 그는 이웃이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윤준호 2024. 3. 9.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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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 강력범죄 10배 급증
민원 10건 중 7건 전화상담으로 끝
정부 소음기준 보완 의무화 정책 빈틈

한 빌라에서 흉기 난동이 벌어져 큰 인명피해가 발생할 뻔했다. 범행의 발단은 층간소음이었다. 정부가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을 막아보겠다고 전담 기관을 만들고 준공 승인에 필요한 소음 기준도 강화했지만, 실제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경기 오산경찰서는 지난 6일 특수상해 미수 혐의로 30대 남성 A씨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A씨는 전날 오후 5시30분쯤 경기 오산시 한 빌라에서 위층 거주자 B씨와 C씨를 향해 흉기를 잇달아 휘두른 혐의를 받는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마이크로소프트 디자이너의 AI 이미지 크리에이터
A씨가 흉기를 휘두른 건 다름 아닌 층간소음 때문이었다. B·C씨는 이웃 사이로 A씨 위층에 살고 있었다. 그는 평소 층간소음으로 불만을 품고 양손에 흉기를 들고 위층을 찾아가 피해자들과 말다툼을 하던 가운데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다행히 피해자들이 A씨를 막아서면서 이번 사건으로 다친 사람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층간소음으로 인해 발생한 강력범죄로 목숨을 잃는 사건도 적잖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 1월28일 경남 사천시 사천읍 한 빌라에서는 층간소음으로 인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50대 남성 D씨는 술에 취한 상태로 윗집 주민 30대 여성을 흉기로 살해했다. D씨는 자기 차량을 도주하는 과정에서 경찰차를 들이받기도 했으며 사건 발생 2시간 뒤 인근 고성군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창원지검 진주지청은 지난달 27일 D씨를 살인 및 특수공무방해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한 상태다.

지난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분석에 따르면 층간소음에서 비롯한 살인·폭력 등 5대 강력범죄 발생 건수는 2016년 11건에서 2021년 110건으로 5년 사이 10배 급증했다.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이 운영하는 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되는 전화 상담은 2019년 2만6257건, 2020년 4만2250건, 2021년 4만6596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23년 12월 6일 경실련이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층간소음 민원 접수현황 분석’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경실련 제공
정작 층간소음을 당했을 때 해결할 수 있는 창구가 없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경실련이 2020년 4월부터 2023년 4월까지 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민원을 분석한 결과 총 2만7773건이 접수됐는데 이 가운데 72%(1만9923건)가 전화 상담으로 끝났다. 실제 현장을 찾아 소음 수준을 측정한 경우는 1032건으로 3.7%에 불과했다. 

공동주택 내 소음문제는 경찰력 낭비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22년 9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약 1년간 층간소음으로 인한 경찰 신고는 총 3만8317건으로 월평균 약 3200건에 달했다. 층간소음으로 하루에 100건이 넘는 경찰 신고가 들어오고 있는 셈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12월 층간소음 기준인 49데시벨(㏈)을 충족하지 못한 신축 아파트는 보완 공사를 의무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소음 기준에 미달하면 준공 승인을 불허하고 재검사에 통과할 때까지 입주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고강도 정책이다.

지난 2023년 12월 원희룡 당시 국토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층간소음 해소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건설업계는 건설 원가 상승 등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지난 1월 회원사 조사 결과 “강화된 기준을 충족시킬 공법이나 기술이 개발되지 않았다”며 ‘규제 유예’를 국무조정실에 건의했다.

다가구주택은 정책에 적용받지 않는다는 허점도 있다. 다가구주택은 일반적으로 아파트보다 저렴한 자재를 사용해 소음에 더 취약하다. 하지만 현행 층간소음 관련 법령인 ‘주택법’에 따르면 층간소음 관리 대상은 다세대주택과 같은 공동주택만 해당한다.

다가구주택과 원룸 등 다중주택은 건축법에서 단독주택으로 분류돼 이곳에서 발생한 소음은 층간소음으로 인정되지도 않는다. 따라서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중재 대상에서도 제외돼 있다. 부산과 경남 등 일부 지자체가 층간소음 관리 대상을 다가구주택 등 공동주거시설로 확대하고 있지만, 여전히 법적 사각지대가 큰 실정이다.

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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