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과부들 없었으면 어쩔뻔…전설이 된 그녀들이 만든 샴페인 [전형민의 와인프릭]
3월8일은 국제 여성의 날 입니다. 여성의 날을 기쁜 마음으로 축하합니다. 남녀 평등 문제는 불거진지 오래된 문제가 아닙니다. 그전까지는 여성의 권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무시됐기 때문이죠. UN이 공식적으로 여성의 날로 지정한 게 불과 1975년인 것을 보더라도, 인류 역사에서 여성의 권리가 얼마나 무시당해왔는지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여성의 날은 1908년 3월8일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작업장에서의 화재로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궐기한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15만명에 이르는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노동환경 개선 △여성 투표권 등을 주장하며 뉴욕 거리를 가로질렀습니다.
이듬해인 1909년에는 미국사회당(SPA)이 이날을 기념해 여성의 날로 발표했고, 191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여성 노동자 국제 콘퍼런스에서 클라라 제트킨이 국제 여성의 날을 만들자는 제안을 하면서 세계적인 공감대를 얻습니다. 이듬해인 1911년부터 오스트리아, 덴마크, 독일과 스위스에서 본격적으로 3월8일을 기념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부터 법정기념일로 지정됐습니다.
앞서 말했듯 지금은 성차별과 여성의 권리가 사회적인 화두로 갑론을박의 장이 됐지만, 불과 100여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여성은 자신 명의의 은행 계좌도 열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여성 권리 신장에 일찍 눈을 뜬 유럽에서조차 여성이 사업을 하거나 사업체를 소유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듯이 금지됐죠.
그런데 이미 200여년 전 프랑스 샴페인 업계에서는 이런 상황에서도 독보적인 탁월함으로 예외를 인정받은 여성들이 존재합니다. 이들은 현대 우리가 즐기고 있는 샴페인의 정수를 만들어낸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샴페인을 사랑한다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이름, 바로 클리코(Veuve Clicquot), 포므리(Pommery), 볼랭져(Bollinger) 입니다.
주인공인 바르베 니콜 퐁사르댕(Barbe-Nicole Ponsardin)은 1798년 랭스에서 와인을 양조하던 프랑소와 클리코(Francois Clicquot)와 결혼합니다. 그러나 불과 7년 만인1805년 프랑소와 클리코가 장티푸스로 사망하면서 니콜은 27세의 나이로 미망인(Veuve)이 됩니다.
아무리 남편의 사업이라 하더라도 젊은 여성이 그것을 물려받는 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특이한 일이었습니다. 1804년 제정된 나폴레옹 법전에 여성이 남편이나 아버지의 허락 없이 프랑스에서 사업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미망인은 규칙에서 제외됐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이었죠.
마담 클리코는 처음부터 자신의 미망인 신분을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해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습니다. 샴페인 하우스의 이름을 뵈브 클리코-퐁사르댕(Veuve Clicquot-Ponsardin)으로 고치고 라벨에도 Veuve(과부)를 붙여 판매했는데 나폴레옹 전쟁 초기라는 시대적 배경 덕분에 이 문구가 여러 사람들에게 동정심과 동질감을 불러일으킨 셈입니다.
나폴레옹 전쟁 때문에 프랑스와 러시아의 관계가 경색되고 그러다못해 전쟁이 발발, 러시아군이 상파뉴 지역을 점령한 상황에서도 샴페인 뵈브 클리코는 잘 팔렸습니다. 러시아에는 그동안 샴페인이 수출되지 않았었는데, 뵈브 클리코를 통해 샴페인 맛을 본 러시아인들이 전후까지도 엄청난 물량을 사들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샴페인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조밀한 거품과 달콤했고 매력적인 맛은 좋았지만, 달갑지 않은 침전물(효모 찌꺼기)이 와인과 섞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샴페인이 막걸리처럼 불투명하고 걸쭉한 느낌마저 든다고 보면 됩니다.
그렇다고 샴페인에 빵 굽는듯한 구수한 풍미를 가져다주는 효모를 포기할 수도 없었죠. 생산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샴페인을 필터로 걸러내거나,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천천히 침전시킨 후 윗부분 맑은 부분만 상품화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할 경우 경제성은 물론 기분 좋은 버블감이 부족해지고, 맛도 변질되기 일쑤였죠.
그런데 마담 클리코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창적인 방법을 고안해냅니다. 병을 비스듬하게 거꾸로 세운 다음 4개월에 걸쳐 조금씩 돌리면서 효모 찌꺼기를 병목으로 모으는 기술, 이른바 리들링(riddling)입니다.
리들링을 통해 병목에 충분히 찌꺼기가 모이면 0℃ 이하 차가운 소금물(소금물이어서 0℃ 이하에서도 얼지 않은 상태)에 병목을 넣어 급속 냉각한 후 병마개를 열면, 이 부분이 얼음 결정화 되고 곧 샴페인 압력으로 밀어올려지게 됩니다. 이것을 제거하고, 효모 찌거기를 밀어낸 만큼의 부족한 샴페인 양을 다시 채운 후 최종 마감을 하는 방식인데요. 이를 데고르주망(degorgement)과 도사주(dosage)이라고 부릅니다.
리들링과 데고르주망, 도사주는 현재까지도 대부분 샴페인 하우스에서 사용합니다. 비록 이제는 사람의 손이 아닌 기계의 힘을 빌리더라도요. 가히 현대 샴페인의 어머니라 불릴만 합니다.
재밌는 것은 마담 클리코에 대한 직원들의 충성심이 워낙 높아서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닌 이 기술을 주변 경쟁자들(다른 샴페인 하우스들)이 수년 간 알아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마담 클리코의 리더십과 조직 장악력이 좋았다는 방증인데, 요즘이었으면 큰언니 리더십이라고 불리지 않았을까요.
학업을 마친 후 상파뉴로 돌아온 그녀는 1856년 포므리 에 그레노(Pommery et Greno)를 설립한 알렉상드르 포므리(Alexandre Pommery)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인 알렉상드르는 2년 만에 사망합니다. 그녀는 앞서 클리코와 마찬가지로 남편의 사업을 상속 받습니다.
클리코가 샴페인의 러시아 수출 물꼬를 텄다면, 루이스 포므리는 샴페인의 영국 수출 선구자 입니다. 당시 샴페인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달콤했습니다. 오늘날 일반적인 샴페인의 잔류 설탕은 병당 12g 정도인데, 당시엔 최대 300g의 잔류 설탕이 들어있었고, 아예 단 샴페인을 중화하기 위해 슬러시처럼 얼음과 섞어서 제공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업 확장차 영국을 방문한 마담 포므리는 프랑스의 샴페인들이 너무 달아서 잘 팔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자신의 유학 경험을 통해 영국 상류층의 문화가 그대로 사회에 유행한다는 점도요.
결국 고민하던 마담 포므리는 달지 않은 샴페인을 만들기 위해 마담 클리코가 발명해낸(그 즈음에는 모두가 사용하던) 방법인 데고르주망에 자신만의 방법을 더합니다. 결정화된 찌꺼기를 날려보내고 샴페인을 채워 넣는 도사주 과정에 당도가 없는 드라이 샴페인을 쓴 것입니다. 기존까지는 같은 당도의 샴페인, 그러니까 단 샴페인을 채워넣었습니다.
이렇게 나온 샴페인에는 브뤼(Brut·달지 않은)라는 말을 붙였는데 이 전략이 적중하면서 날개돋힌듯 팔려나갑니다. 지금까지도 대대분 샴페인 라벨에서 볼 수 있는 Brut라는 표현이 마담 포므리로부터 비롯됐던 것이죠.
그녀의 남편이자 브랜드 소유자인 자크 볼랭져(Jacques Bollinger)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갑작스럽게 사망합니다. 게다가 독일군의 공습으로 밭은 초토화가 되죠. 믿기지 않겠지만, 당시까지도 여성의 사업 소유권은 여전히 제한돼 있었습니다.(1965년이 되어서야 여성에게 허가 없이 고용, 은행 및 자산 관리에 대한 완전한 권리가 부여됐습니다.)
망가진 밭과 와이너리, 거기다가 끝모를 전란까지… 당시 사회 분위기로는 도저히 가업을 잇는 게 의미가 없어보이지만, 앞서 언급한 ‘미망인 예외 조항’으로 마담 볼랭져는 남편의 사업을 상속합니다.
그리고 마담 클리고와 마담 포므리가 각각 러시아와 영국으로의 수출길을 열었다면, 마담 볼랭져는 미국에 볼랭져 열풍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녀는 볼랭져 와인의 새 판매처 개척을 위해 3개월 동안 혼자서 와인을 싣고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볼랭져 열풍을 일으킵니다. 1961년 시카고 아메리칸 신문에 ‘프랑스의 영부인(the first lady of France)’으로 선정될 정도로 인기를 얻었죠.
그녀가 샴페인 역사에 남게된 가장 큰 이유는 R.D.(Recemment Degorge·직전에 데고르주망) 빈티지 샴페인을 개발했기 때문입니다. R.D.는 특별히 기후가 좋은 해에 생산한 포도로만 오랜 기간 숙성하다 출시 직전에야 데고르쥬망을 한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빵을 굽는듯한 효모의 풍미와 구조감 등이 도드라집니다. 매년 생산되는 게 아니다보니 희소성 또한 높았고, 애호가들 사이에서 특급 수집품으로 등극합니다.
볼랭져는 영국 왕실이 사랑하는 최고급 샴페인이기도 합니다. 볼렝저 R.D. 1973년 빈티지는 지난해 엘리자베스2세에 이어 왕위에 오른 찰스 왕의 왕세자 시절 첫번째 결혼이었던 고(故) 다이애나비와의 결혼식 당시(1981년) 축하주로 가 사용됐습니다. 천부적인 마케팅 전문가였던 릴리 볼랭져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나는 행복하거나 또는 슬플 때 샴페인을 마신다. 그리고 아주 가끔 외로울 때도 샴페인을 마신다. 하지만 절대 그 외의 시시한 이유로는 샴페인 병을 건드리지 않는다.”
헌신과 노력, 혁신으로 지켜낸 세 미망인의 독립성과 창의성은 다음 세대 여성을 위한 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혁신은 샴페인과 와인의 역사에 영원히 남았습니다만, 최근까지 프랑스와 해외 모두에서 여성 양조자가 여전히 예외적인 경우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쉽습니다. 오늘날 상파뉴 지역에만 두 손으로 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의 여성 양조자가 있지만, 전체 와인메이커가 5000명이 넘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요.
그러나 동시에 보르도 대학에서 양조학을 공부하는 학생의 40%가 여성이고, 매년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셀러 마스터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입니다. 가장 보수적인 농업 분야로 꼽히는 와인 양조에서도 이러한 눈에 띄는 변화가 감지되는 셈 입니다.
오늘날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고, 현대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성차별과 여성 권리의 문제는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일부에선 역차별이라는 반론도 제기되고 대다수가 거론 자체를 꺼리는 어려운 문제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국제 여성의 날을 전후한 이번 주 만큼은, 극단으로 치닫기보다 조금 더 서로를 이해하고자 노력할 수 있는 시기가 되길 바랍니다. 지난 2020년 발간된 세계경제포럼(WEF) 보고서의 일부를 인용해 이번주 와인프릭을 마칩니다.
“우리 생에 그 누구도 완전한 성평등을 보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후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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