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한 민간인 학살, 누구도 용서 받을 수 없어”[시차적응]

이청아 기자 2024. 3. 9.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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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생존자 가족이라서 더더욱 가자 주민 살해 규탄”
‘저 나라 사람들은 왜 그렇지?’ ‘우리와는 왜 다르지’ 국내외 뉴스 속 궁금증을 콕 짚어 새로운 시각에 적응시켜 드립니다.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상대로 대규모 기습공격을 감행해 민간인과 군인 1140여 명을 살해하고 250여 명을 인질로 납치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은 보복 공격을 시작하며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은 지금껏 이어졌습니다. 게다가 이 전쟁은 홍해로도 번지며 중동 지역의 전면전까지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전쟁이 5개월째에 다다른 지금, 팔레스타인인 누적 사망자수는 벌써 3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쟁을 멈출 생각이 없음을 여러 차례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최근 가자지구에선 구호물자를 기다리던 팔레스타인 주민들 최소 112명이 숨지는 참사까지 벌어졌습니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이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지난달 24일 텔아비브에선 시민 수천 명이 총리 퇴진과 휴전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리기도 했는데요. 한 발짝 떨어져서 사건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여론은 그렇다 쳐도, 하마스 기습공격의 피해자인 이스라엘인 중에서도 휴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 후손이기도 한 이스라엘 사람과 직접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인터뷰 대상
사진제공 유발 만

유발 만(Yuval Mann·34)
-예루살렘 출신
-폴란드와 독일 출신 홀로코스트 생존자 및 중동계 유대인의 후손
-과거 요르단강 서안지구 및 골란고원에서 이스라엘 점령군으로 의무복무
-현재 세계 곳곳을 다니며 작가로 활동 중
Q.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달 10일까지 팔레스타인인 약 2만8000명이 사망했으며(2월 24일 기준 3만 명으로 증가), 사상자엔 많은 여성과 어린이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참을 수 없는 슬픔과 분노를 느낍니다. 제게도 팔레스타인 친구들이 있고, 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을 매일 목격하고 있습니다. 하마스의 공격이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과 민간인들의 굶주림을 정당화할 순 없습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전쟁범죄를 저지른 뒤 이를 촬영해 소셜미디어에 게시한 것도 봤습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후손으로서, 이스라엘이 이런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이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Q. 현재 휴전협상이 진행 중이긴 하나,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를 가자지구 땅에서 완전히 축출할 때까지 전쟁을 멈추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는데요. 하마스가 지난해 10월 민간인들에게 저지른 행위를 생각하면, 이스라엘인들의 심정이 이해 못할 바는 아니라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물론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은 끔찍했지만, 중요한 사실은 이-팔 갈등의 역사가 그날에서야 비로소 시작된 것은 아니란 점입니다. 지난해 10월 공격은 진공 상태에서 갑자기 발생한 사건이 아니며, 하마스나 다른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결과물이라는 점은 외면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은 지난 75년간 이 땅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인 수백만 명을 강제이주시키고, 점령하고, 포위하고, 굶주리게 하고, 폭격했습니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폭력적 저항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과입니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숨진 희생자의 장례식이 열렸다. 참석자들이 담요에 덮인 시신을 부둥켜안고 오열하고 있다. 텔아비브=AP 뉴시스

“물론 그 누구도 하마스와 그 지도부가 옳다고 말할 순 없을 것입니다. 단지 제가 하고싶은 얘기는 이-팔 갈등의 시발점은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력과 강제이주에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탓을 하마스에 돌리는 것은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폭압을 정당화하고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핑계에 불과합니다. 실제 하마스부터가 팔레스타인인들의 단결을 막고자 한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아 탄생한 조직입니다. 이 갈등의 역사에 대한 군사적 해법은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점령이 끝나면, 하마스의 존재 이유는 자연스레 사라집니다.”

(※이스라엘 언론 예루살렘포스트와 미 CNN 등은 네타냐후 총리가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와 가자지구 간 분열을 심화시키기 위해 카타르의 하마스 자금 지원을 지지해왔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를 두고 이스라엘 언론 하레츠는 “네타냐후 총리의 권력 연장 욕망과 하마스의 극단주의 테러가 공생한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Q. 그렇다면 이-팔간 갈등의 역사가 지속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이라 보시나요?

“이-팔 문제의 핵심은 ‘종교나 민족적 갈등’이 아닌 ‘식민지배’입니다. 일반적인 성지를 떠올려보시면 아시겠지만, 한 성지는 보통 여러 종교나 민족, 문화에서 중첩되며 수천 년 동안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여러 종교인들이 비교적 평화롭게 공유해왔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의 시온주의(Zionism·유대인 민족주의 운동)가 ‘식민주의적 속성’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시온주의’는 먼 옛날 팔레스타인 일대에 살다가 기원 전후 로마제국에 복속되면서 유럽 곳곳으로 흩어져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던 유대인들이 다시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돌아와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이념입니다. 1948년 시온주의를 주장하는 일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했고, 같은해 원주민이었던 팔레스타인인 및 주변 중동국가들과의 전쟁(제1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하면서 현대의 이스라엘이 세워졌습니다.)

지난해 10월 23일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에 있는 알시파 병원에서 이스라엘 공습으로 다친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 가자시티=AP 뉴시스

Q. 최근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일부 직원들이 하마스와 연계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일부 국가들이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일시 중단하기도 했는데요. 비슷하게 일부 이스라엘인 또한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제공되는 인도주의적 자금의 일부를 하마스가 전용(轉用)하기 때문에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가자지구 인구는 230만 명으로, 이들 중 대다수는 1948년 나크바(Nakba·대재앙) 기간 동안 이스라엘에 의해 고향을 빼앗겨 난민으로 전락한 사람들입니다. 한술 더 떠 이스라엘은 수년에 걸쳐 가자지구 봉쇄정책을 시행해 가자지구를 ‘야외 감옥’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강과 하늘, 육지를 통해 누가, 무엇이 들어오고 나가는지 전부 결정하고 있습니다. 가자지구 사람들은 이번 전쟁 이전에도 이미 인도주의적 지원에 목숨을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당연히 지원을 더 늘려야 합니다.”

동아일보DB

(※‘나크바’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던 원주민들이 1948년 건국을 선포한 이스라엘군에 의해 실향민이 돼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로 이주한 사건을 말합니다. ‘가자지구 봉쇄정책’은 2006년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승리해 가자지구를 장악하자 이스라엘이 해안가를 제외한 가자지구의 모든 경계에 높이 6m의 콘크리트 장벽을 세우고 팔레스타인 주민 및 물자 이동을 제한하고 있는 것을 이릅니다.)

Q. 전후 조치에 관해 여러 논의가 나오고 있는데요. 미국 등 서방에서는 1993년 이-팔 간 오슬로 협정 내용에 따라 현재 서안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하마스 대신 가자지구까지 전부 통치하는 ‘두 국가(이-팔) 해법’을 지지합니다. 반면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의 안보통제권을 모두 갖겠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떤 해법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두 국가 해법은 과거 이스라엘에 의해 자신이 살던 땅과 집, 재산까지 모두 빼앗긴 팔레스타인의 주권을 인정하기 위해 제안됐습니다. 하지만 이전에도 네타냐후 총리는 겉으로는 이 해법에 열려있는 척 하면서, 뒤로는 팔레스타인 영토에 정착촌을 건설함으로써 그들의 터전을 계속 강탈해왔습니다. 그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수용할 생각이 없습니다. 네타냐후 총리에게 있어 두 국가 해법은 국제사회를 향해 “봐라, 우리는 평화를 원하지만 팔레스타인은 폭력만을 원하지 않느냐”라고 주장하기 위한 기만적 도구에 불과합니다.

때문에 저는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하나의 국가’가 더 바람직한 해법이라고 믿습니다. 2개의 연방을 가진 하나의 국가도 괜찮으며 형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팔레스타인인들이 봉쇄와 점령에서 벗어나 자원과 토지에 대해 평등한 접근권을 가질 수 있는 국가가 세워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1993년 이-팔은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오슬로 평화협정을 맺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를 어기고 서안지구에 유대인 정착촌 200여 곳을 세워 이스라엘인 66만 명을 이주시켰습니다. 많은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이 불법이라며 규탄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최근에도 정착촌 확대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그간 이스라엘을 두둔해왔던 미국마저도 “정착촌은 불법”이란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쑥대밭이 된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에서 27일(현지 시간) 어린 아이들이 붕괴된 건물 위에 앉아 쉬고 있다. 가자시티=신화뉴시스

Q. ‘네타냐후 정권’과 ‘전쟁 지속’에 대한 현재 이스라엘인 및 유대인들의 여론은 어떤가요?

“전쟁 이전에 네타냐후 정권에 대해선 강한 반대 여론이 일기도 했지만, 제가 느끼기에 대다수의 이스라엘인들은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하스바라’(Hasbara·선전술)에 의해 시온주의를 체화하기 때문에 그들 중 가장 진보적인 사람들조차도 팔레스타인인들을 인간 이하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내에서도 팔레스타인 점령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항상 있었습니다. 또 확실히 이스라엘 밖에는 이번 전쟁에 비판적이거나, 이-팔 공존을 위한 방안을 찾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이스라엘인 및 유대인 활동가들이 더 많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인들의 다수 여론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이 상황을 종식시킬 유일한 방법은 국제사회의 압력과 제재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Q.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스라엘이 유대인들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전쟁이 전세계 유대인들의 안전에 미칠 끔찍한 영향에 대해서도 심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홀로코스트 이후 유대인들에게 있어 가장 큰 위협은 다름 아닌 시온주의와 이스라엘의 식민지 프로젝트입니다. 이스라엘이 75년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자행한 일들이 유대교나 유대인의 전통 문화와는 아무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에 걸친 로비와 선전으로 인해 불행히도 ‘유대인’과 ‘시온주의’는 어느새 동의어처럼 비춰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력적 정책에 전 세계인들이 갖는 반감은 결국 반유대주의의 강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부디 한국에서는 이스라엘의 이권 만을 반영하는 이야기 대신 인권단체나 팔레스타인인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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