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숙의 미디어는 파도] 영화 '듄'을 보고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미디어오늘 조경숙 만화평론가]
영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SF 장르는 꼭 챙겨보는 편이다. 탄탄한 과학적 근거를 받침 삼아 상상력을 끌어올린 세계 안에는 인류의 과거와 미래, 현재마저 담겨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듄:파트2>를 관람했다. 손꼽아 기다렸던 작품이었지만, 어쩐지 보고 나온 이후엔 내내 우울했다. 영화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에 겹쳐진 현실 때문이었다.
먼저 <듄>의 세계를 소개하려 한다. 이곳에는 인공지능이 없다. 이곳 사람들은 이전에 한 번 인공지능과 격전을 벌인 바 있고, 오랜 전쟁 끝에 겨우 승리를 거두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동화된 기계를 믿지 않고, 만들지도 않는다. 복잡하고 어려운 수식이나 전략 등을 사람이 직접 계산하고 세우게끔 한다. 기계는 있지만, 사람이 모두 직접 켜고 끄는 시스템이다.
한편 아라키스라는 행성이 있다. 이곳에서만 수확할 수 있는 '스파이스'는 우주여행에 필수적이다. 스파이스를 중심에 두고 대가문과 황족 사이에 긴장 관계가 유지된다. 아라키스 원주민 '프레멘'은 수십 년을 하코넨 가문에게 억압 당했고, 지배자가 바뀐다 한들 그들의 위상이 나아지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억압과 수탈 안에 살아온 이들은 오로지 메시아를 기다린다. 여성으로 이루어진 비밀 결사대 '베네 게세리트'에게 주입 당한 종교 메시지 안에는 언젠가 프레멘들을 구원할 메시아가 올 것이라 적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듄>의 주인공인 폴은 오랫동안 베네 게세리트의 훈련을 받은 인물로, 아라키스 행성에서 다량의 스파이스에 노출되며 미래안을 개화했다. 그는 자신 때문에 전우주에 불붙을 종교 전쟁의 미래를 본다. 칼을 맞댄 채 싸우다 죽는 사람들, 수도 없이 굶어 죽는 이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펼쳐진다. 그 모든 광경을 보았음에도 그는 기어코 프레멘들의 메시아를 자처한다. 기어코 우주 전쟁의 서막을 연 것이다.
병사들은 서로 칼을 부딪치고 싸우다가 죽고, 벌레에 먹혀 죽고, 포탄에 맞아 죽는다. 내게 이 장면들은 영화적 효과로서가 아니라 끔찍한 고통으로 다가왔다. 권력자들의 이해관계로 죄 없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모습은 뉴스에서 마주하는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가 끝나고 핸드폰을 켜자, 보급품을 나누어주는 트럭에 몰린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향해 이스라엘이 발포했다는 뉴스 알람이 왔다. 어디가 현실이고, 어디가 영화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순간이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이슬람과 유대교라는 종교 이념이 서로 반목하는 상황이기도 하지만, <듄>의 전쟁에 종교적 분쟁뿐만 아니라 황제와 베네 게세리트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뒤얽힌 것처럼 이 전쟁도 영국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이 얽혀있는 오래된 정치적 지형이기도 하다.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영국이 촉발한 것이지만, 정작 영국은 이 전쟁과 관련 없는 것처럼 뒤에 물러서 있다. 그 이후엔 다들 알다시피 하마스와 이스라엘군의 분쟁으로 격화되었고, 이 가운데에서 비무장한 민간인들이 수없이 죽어가는 상황이다. <듄>에 그려지는 전쟁의 모습이 현실에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과 겹쳐 보이는 이유다.
작품에서 본 장면을 현실의 사건과 곧바로 연결하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듄>과 팔레스타인의 참극은 이상하리만큼 생생하게 떠올랐다. 영화의 예술성이나 메시지를 떠나 누군가는 이 작품을 결코 즐길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 모든 사실을 안다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SNS에 뉴스를 리트윗하는 것뿐이다. 영화관에서 <듄>을 관람하듯, 일상에서는 전쟁을 그저 손 놓고 관망할 수밖에 없다는 게 깊은 무력감으로 다가온다. 수십 년 전 쓰인 소설 속 전쟁은 스크린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밖에도 있다.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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