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마이크론 무섭다 했더니 비결은 한국인? 그들은 왜 K-반도체를 떠났나 [김민지의 칩만사!]

2024. 3. 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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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HBM 수석, 마이크론으로 이직
전문가 “마이크론 기술력은 삼성·SK 엔지니어들”
HBM3E 대량 양산 못 막은 법원 늑장 판결도 도마
“국내 유망 반도체 회사 늘어야 기술 유출 막을 것”
‘칩(Chip)만사(萬事)’

마냥 어려울 것 같은 반도체에도 누구나 공감할 ‘세상만사’가 있습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 주요 국가들의 전쟁터가 된 반도체 시장. 그 안의 말랑말랑한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촌각을 다투는 트렌드 이슈까지, ‘칩만사’가 세상만사 전하듯 쉽게 알려드립니다.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최근 SK하이닉스의 HBM(고대역폭메모리) 담당자가 미국 마이크론으로 이직했다가 법원이 전직금지 가처분 결정을 내린 사실이 알려져 국내 반도체 업계가 충격에 빠졌습니다. AI 대중화로 HBM 수요가 크게 늘면서 반도체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인력 빼가기가 K-반도체의 주요 리스크로 다시 한번 불거졌기 때문이죠. 특히 지난주 미국 마이크론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보다 빠르게 5세대 HBM(고대역폭메모리)를 대량 양산하겠다고 발표해, 이 같은 기술력이 앞선 SK하이닉스 직원의 이직과 무관치 않다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에 기술 유출을 철저히 단속하는 것이 한국 반도체 기업의 최대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왜 핵심 기술을 들고 한국 반도체 회사의 경쟁사로 이직하게 된 걸까요? 그리고 앞으로 이와 같은 일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칩만사에서 알아보겠습니다.

최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에서 D램과 HBM 설계 업무를 담당하던 A씨는 지난 2022년 7월 퇴사 직후 미국 마이크론에 임원급으로 이직했습니다. 이에 대해 SK하이닉스는 지난해 8월 A씨를 대상으로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고, 최근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A씨는 퇴직할 당시 2년간 경쟁사에 취업하거나 용역·자문·고문 계약 등을 맺지 않기로 약정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어기고 바로 SK하이닉스의 경쟁사인 마이크론에 임원급으로 간 겁니다.

법원은 A씨의 이직으로 정보가 유출될 경우 SK하이닉스의 경쟁력이 훼손되고 원상 회복도 불가능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문제는 이미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겁니다. A씨는 SK하이닉스에 2001년 입사한 후 20년 넘게 근무한 베테랑입니다. HBM 사업 수석, HBM 디자인 부서 프로젝트 설계총괄 등 요직에서 일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A씨가 이직한 후 마이크론의 HBM 기술력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는 점입니다. 원래 마이크론은 HBM 시장에서 후발주자로, 삼성이나 SK하이닉스보다 늦은 2022년에 3세대 제품인 HBM2E를 양산했습니다. 이후 지난해 4세대 HBM3를 건너뛰고 HBM3E를 개발하겠다고 밝히더니, 지난달 대량 양산을 발표해버린 겁니다. A씨가 이직한 후 약 1년 반 만에 마이크론이 이런 성과들을 거둔 것이 참 묘합니다. A씨가 SK하이닉스에서의 기술력을 마이크론에 유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마이크론 HBM3E [마이크론 홈페이지]

업계에서는 마이크론의 빠른 HBM 기술 성장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에서 이직한 임직원들에 의해 이뤄졌다고 봅니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은 “이번 사건의 경우 마이크론이 HBM 관련 인재가 필요하니 특정 인물을 겨냥해 데려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지만 마이크론 내에 굉장히 많은 한국인 엔지니어들이 있고, 대부분이 주류에서 일하고 있다”며 “마이크론은 일본에 히로시마 공장도 있고 미국, 대만 거점도 있으니 지리적 이점이나 높은 연봉 등을 제시하며 스카웃해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반도체 업계 전문가도 “마이크론의 D램 기술력은 삼성과 하이닉스에서 나온 한국인 인재들에서 나오고 있다”며 “사내에서 임원 승진에 실패하거나 연봉 및 처우에 불만을 가진 인재들이 주로 옮겨가는 편”이라고 말했습니다.

SK하이닉 반도체 생산 현장. [SK하이닉스 제공]

업계는 법원의 늑장 대응으로 기술 유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번 법원의 판결은 지난해 8월 SK하이닉스의 가처분 신청 이후 약 7개월만에 이뤄졌습니다. 법원은 A씨가 오는 7월 26일까지 마이크론에서 일하면 안 되고, 이를 어기면 하루에 1000만원씩 SK하이닉스에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했는데, 이미 1년 반 동안 HBM 기술이 다 유출된 후에 조치가 이뤄졌다는 지적입니다. 더군다나 A씨가 미국에 거주하고 있어 이런 내용의 결정문이 A씨에게 송달되지도 못해 아직 효력도 발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A씨는 마이크론에서 일하고 있을 수 있는 겁니다.

AI 반도체 시장이 급성장하며 이를 둘러싼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의 3파전도 거세지는 모양새입니다. 불과 몇개월 차이의 기술력으로 촌각을 다투는 전쟁터에서 인재 유출은 치명적입니다.

연봉 및 처우 개선에 한계도 있는 만큼, 일각에서는 국내 반도체 생태계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서 인재들이 다른 나라로 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해외 경쟁사로 이직하는 이들도 결국 한국에 옮겨갈 반도체 회사가 없기 때문 아니겠냐”며 “삼성이나 SK만큼 처우가 좋고 미래가 유망한 다양한 반도체 기업들이 많이 생겨야 장기적으로 국외 인재 유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jakme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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