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연합연습에 ‘맞불’ 대신 감자농사 독려…북이 달라졌다
‘자유의 방패’ 훈련과 북한
이전엔 농민까지 예비군 동원
올핸 주택·공장 건설에 군 투입
‘자력경제·현대화’ 자신감 바탕
미·일 관리모드…윤 정부만 강경
한국과 미국은 연합군사연습인 ‘자유의 방패’를 지난 4일 시작했다. 오는 14일까지 총 48회의 야외기동훈련을 확대 시행할 예정이다. 지난해보다 두배 정도 늘어난 규모다. 연합 공중강습 훈련, 연합 전술 실사격 훈련, 연합 공대공 사격 및 공대지 폭격 훈련 등을 실시한다고 한다. 지난 몇해 동안 진행된 유엔군사령부 재활성화의 일환으로 오스트레일리아(호주)와 캐나다, 프랑스, 영국, 그리스, 이탈리아를 비롯한 12개 유엔사 회원국도 이번 군사연습에 참가한다.
그런데 한국과 미국은 왜 봄이 시작되는 3월에 이런 대규모 군사연습을 할까? 사실 한국과 미국은 팀스피릿 연합군사연습을 시작했던 1976년부터 여러차례 이름을 바꾸기는 했지만 거의 매년 3월께 이런 대규모 군사연습을 시행하고 있다. 정기적인 연례 군사연습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왜 매해 봄철에 해야 하는 것일까?
한·미, 3월에 군사연습 하는 이유
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연합군사연습이 실시될 때마다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군대를 동원해 대응 군사훈련을 진행하고 한국의 예비군 및 민방위와 유사한 노농적위군 등의 민병조직들이 동원된다. 세계 최첨단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미군뿐만 아니라 군사장비 등에서 월등한 한국군에 대응하기 위해 전 국민을 동원하다시피 하는 것이다.
전 국민이 직장을 떠나 열흘 이상씩 군사훈련을 하면 당연히 경제활동에 어려움이 생긴다. 공장은 정상 운영이 어렵고 생산은 지연된다. 새해 농사 준비로 바쁜 농번기가 시작될 때 인력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1년 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농번기가 되면 군인과 학생 등을 농장에 파견해서 일손을 도와야 그해 농사가 보장되는 나라다. 그런데 군인과 학생들뿐만 아니라 농민마저 농장을 떠나 군사훈련을 해야 한다면 그 피해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북에 있어서 한-미 연합군사연습은 안보 이슈를 뛰어넘는 생존의 위협인 것이다. 아마도 한-미 군사연습은 이를 겨냥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북의 반응은 과거와 다른 모습이다. 군사연습에 반발하기는 하지만 반드시 군사연습으로 대응하지는 않기도 한다. 올해에는 ‘자유의 방패’ 연습이 3월 초부터 시작된다고 예고되었는데도 그 직전인 2월28일 평안남도 성천군에서 지방공업공장 착공식을 열었다. 북이 지방의 전면적 진흥을 목표로 10년 계획을 세워 추진하는 ‘지방발전 20×10 정책’의 첫 시작을 선포한 것이다.
이 착공식에는 이례적 모습이 있었다. 강순남 국방상과 정경택 군 총정치국장, 군 대연합부대장들, 건설에 동원된 군인들이 참가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지방발전 20×10 정책’ 관철을 위하여 새로 조직된 조선인민군 제124연대들”의 존재를 공개했다. 즉 한국과 미국이 작년에 비해 두배 규모의 연합군사훈련을 곧 시작한다고 하는데 지방에 공장을 건설하기 위한 연대급 공병부대를 새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어서 ‘자유의 방패’ 연합훈련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7일 노동신문은 “‘지방발전 20×10 정책’ 지방공업공장 건설 착공식들이 구성시, 숙천군, 은파군, 경성군, 어랑군, 온천군에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과거와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한-미 연합군사연습 기간에 전국 각지에서 공장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자유의 방패가 시작된 지난 4일에는 양강도 삼지연시와 대홍단군, 백암군 등에 트랙터를 대규모로 보내며 감자 농사를 독려했다. 그 전인 2월23일에는 평양에서 화성지구 3단계 살림집 건설 착공에 들어가 1년 안에 1만가구 살림집을 추가하겠다고 서두르고 있기도 하다. 이 공사장에도 군대가 동원되고 있다. 휴전선 이남에서 군사연습이 진행되든 말든 북은 농사 준비에 바쁘고 주택과 공장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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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봉쇄 시기에 ‘자력 재건’
김화군과 삼지연시의 경험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2020년 8월 홍수로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던 김화군은 단순히 원상 복구된 것이 아니라 완전히 현대화된 신도시로 환골탈태했다. 강원도 내륙 산골에 있는 작고도 낙후된 군이었으니 대단한 공업단지가 들어선 것은 아니다. 옷 공장, 식료 공장, 일용품 공장, 종이 공장이 새로 건설된 정도이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김화군의 재건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기간이다. 2021년 초부터 2022년 6월까지의 1년6개월은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국경을 스스로 폐쇄하여 외부와의 교류가 전혀 없던 시기였다. 외부의 지원은커녕 물자 수입마저도 완전히 단절되었고 코로나 때문에 모든 활동이 위축되었음에도 김화군에서는 새로운 공업 공장이 신설되고 마을이 완전히 재건축됐다. 자동화된 현대식 공장들을 건설하며 모든 기재와 부품을 국내에서 조달했고 생산 활동에 필요한 원료는 현지에서 공급할 수 있도록 했다.
삼지연시의 경험이 그 거름이 됐을 것이다. 삼지연에서도 국경이 봉쇄된 2020년 초부터 2021년 말까지 2년 만에 대대적으로 살림집과 공공건물을 건설했다. 여기에도 군대가 투입되어 216사단이 공사를 총괄했는데, 백두산 기슭에 있는 산간도시에 건설자재 등을 공급하는 것이 여의치 않아 많은 부분을 현지에서 조달했다. 시멘트를 절약하기 위해 삼지연에 흔한 규조토를 혼합해서 사용하기도 하고, 벽돌을 만드는 데는 현장의 진흙에 감자 공장에서 나오는 연재(물질이 불에 탈 때 연기에 섞여 나오는 먼지 모양의 검은 가루)를 섞기도 했다. 인조 대리석이나 판재, 목재도 현장에서 직접 조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화군 개건 사업이 완료된 1년 뒤인 2022년 7월 강원도 원산에서 개최된 강원도 생활필수품 전시회에서 김화군 공장들의 제품들은 일반 소비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삼지연은 “사회주의 이상촌”으로 불리고 있다. 북은 자력으로 경제를 현대화하고 전국을 개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한-미 군사훈련에 아랑곳하지 않고 경제 제재와의 전면전에 성큼 나서고 있다.
최근 일본과 미국은 대북정책에서 미묘한 기류를 보이고 있다. 일본 기시다 후미오 정부는 북과의 정상회담 가능성을 살려두고 ‘밀당’을 계속하고 있다. 북도 적극적으로 화답하며 일본과는 싸울 뜻이 없다고 시사하고 있다. 미국 조 바이든 정부도 최근 북한 비핵화로 가는 과정에 ‘중간 단계’가 필요하다며 대북관계 관리 모드에 들어갔다.
윤석열 정부는 홀로 강경 모드다. 윤 대통령은 3·1운동 기념사에서 “자유로운 통일 한반도”를 언급하며 북한 정권교체를 시사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지난 7일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언급하며 “북한이 만약 우리의 방어적 연습을 빌미로 도발하면, 즉·강·끝(즉각·강력히·끝까지) 원칙으로 ‘선 조치 후 보고’를 넘어, ‘선 응징 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북은 속으로 비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시카고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국제관계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국제기독교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반도와 국제관계에 대한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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