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성 순대'에서 비건식의 미래를 봤다

김아름 2024. 3. 9.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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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유통]비건식품 시장 전망
대안육, 미래 식생활 중심 될까
그래픽=비즈워치
[주간유통]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편집자]

식물성 순대

이번 주 식품업계에서는 작은 행사가 하나 있었습니다. '베러미트'와 '유아왓유잇'이라는 식물성 식품 브랜드를 보유한 신세계푸드가 신제품인 '식물성 순대'를 선보인 겁니다. 식물성 햄, 소시지부터 만두, 떡갈비까지 다양한 제품을 먹어 봤지만 순대는 처음이었기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실제로 행사장에서 맛본 식물성 순대는 예상보다 괜찮은 맛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선지가 들어가야 할 자리는 '만능 비건 원료' 대두단백으로 채웠습니다. 식물성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케이싱을 뺀 '누드 순대'로 만든 건 전략적 판단이겠죠. 

신세계푸드의 식물성 순대/사진=김아름 기자 armijjang@

선지가 들어 있지 않아 다소 뻣뻣한 식감은 제품 자체를 '순대볶음'으로 출시해 일정 부분 해소했습니다. 촉촉한 야채와 소스가 순대의 뻣뻣함을 가려 줄 수 있도록 한 겁니다. 완벽하다고 하긴 어렵지만 이정도면 비건 제품이라는 점을 빼고도 '괜찮다'는 평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오늘 식물성 순대의 '맛'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맛보다 놀란 건 이날 이후 주변의 반응이었습니다. 식물성 순대 출시 소식을 알게 된 주변 사람들에게서 잇따라 연락이 와 후기를 물어 온 거죠. 그간 여러 차례 비건 제품 기사를 써 왔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순대가 이리도 핫한 제품이었던 걸까요.

비건식≠채식주의

식물성 순대에 관심을 가졌던 주변 사람 중 채식주의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순대를 좋아하는 '고기파'였죠. 관심의 절반쯤은 기술적 호기심일 겁니다. 진짜 식물성 재료만으로 육류의 맛을 구현할 수 있을까 하는. 이 경우 질문은 "진짜 순대랑 비슷해?"입니다.

그럼 나머지 절반의 질문은 뭐였냐구요. "순대보다 맛있어?"였습니다. 제 대답은 "아니, 아직은 아니야"였지만, 저는 그게 새로운 음식 카테고리의 탄생에 대한 궁금증이 아닐까 합니다.

비건 치즈 브랜드 '바이오라이프'/사진제공=신세계푸드

흔히 대안육을 사용한 비건식은 채식주의자, 혹은 환경주의자를 위한 메뉴로 생각되기 마련입니다. 이 때문에 비건식은 확장에 한계가 있다 여겨졌습니다. 아무 부담 없이 고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굳이 찾을 필요가 없는 거죠.

하지만 최근의 비건 트렌드는 조금 다릅니다. 여러 이유로 육류를 먹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대체품'이 아니라 그 자체로 또다른 재미와 맛을 즐길 수 있는 식재료로서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겁니다.

버섯탕수를 한 번 생각해 볼까요. 원래 탕수육에는 돼지고기를 사용하죠. 여기에 돼지고기 대신 표고버섯을 이용한 메뉴가 바로 버섯탕수인데요. 고기 대신 버섯을 사용하니 비건식입니다. 하지만 돼지고기를 먹는 사람도 가끔 버섯탕수가 땡길 때가 있습니다. 버섯이 돼지고기를 '대체'한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대안'이 된 겁니다.

대체육 대신 대안육

신세계푸드가 베러미트와 유아왓유잇을 론칭하며 '대체육'이라는 단어 대신 '대안육'이라는 단어를 고른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단순히 원재료인 육류를 대체할 수 있도록 육류를 모방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닌, 육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비건식을 만들겠다는 거죠.

브랜드명인 '베러 미트(Better Meat)' 역시 마찬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Like'나 'Same'이 아니라 Better라는 단어를 고른 건 실제 육류보다 더 나은 원재료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소고기와 맛이 똑같은데 콜레스테롤 걱정이 없는, 진짜 고기보다 나은 '가짜 고기'를 만들 수 있다는 거죠. 

신세계푸드의 대안육 레스토랑 '유아왓유잇'에서 판매하는 메뉴/사진=비즈워치

물론 아직 갈 길은 멉니다. 송현석 신세계푸드 대표는 현재 비건식의 위치를 '육류와 동일한 맛과 질감을 구현하는 단계'라고 했지만, 아직 멀었습니다. '먹을 만하다', '괜찮다'는 소비자의 반응 뒤에는 언제나 '콩고기 치고는'이라는 전제가 달려 있습니다. 이 전제를 넘어서야 비로소 비건인이 아닌 소비자들에게도 대안육이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웬만한 식품 기업들은 '비건 브랜드' 하나쯤 갖고 있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맛도 점점 나아지고 있습니다. 초창기 나왔던 제품들과 최근 제품을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죠. 내일은 또 오늘보다 더 나은 제품이 출시되겠죠. 곧 "그거 고기만큼 맛있어?"라는 질문에 "아니, 고기보다 나은데?"라고 대답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 봅니다.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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