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촌까지 결혼 허용 논란, 국제 트렌드는 '사촌 결혼' 가능?
근친혼 금지 범위, 8촌 이내→ 4촌 이내?
과거 '동성동본 금혼' 수많은 비극의 씨앗
유전병? 5촌 이상은 유의미한 차이 없어
5촌이나 6촌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 관건
■ 방송 : CBS 라디오 <오뜨밀 라이브> FM 98.1 (20:05~21:00)
■ 진행 : 채선아 아나운서
■ 대담 : 조석영 PD, 신혜림 PD
◇ 채선아> 좀 더 밀도 있게 알아볼 이슈 짚어보는 뉴스 탐구생활 시간입니다. 조석영 PD가 준비했어요.
◆ 조석영> 최근 8촌 이내 친족끼리는 혼인을 금지하고 있는 법을 5촌 이내로 바꿀 수도 있는 거 아니냐는 얘기가 나와서 뜨거운 이슈가 됐죠. 이 논란은 한 커플의 만남과 이별로부터 시작된 스토리입니다. 미국에서 만난 A씨와 B씨 커플이 있었어요. 결혼을 미국에서 했습니다. 결혼해서 같이 살다가 2016년에 국내로 귀국을 한 거예요. 귀국 이후에 한국에서 혼인신고를 합니다.
◆ 조석영> 그런데 얼마 뒤에 B씨가 A씨에게 이혼을 요구했지만 합의 이혼에 실패했어요. 그러자 B씨가 이혼 소송이 아닌 혼인 무효 소송을 냅니다. 이혼이 아닌 혼인 무효였던 이유는 두 사람이 6촌 관계였기 때문이예요.
◆ 신혜림> 그럼 결혼할 때는 몰랐던 건가요?
◆ 조석영> 몰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국은 주에 따라 4촌까지도 결혼이 돼요. 아무튼 처음엔 몰랐다고 하는데 알고 보니 6촌 관계여서 혼인 무효 소송을 한 거죠. 우리나라 민법에 8촌 이내의 혈족 사이에 혼인하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고 이 규정을 위반할 경우에 혼인을 무효로 한다는 조항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B씨가 이 조항을 근거로 혼인 무효 소송을 제기를 했고요. 1심과 2심 법원에서 혼인 무효 판결이 나왔습니다.
◇ 채선아> 법에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무효 나왔겠죠.
◆ 조석영> 그렇죠. 그런데 A씨 쪽에서 '이건 법이 잘못됐다. 8촌 이내 혼인 금지는 시대에 안 맞고 그리고 모르고 결혼했는데 나중에 무조건 무효라고 하면 너무 심하다. 헌법에 위배된다'고 하면서 2018년에 헌법소원을 청구한 겁니다.
◆ 조석영> 헌재에서는 2020년에 공개 변론 시작하고 2022년에 이르러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8촌 이내의 근친혼 금지 자체는 가족 제도 유지를 위해 적합하다' 재판관 9명 중에 5대 4로 아슬아슬하게 합헌이 나왔어요. 그런데 혈연 관계를 모르고 혼인했는데 그걸 무효로 해버리면, 이 사람들 자녀는 혼외자가 돼버리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건 너무 과하다고 해서 '이런 식의 혼인이 전부 무효'라고 하는 조항은 9명 전원이 헌법 불합치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새 법을 만들라고 했는데, 그 시한이 2024년 12월 31일까지입니다. 그러다보니 법무부에서 대체 입법을 하려고 연구를 맡긴 거예요.
그 연구 보고서가 작년 11월에 나왔는데 그 보고서에 근친혼은 4촌까지만 금지하면 될 것 같다는 내용이 담긴 거예요. 제가 직접 보고서를 읽어봤는데요. '혼인의 자유를 확대하고 다문화 사회에 통용될 수 있는 국제적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4촌 이내로 근친혼 금지 범위를 축소할 필요가 있다'는 논지입니다.
◇ 채선아> 지금까지의 반응들을 보면 찬반이 갈리면서도 부정적인 반응이 훨씬 많은 것 같거든요.
◆ 조석영> 그런데 2022년에 헌법재판소에서 8촌 이내 혼인 금지 합헌이 재판관 9명 중 5 대 4였잖아요. 한 명만 생각이 바뀌면 위헌이었다는 얘기거든요. 그리고 법무부에서 이걸 연구용역을 맡겼고 거기서 4촌까지만 금지하자는 결론이 나온 건 이유가 있습니다. 이 맥락을 한번 짚어볼텐데요. 이 8촌 이내 혼인 금지라는 법 조항이 언제 생겼을 것 같으세요?
◇ 채선아> 조선시대 아닌가요?
◆ 신혜림> 법이 만들어졌을 때?
◆ 조석영> 2005년입니다.
◇ 채선아> 2005년이면 19년 밖에 안됐네요?
◆ 조석영> 민법 809조 1항입니다. 이게 2005년 3월 31일에 전문 개정된 법안인데 그전에 다른 게 있었습니다. 뭐냐, 동성동본 혼인 금지예요.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에 일본법을 거의 그대로 쓰다가 1958년에 이르러서 독자적 민법을 공포했습니다. 이때부터 동성동본 혼인 금지가 들어간 거예요. 동성동본이라는 건 시조가 같다는 거니까 '시조가 같으면 같은 뿌리에서 나온 거 아니냐, 가족 아니냐, 어떻게 가족끼리 혼인할 수 있냐' 이 정서가 있었던 거죠. 그래서 이 법이 그대로 제정된 이후에 동성동본은 비극적 로맨스의 상징이 되어버렸습니다.
◆ 조석영> 1977년에 동성동본인 20대 남녀가 '헤어지는 게 무서워서 함께 죽는다'는 유서를 남기고 여의도에 있는 호텔 옥상에서 투신 자살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게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거예요. 그때부터 동성동본 혼인 금지 폐지 운동이 시작되고요. 정부도 이 규제가 좀 과하다고 생각했는지 한시적으로 혼인 신고를 받아줬어요. 1979년, 1986년, 1996년에 한시적으로 혼인 신고를 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가족들의 동의가 있어야 됐던 거죠. 그런데 정서상 가족들이 반대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지냐면, 1996년 12월 30일에 동성동본 혼인 신고를 하려던 40대 남성이 터미널에서 음독 자살합니다. 형제들이 동의를 안 해주다보니 그 처지를 비관해서 독극물을 먹고 자살하고요. 같이 있던 부인도 남편을 살리려고 인공호흡을 하다 중독됐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 신혜림> 그동안 혼인 신고도 못 하고 산 거예요. 그런데 결국 동성동본 혼인 금지는 폐지됐잖아요.
◆ 조석영> 1997년에 헌법재판소가 '동성동봉 혼인 금지 헌법 불합치다. 98년 말까지 조항을 개정하라'고 판단했고요. 후속 입법 논의가 좀 더디게 진행이 되면서 2005년에 동성동본 금혼이 8촌 이내 근친혼 금지로 바뀌게 됩니다.
◆ 조석영> 그 뒤로 동성동본 커플들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룹 SES 출신 배우 유진 씨, 그 부부가 동성동본이에요. 또 배우 김응수 씨도 동성동본인데 이 부부는 동성동본 금지 시절에 만나서 나중에 혼인 신고를 했다고 해요. 당시에 참 고생이 많았다고 하는데, 사실 요즘 10대인 알파 세대는 동성동본이라는 말을 들을 일도 별로 없을 거예요.
◇ 채선아> 서로 본관을 모르기도 하죠.
◆ 조석영> 2005년에 동성동본 혼인금지 폐지 이후에 19년이 흐르지 않았습니까? 이제 8촌 이내 혼인 금지가 폐지될 것인가 아닌가 그 기로에 놓인 건데요. 사실 이 논란 관련해서 유교 문화보다는 심리적 거부감이 더 관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조석영> 5촌이면 부모님의 사촌이예요. 작은 할아버지의 아들 딸, 당숙이나 당고모, 외당숙이나 당이모, 이렇게 부르는 분들인데 이 5촌 관계에 있는 분들을 가족 범위 안에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아는 분들은 근친혼 금지 범위 축소에 거부감이 있고, '4촌도 요즘 안 보는데 무슨 5촌이 가족이야' 하시는 분들은 '모르고 살다가 만나서 결혼할 수도 있지' 이렇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사실 5촌 관계라는 게 가족관계 증명서를 뗀다고 나오질 않아요. 2022년에 헌재에서 근친혼 무효에 대해 판결할 때 판결문에 이렇게 썼어요. '우리나라에는 서로 8촌 이내의 혈족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공시제도가 없다' 진짜 알 수가 없잖아요.
◆ 조석영> 그러다 보니까 법으로까지 금지하는 건 과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겁니다.
◇ 채선아> 저는 근친혼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생물학적인 문제가 있다, 유전적 문제가 있다고 하잖아요.
◆ 조석영> 그렇죠. 지금까지 발표된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4촌 이내 결혼에서는 유전병 발병 확률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5촌 이상부터는 큰 차이가 없다고 보는 게 정설입니다.
◆ 조석영> 다만 스웨덴 같은 경우에는 4촌까지 결혼을 허용하지만, 4촌은 결혼하려면 유전병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 신혜림> 스웨덴처럼 4촌까지의 결혼을 허용해 주는 나라는 얼마나 되나요?
◆ 조석영> OECD 국가 대부분이 사촌 결혼까지 허용을 하고 있어요. 8촌 이내 금지는 글로벌 스탠다드로 봐도 꽤 강한 규제고요. 그러다 보니까 한국의 근친혼 금지에 대해 해외의 문화인류학자들도 관심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유교 문화 때문이라고 설명하기에는 한국이 유교의 본산인 중국보다 동성동본 혼인 금지를 더 오래 유지했거든요.
◇ 채선아> 독특하네요. 지금 어떤 쪽이 맞다 틀리다 말하기가 굉장히 어렵고 애매한데, 저는 8촌이든 5촌이든 결혼 자체를 안 하는데 이런 논의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다만 국민 정서상 아직 근친혼 금지 범위 축소에 부정적인 상황인 거죠.
◆ 조석영> 4촌 간 결혼이 가능한 국가라고 해도 실제 결혼하는 사례가 많지는 않다고 합니다. 심리적 거부감이 존재하니까요. 다만 법으로 금지하느냐 마느냐, 그 차이가 있는 거죠.
◇ 채선아> 네. 여기까지 조석영 PD, 신혜림 PD와 함께 근친혼 금지 논란에 깔려있는 맥락들 짚어봤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조석영, 신혜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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