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된 관련자 88%가 유죄... 국정농단은 '실체가 존재하는 범죄'였다
뇌물·외압·사찰·상납 등 각종 범죄 백화점
공직자·대기업·학계·문화계·의료계 초토화
무죄는 겨우 8명뿐... 대부분 유죄 인정돼
편집자주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헌법재판소의 역사적 선고가 나온 지 7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국정농단'이라는 이름 아래 이뤄진 수사와 재판은 모두 마무리 됐습니다. 국정농단은 대한민국 정치지형을 재편했을 뿐 아니라, 법원과 검찰 조직에도 큰 파장을 남겼습니다. 국정농단이 이 나라에 남긴 유산과 숙제는 무엇인지, 이 사태가 세상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찬찬히 돌아보기 위해, 한국일보는 법조인 50명을 상대로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수사·재판 과정에 관여했거나, 사건을 가까이서 살펴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증언과 각종 통계, 기록 등을 바탕으로 '2,555일(7년)의 기록'을 다시 정리해 보려 합니다.
※국정농단 수사와 재판 7년의 총평가, 수사 과정을 다룬 이전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30802490004082)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30802520003826)
1월 25일 오후 2시 서울고법 서관 302호 법정. 박근혜 정부 실세였던 김기춘(85)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58) 전 문화체육부 장관이 피고인석에 섰다. 이들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하고, 보수 단체를 불법 지원(화이트리스트)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이날 선고공판에서 파기환송심 법원은 김 전 실장에게 징역 2년, 조 전 장관에게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했다. 다시 대법원까지 가는가 했던 이 재판. 그러나 두 사람이 재상고를 포기하며 파기환송심 선고로 형이 확정됐다.
이 재판이 2016년 10월 시작 이후 7년간 나라를 흔들었던 국정농단 사건의 마지막 사법부 판단이었다. 국정농단은 이제 '뉴스'의 영역에서 '역사'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국정농단 관련자 절반 이상 실형선고
장장 7년이 걸린 국정농단 재판. 8일 한국일보가 집계한 결과, 관련 사건으로 기소돼 법정에 선 피고인만 최소 67명(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에 달한다. 그 중 59명(88.1%)이 유죄 판결을 받았고, 무죄나 공소기각(절차상 하자가 있어 기소 자체가 부적법) 판결을 받은 이는 8명 뿐이다. 유죄 59명을 보면 △실형 34명 △징역형 집행유예 16명 △벌금형(선고유예 포함)은 9명이었다.
국정농단 사태의 정점 박근혜 전 대통령은 도합 징역 2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모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국가정보원(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 문건 유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공천 개입 등 18개 혐의를 받았고, 대부분 유죄가 확정됐다. 박 전 대통령의 공범 혐의로 기소된 최씨는 딸 정유라씨 이화여대 학사 비리 의혹 등까지 대부분 유죄가 나와 도합 징역 21년을 확정받았다.
박근혜 정부 공직자들도 초토화됐다. 박 전 대통령 지시를 받고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을 모금하는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징역 4년을 확정받았다.
가장 많은 공직자가 연루된 사건은 블랙·화이트리스트 사건이었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포함 12명의 공직자가 처벌을 받았다. 블랙리스트에서는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과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등이, 화이트리스트에서는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 최소 징역형 집행유예에서 최대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그 다음으로 연루자가 많은 건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사건이었다.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 '문고리 3인방' 안봉근·이재만·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 최경환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징역 1년6개월~징역 5년형을 확정받았다.
이외에 공직자 등을 불법사찰한 혐의를 받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징역 1년을, 박 전 대통령 지시를 받고 이미경 CJ 부회장 퇴진을 요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았다.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국민연금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은 각각 징역 2년6개월을 받았다.
대기업 수뇌부도 줄줄이 징역형
재계 거물들도 처벌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등 임원들은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징역형 집행유예에서 최대 징역 2년6개월을 확정받았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특허 청탁을 위해 최씨 측에 70억 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정씨의 이화여대 입시·학사 비리와 관련해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 등 교수들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져 벌금형에서 징역형을 받는 등 학계도 국정농단 사태에 한몫했다.
'비선 진료' 쪽에선 김영재 성형외과 원장 등 의료계 인사들이 유죄를 확정받았다. 최씨를 등에 업고 광고사의 지분을 강탈하려 한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등 광고계 관계자들, 인천관세본부장 인사에 개입하고 금품을 수수한 고영태씨도 징역형의 죗값을 치렀다. 다만 세월호 참사의 보고를 조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관진·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은 무죄를 확정받았다.
국정농단에 연루된 공직자들은 유죄를 받았지만 정치적 용서(사면·복권)를 받았다. 문재인 정부 시절 박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정권 교체 전후로 최소 27명이 사면 또는 복권됐다. 최경환 전 부총리 등은 심지어 이번 총선에서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김기춘 전 실장은 올해 초 파기환송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재상고를 했다가 돌연 취하한 뒤 사면돼 '약속 사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박준규 기자 ssangkk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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