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기대감과 뒤섞인 지진의 공포… 여행을 흔들다 [박윤정의 곤니찌와 고마쓰]
2024. 3. 9. 10:13
노토 반도 지진
오후 숙소로 돌아와 느낀 잠깐의 휴식
경보음과 너울대는 건물에 정신 멍해
급하게 내려간 로비에는 침묵의 공포
안심하라는 말에 다시 객실로 발길 돌려
불안함 안고 찾은 식당엔 만찬이 준비
앵커의 대피 명령 들으며 억지 잠 청해
오후 숙소로 돌아와 느낀 잠깐의 휴식
경보음과 너울대는 건물에 정신 멍해
급하게 내려간 로비에는 침묵의 공포
안심하라는 말에 다시 객실로 발길 돌려
불안함 안고 찾은 식당엔 만찬이 준비
앵커의 대피 명령 들으며 억지 잠 청해
일본 최대 명절을 즐긴다. 조니라는 찰떡 떡국을 먹고 한 해 무사 안녕을 기원해 본다. 참배를 위한 것은 아니지만 절을 방문하고 문화 행사를 경험한다. 새해를 맞이하여 감사와 존경을 표하는 의미는 같을 거라 생각하며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넨다. 공예 마을에서 기념품을 구입하고 새해 첫날의 특별한 의미를 새기며 하루를 보낸다.
늦은 오후, 숙소로 돌아와 손에 든 기념품을 정리한다. 벌써 오후 4시다. 주전자에 물을 올려놓고 유카타로 갈아입는다. 저녁식사 전까지 온천을 할까? 낮잠을 잘까? 고민하며 찻잔에 물을 붓는다. “어! 어, 어?” 찻잔의 물이 넘치더니 테이블에서 미끄러져 떨어진다. 다행스레 뜨거운 물이 쏟아졌지만 데지는 않았다. 옆에 두었던 물건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윙, 윙윙” 경보음은 계속 울리고 안내 방송이 흐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다급한 목소리다. 일본어를 알지 못하더라도 온몸으로 전해지는 진동으로 보아 지진 안내 방송이다. 지난 일본 여행에서 겪은 경험과는 다른 차원이다.
너무나도 당황한 나머지 공포가 엄습할 여지 없이 생각이 멈췄다. 나만 곡예하듯 너울대는 것인지, 건물이 흔들리는 것인지 모르겠다. 바이킹을 타고 있는 듯하다. 멍하게 있기를 몇분, 아니 몇십초 지나자 의식을 깨우려는 듯 더 심한 진동으로 흔든다. “아!” 짧은 탄식이 새어 나온다. 조금 전까지 새해 첫날, 무사 안녕을 기원했는데 이렇게 타국에서 생을 마감할 수도 있구나. 문득 생각이 스쳤다. 바닥을 짚고 흔들리는 몸을 가누어 떨어진 휴대전화를 찾는다. 다행스레 가까운 곳에 있다. 켜진 통신을 감사해하며 카톡을 남긴다. 때마침 휴대전화에서 재난 경보음도 울리지만 한국에서 뉴스 소식은 없다. TV를 켜 놓고, 객실을 나서기로 한다. 로비로 내려가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어! 방문이 이렇지 않았는데, 뭐지? 이 상황이 꿈인가? 낯선 객실 문을 다시 살펴보니 접혀 있던 방화벽이 자동적으로 닫혀 새로운 문이 생긴 것이다. 이런 재난을 대비하여 재건축을 한 것이구나! 새삼스레 놀라며 문을 열고 복도를 따라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이곳도 전원이 꺼졌다. 복도에도 계단에도 단 한 사람이 없다. 지진보다 조용한 침묵의 공포를 느끼며 계단을 따라 로비로 내려간다. 1층에 다다르니 사람들이 모여 있다. 소란도 없이 작은 웅성거림만 들릴 뿐 차분하다. 아뿔싸! 순간 당황스럽고 창피함이 몰려온다. 유카타 차림새는 나 홀로다. 모든 투숙객이 어느새 옷을 갈아입었는지 겉옷까지 차려입고 짐가방을 챙긴 채, 가족끼리 모여 지시사항을 기다리고 있다. 직원에게 물으니 이시카와현 노토반도에서 7등급에 속하는 지진이 발생했단다. 일본 기상청 진도 10단계 중 진도 7은 벽에 금이 가고 건물이 무너지는 수준의 단계이다. 이곳은 같은 이시카와현이지만 노토반도와는 거리가 170km 정도 떨어져 있으니 잠시 기다려보란다. 다 함께 대피를 가야 할지 곧 알려줄 터이니 로비에 있으란다. 유카타 차림으로 여권도 없이 대피를 가는 어이없는 상황을 맞이할 수 없어 다시 객실에 다녀오겠다고 얘기한다. 괜찮으니 그냥 있으란다. 무엇이 괜찮다는 거지? 이 상황이 더 곤혹스럽다.
지진도 걱정이지만 유카타 차림에 추위에 떠는 것은 아닐까? 여러 걱정이 우스꽝스러운 상황과 겹쳐 머리가 복잡하다. 직원이 이곳은 진도 5이니 괜찮을 거란다. 가옥이 심하게 흔들리고, 물이 담긴 그릇이 넘쳐흐르는 정도는 걱정하지 말라며 객실로 돌아가란다. 진동이 느껴지는 것 같아 다시 물으니 괜찮아질 거라 안심하란다. 덧붙여 저녁식사 시간에 늦지 말라며 일러준다. 아니, 이 상황에 밥이 넘어갈까? 모두 조용히 짐을 끌고 복도를 따라 각자 객실을 찾아 이동한다. 아직 엘리베이터는 작동되지 않는다. 복도 천장에서 물이 새고, 부서지고 깨진 곳, 쓰러진 가구,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곳도 있는데 모두 태연하다. 열 걸음 걷다 흔들리면 멈춰 서서 한숨 내쉬고 또다시 걷기를 반복하며 계단을 오른다.
방에서 휴식을 취하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심란하다. 불안한 마음에 식욕은 없지만 식당으로 향한다. 난리 후에도 저녁 상차림은 훌륭하다. 설음식이 정성스레 차려지고 음식마다 다른 의미와 소원을 담았다고 설명한다. 콩은 건강과 성공을, 새우는 장수를, 삼색 나물은 행운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 상황에 음식을 입에 넣으며 성공과 장수를 오히려 더 절절히 기원해야 하나? 농담을 곁들이며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사케 한잔에 위로를 얹는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사람들이 신기하여 직원에게 오히려 사람들이 놀라지 않았느냐 묻는다. 조용한 목소리로 모두 놀랐다고 한다. 노토반도는 아니더라도 2017년 포항 지진보다도 더 큰 진도라고 하는데 이리 태연한 것을 보면 신기하다. 이들에게는 지진의 공포가 다르게 와 닿는 듯하다.
깊은 밤, 잠들기가 쉽지 않다. 여진의 공포가 생각보다 크다. 이시카와현 노토지방에 대쓰나미경보를, 동해 연안 일본 각지에 쓰나미경보와 쓰나미주의보를 발령했다. 뉴스 앵커는 격앙된 목소리로 대피를 호소한다. 사망자와 이재민이 늘어난다. 신칸센이 중단되고 도로가 끊긴다. 한국 뉴스를 보니 지진 여파로 한국 동해안 일대도 쓰나미 영향권에 들었단다. 귀국할 수 있겠지? 앵커의 대피 명령을 듣고 고지대 대신 깊은 잠을 청해 본다. 무사히 이 밤이 지나고 귀국 비행기에 오를 수 있기를 바란다.
박윤정 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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